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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농민의 죽음,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오마이뉴스 기고문, 전문, 051226)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5:13
조회
316

두 농민의 죽음,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www.hrights.or.kr


지난달 15일 여의도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두명의 농민이 유명을 달리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나 수사기관의 수사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두명의 농민이 경찰의 강경한 폭력 진압에 의해 사망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상황은 단순하다. 집회에 참석한 600여명의 농민이 경찰에 의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 사건은 두명의 농민이 사망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가해자로 지목받는 경찰조차 경찰청 차장 주재로 기자회견을 열어 폭력사태에 대해 사과하였고, 특히 홍덕표씨의 경우에는 경찰의 가격에 의해 부상(당시는 홍씨가 투병중이었다)을 당했다고 보인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순한 사건인데, 논란은 거듭되고

이 주로 경찰의 반발과 보수언론의 문제제기로 진행되는 이 논쟁은 대체로 두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첫째는 농민 사망사건은 유감이지만, 폭력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찰의 강경진압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경찰의 과잉도 문제지만, 시위대가 과거의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폭력적인 방법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최근 홍콩에서 벌어진 한국 시위대의 폭력시위 행태까지 덧붙여져 ‘이제는 폭력시위가 중단되어야 한다’는 논의로 확산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농민사망사건에 대한 유감의 뜻을 밝히면서, 폭력시위 행태에 대해 지적하여 이 논쟁을 점화시킨데 이어 보수적 입장의 언론이 적극적으로 폭력시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서고 있다.

농민들의 폭력시위가 원인이었다?

농민들이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고 하여도 우발적인 충돌이 아니라, 사전에 물푸레나무를 준비하고 경찰에게 선제 공격을 하고, 경찰차량에 대한 방화를 했던 것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하루 세끼니의 밥을 농민의 일방적인 희생에 기대 해결하고 있는 도시민의 입장에서 농민의 처절한 분노를 가늠할 길은 없지만, 아무리 처절한 분노가 있다고 하여도, 무조건 경찰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행태는 잘못된 것이고, 좀 더 냉정하게 표현하면 범죄행위일 수밖에 없다. 모든 폭력이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피해자의 저항폭력도 정당성을 가지려면 몇가지 조건은 충족해야 한다.

농민들이 경찰을 선제 공격한 것도 사실이고,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한 차량을 불지른 것도 사실이다. 경찰은 이를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고, 구체적인 불법행위를 제지하고, 시위 진압에 동원된 경력(警力, 경찰인력)을 보호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불법행위를 제지하고, 불법행위자를 검거하는 것은 경찰의 기본 책무임이 분명하기에 경찰이 그냥 맞고만 있고, 참고만 있지 않았다 하여 문제가 될 것은 전혀 없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경찰이 물리력을 사용하여 불법행위를 제지하고, 불법행위자를 검거하는 활동을 벌이는 것이 정당하려면 이 역시 몇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것은 경찰관의 직무수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경찰관직무집행법이 규정하고 있는 최소성과 합리성의 원칙이다.

두 명의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방패’ ‘진압봉’같은 경찰장구를 사용하는 경우에 대해 경찰관직무집행법은 매우 까다로운 단서들을 나열하고 있다.

10조의2 (경찰장구의 사용<개정 1999.5.24>)

①경찰관은 현행범인인 경우와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범인의 체포·도주의 방지,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신체에 대한 방호, 공무집행에 대한 항거의 억제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그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필요한 한도 내에서 경찰장구를 사용할 수 있다. <개정 1991.3.8, 1999.5.24>

경찰관들이 농민들에게 일방적으로 구타를 당하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즉, 법률에 규정된 대로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신체에 대한 방호나 공무집행에 대한 항거의 억제를 위해’ 경찰장구를 사용한 것은 적법하지만, 이것은 ‘그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필요한 한도 내’여야 한다.

