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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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감시가 대안이다 (한겨레 06.03.08)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5:47
조회
255

교도소 감시가 대안이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 재소자가 자살을 기도했다. 지금까지 나온 법무부의 대책은 분류심사실에 유리문을 달고 여성교도관이 입회하도록 하겠다는 것뿐이다. 이렇게 간단한 대책으로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게 된다면야 바랄 것이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교도관은 재소자에 대해 생살여탈권과 비슷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처럼 가석방 여부를 가리는 것은 물론, 소내 생활의 거의 모든 것이 교도관에게 달려 있다. 갇힌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풀려나는 것이다. 풀려나고자 출소 후 생활에 별 도움이 안 될 게 뻔한 이런저런 자격증 취득에 매달리고, 좀더 높은 등급으로 분류되려고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이는 재소자가 한둘이 아니다. 교도소는 권력관계가 명확한 곳이다.


모든 권력에는 그 권력을 쓰고 싶은 욕구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교도관의 일탈된 성적욕구만이 아니라, 교정·교화와 관계없는 교도관의 개인적인 욕심이나 편의를 위해 그 권력이 쓰일 때, 재소자가 저항할 수단은 별로 없다. 이번처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아니면 굴종을 감내하는 것뿐이다. 끊임없이 분출하려는 욕구를 갖고 있는 권력은 어떻게 통제해야 하나? 답은 간단하다. 권력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교도소를 교도관들에게만 맡겨놓지 않고, 좀더 투명하게 목적에 맞게 운영되도록 이중 삼중의 감시장치를 마련해 놓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최근 돌아보고 온 영국의 교정시설에 대한 여러 겹의 감시장치는 배울 만한 것이다. 우리의 국가인권위와 비슷한 진정사건 처리를 하는 옴부즈맨에는 21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인권위의 교정담당 직원이 10명인 것과 크게 비교된다. 각 교도소에는 지역 시민사회 인사들로 구성된 전담 감시위원회가 일상적인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다. 감시위원회는 언제나 교정시설을 조사할 수 있고, 위원장은 대부분 교도소에 상주하고 있다. 한국의 감사원이 기껏해야 회계감사나 공직기강 감사에 치중하는 것과 달리, 영국 감사원은 교정운영 실태에 대한 조사도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목적에 맞는 활동을 하는지를 살피고 아예 전국의 교도소에 순위를 매겨서 발표한다. 교정시설의 실태조사만을 전담하는 독립기구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교정을 전담하는 시민단체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 기관들의 성격은 모두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교도관이나 주무부서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독립된 기관들의 감시는 시민 참여형으로 진행된다.


교도소는 폐쇄된 공간이며 다양한 범죄경력의 재소자를 함께 수용하기 때문에 일반사회와는 다른 원리로 운영돼야 하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구금’이라는 특수성이 누구의 감시도 없이 모든 것을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성 재소자를 성적 노리개나 기껏해야 교도관 밥 해 주는 인력쯤으로 여기는 전근대적 행태는 여러 겹의 일상적인 감시를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인원도 적고 너무 멀리 있어서 별로 두렵지 않은 인권위만으로는 부족하다. 바로 옆에서 시민이 감시해야 한다.


교도관들이 열악한 근로여건 속에 수고가 많다는 것과 별개로 교도소가 누구의 감시도 없이 오로지 교도관들에 의해서만 모든 것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사건, 그리고 조직적인 은폐 시도를 막을 수는 없다. 한 여성이 목숨을 걸고 인권문제를 폭로했다. 그렇다면 모든 권력에는 권력과 무관한 독립적 감시가 필요하다는 평범한 교훈이라도 얻어야 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