경찰의 대응은 필요한 한도 내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한 결과가 아니었다

농민사망사건의 핵심은 경찰의 대응이 과연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한 결과였는지, 또한 ‘필요한 한도 내에서’ 진행된 것인지의 여부이다.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농민의 폭력시위가 있었으니까, 경찰이 폭력을 행사한 것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본질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편의적이며 특정한 목적을 배경으로 한 접근이고, 핵심은 당일 경찰의 대응이 합리적이었으며,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 행해졌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당일 경찰의 대응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불법행위를 제지하고, 불법행위자를 검거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한 경찰활동이었다면, 경찰의 대응은 물포를 기준으로 하여 20미터 내외에서 진행되었어야 마땅하다. 경력을 동원하더라도 그 정도 선에서 멈췄으면 2명 사망, 600명 부상이라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위현장에서의 통상의 싸움은 그 정도 선에서 진행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경찰은 확실히 예전과 달랐다. 충돌지점부터 무려 2-300미터를 밀고 내려왔다. 흥분하며 무전기와 방송차를 통해 독전하는 고위급 지휘관들의 주문에 따라 잘 훈련된 경력이 2-300미터를 밀고 내려오며 진압봉과 방패를 마구잡이로 휘둘렀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유혈이 낭자했다.

이게 사태의 핵심인 것이다. 폭력시위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문제가 아니라, 그 대응이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를 훌쩍 넘어서, 경찰관에게 위해를 가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며칠 후면 70세가 될 노인까지 목숨을 잃게 할 정도로 지나쳤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시민의 불법행위를 제지하려고 시민을 죽이는 일이 용납될 수는 없다. 너무도 당연한 원칙이다. 이 당연한 원칙과 단순한 이치를 외면하고 본질을 호도하려는 일체의 의도에 대해 나는 분노한다.

경찰청장이 왜 책임을 져야 하느냐

두 번째 쟁점은 사람이 죽었으니까 누군가 책임은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전용철 농민 범대위의 입장은 ‘대통령 사과, 경찰청장 파면, 서울경찰청 기동단장 구속’으로 집약되고 있다. 이러한 범대위의 요구에 대해 경찰은 공식적으로는 ‘책임질 것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밝히면서도 내부는 전혀 다른 기류가 팽배해 있다. 한마디로 경찰청장이 책임질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폭력시위가 문제이기 때문에 경찰의 책임, 나아가 경찰청장의 책임이 아니라는 주장에서부터, 역대 경찰청장 중에서 가장 인권친화적인 청장이었기에 책임질 이유가 없다는 주장, 수사권 조정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에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는 주장까지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한 경찰관은 인터넷 공간에 올린 글을 통해 “경찰과 쌀 수입 협상은 아무런 관계도 없고, 어떠한 책임도 없으며, 단지 시위 현장에서 빚어진 불행한 결과에 대하여 철저한 수사를 통하여 책임소재를 규명해야지, 결코 약화된 여론을 무마할 정치적 목적으로 법으로 임기를 보장한 경찰청장의 책임까지 확대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면서 가장 큰 책임은 지난 20년 동안 한국 농업을 방치한 역대 집권당(민정당부터 열린우리당까지) 모두에게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당시 농민시위 진압을 서울경찰청장과 차장이 관할했기 때문에 책임은 서울경찰청장이나 차장에게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 경찰관의 주장처럼 쌀 협상과 관련된 문제는 경찰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이 분명하다. 그러나 범대위나 시민단체들이 경찰이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안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아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여서 다시 확인할 필요조차 없지만, 지금 제기되는 책임추궁은 쌀협상에 대한 것이 아니라, 2명의 농민이 죽고, 수백명이 부상당한 경찰의 폭력행위에 대한 책임인 것이다.

문제는 당시 폭력진압의 책임을 경찰청장에게 묻는 것이 적정한지의 여부이다. 나는 허준영 경찰청장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으며, 서로 의기투합을 하여 남영동 대공분실을 폐쇄하는 등의 일을 함께 진행한 바도 있다. 그의 속내가 수사권조정을 위한 유리한 교두보 확보를 위한 것인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허청장이 인권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고, 진지한 실천을 전개하였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허준영 청장을 아는 것과 별개로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에게 그만둘 만큼의 책임이 있는가를 따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따져 보기 전에,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 허준영 청장이 아니면, 검찰과의 수사권 조정 작업이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대안부재론이 팽배해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왜냐면 그것은 창립 60주년을 맞은 경찰이 여태껏 허준영 청장 말고는 대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을 키우지 못했고, 내부에 쓸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경찰에는 허준영 청장(만약 그가 경찰관 다수가 생각하는 것 같은 역량을 지녔다면) 같은 사람이 족히 수천명은 되어야 한다. 오로지 허준영 청장 한명밖에는 대안이 없다면, 지금 생각하는 수사권 조정의 꿈은 서둘러 접는 것이 국민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경찰 자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경찰의 숙원이라는 수사권 조정은 경찰의 총체적인 수사역량과 관련된 문제이고, 현실과 규범의 괴리를 일치시키기 위한 입법적 결단이 필요한 작업이다. 총수의 역량과 수사권 조정은 무관하다. 이것을 어떻게 특정한 인물에 의해 좌우되는 사안이라고 판단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만약 다수 경찰관의 주장처럼 ‘수사권 조정 = 허준영 청장’의 등식이 성립한다면, 수사권 조정을 반대하는 검찰 입장에서는 허청장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1년만 버티면 된다는 건가?

허준영청장이 아니면 수사권 조정은 물 건너 간다

이 문제 역시 결론부터 말하면, 허준영 청장에게는 단순한 지휘 책임을 넘어선 무거운 책임, 곧 그가 책임을 지고, 공직을 사퇴해야할만큼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

11월 15일의 농민집회가 있기 넉달 전에 경찰에게는 매우 중요한 신호가 전해진 바 있다. 그것은 평택미군기지 반대를 위한 평화대행진 과정에서의 폭력 진압과 폭력진압을 ‘짐승의 말’로 독려하였던 서울경찰청 기동단장 이종우 경무관의 언동이었다. 그는 당시 방송차량을 타고 다니면서, 시위가 시작되기 전부터 “훈련된 동작으로 과감히 상체를 공격하여 논두렁에 쳐박아 버려라!”고 지시하였고, 시위가 시작된 다음에는 평화적으로 미군부대 주변을 따라 걷던 시위참가 시민들을 향한 폭력진압을 지시했다. 당시 그는 “훈련된 동작으로 아주 작살을 내버려” “작대기로 쳐! 방패로 쳐!” “몽둥이로 치고 소화기로 분사하고 잘한다.” “어이 시위대, 돌아가 이제, 여러분 팰 병력도 없어 이젠. 여러분은 무슨 여러분이냐”는 등의 막말을 했다. 그건 분명히 사람의 말이 아닌 ‘짐승의 말’이었고, 경감 계급의 중대장도, 총경 계급의 기동대장도 아닌, 경무관 계급의 기동단장의 명령은 명령에 따른 복종체계가 명확한 경력들에게 있어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폭력행사로 이어졌다. 이날 역시 백주대낮에 아무런 잘못도 없는 수백명이 부상을 당했다.

당시 이종우씨의 언동은 방송 3사의 뉴스에 동시 보도되었고, 인터넷 공간에서도 큰 문제가 되었다. 시민단체들의 저항이 이어졌고, 한겨레는 몇 번이나 사회면 머리기사로 이 문제를 다룰 만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그렇지만, 당시 허준영 경찰청장은 이러한 명백한 범죄행위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내가 직접 들었던 조치란 것은 겨우 “꾸짖었다‘는 것뿐이었다. 이종우씨에 대한 징계위원회조차 열리지 않았고, 감찰조사도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그는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았고, 경찰청 인권수호위원회의 출석 요구도 번번이 무시해버렸다. 그는 건재했으며, 11월 15일 농민집회가 열린 여의도에 다시 지휘용 방송차량을 타고 나타났다.

아니, 허준영 청장은 평택에서의 무차별적 폭력진압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의 지휘를 받는 경기경찰청은 기자회견을 열어 “집회 주최 쪽은 과잉진압을 한 것처럼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부분만을 부각시켜 일방적으로 경찰을 비난하고 있다. 경찰이 평화적인 집회를 선제공격한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오히려 폭력시위 때문에 경찰 97명이 다쳤다. 앞으로 폭력 행위자를 가려내 엄정 처리하겠다”면서 전형적인 물타기를 시도하였다. 그뿐인가. 허준영 청장은 사회적 비난이 고조되던 7월 15일 평택집회에서의 폭력진압에 대해 말 한마디 없는 웅변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평택집회에서 부상당한 전경 15명이 입원한 경찰병원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경기경찰청이 평택범대위 관계자등 집회 지도부 14명에게 소환장을 발부한 것도 같은 날이었다. 이날 한겨레는 이같은 경찰청장의 대응에 대해 “평택시위 파문, 경찰 ‘무시작전’”이라고 기사 제목을 달았다. 11월 21일 허준영 청장은 다시 경찰병원을 방문하였다. 역시 농민집회에서 부상당한 전경들을 위문하기 위해서였다. 이틀 후 전용철씨는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허준영 청장에게 단순한 지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경찰에 대해 조금은 더 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경찰활동을 감시하는 인권단체에서 일하고 있고,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경찰혁신위원회 위원을 거쳐 지금은 경찰청 인권수호위원회 위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경찰의 추천으로 검. 경 수사권조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적도 있었다. 내가 아는 경찰은 경찰청장을 정점으로 하여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다. 매우 충성스러운 조직이다. 평택이나 여의도 농민집회 같은 곳에서 일선 지휘관의 책임은 사실 보잘것없으며, 중요한 결정은 경찰청장 1인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경찰청장의 지시는 절대적인 효력을 갖는다. 그것은 단지 지시에 머물지 않고, 거부하면 안되는 준엄한 명령 자체이기 때문이다. 경찰조직에서 청장은 머리이고, 청장이 아닌 모든 경찰관은 손발에 불과하다. 이는 과언이 아니다.

중요한 신호가 경찰에게 전해졌을 때, 허준영 경찰청장은 불쾌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고, 이종우씨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았고, 경찰병원을 방문하는 것으로 자신의 뜻을 분명히 했다. 만약 그가 명백한 범죄행위를 한 이종우 경무관을 형사처벌하도록 지시했거나, 적어도 징계를 했다면 어떠했을까? 아니 그것도 아니라 최소한 그가 자신의 부하인 이종우 경무관에게 그가 강조했던 것처럼 ‘인권경찰’의 역할을 주문했다면, 글쎄 그랬어도 여의도에서의 참극이 벌어졌을까?

나는 구체적으로 경력들에게 여의도 공원까지 2-300미터를 질주하고, 무차별적인 공격을 하라는 지시를 누가 했는지 알지 못하고, 또한 알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다. 그렇지만, 경찰청장이 당일 사태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것은 분명하다. 경찰청장의 지원과 묵인, 비호 없이 어떤 경찰관도 경거망동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경무관이 아니라 치안감, 아니 치안정감이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허준영 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과한 것인가. 경찰이 전용철씨의 사인을 조작하기 위해 집 앞에서 넘어져 숨졌다는 보도자료를 보내고, 경찰청장이 앞장서서 발뺌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끄집어내야 하는가? 당일 집회의 진압이 서울경찰청만이 아니라 전국 각 지방청 소속의 기동대에 의해 진행했다는 뻔한 이야기를 새삼 확인해야 하는가?

사람이 죽었으니 누구든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책임은 최고 책임자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과연 그가 여의도 집회에서의 잔혹한 폭력에 대해 정말 책임이 없는가 하는 점이다.

파면 이전에 자진 사퇴를 권한다

두 명의 농민이 경찰폭력에 희생된 사건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경찰청 인권수호위원회의 권고 중 일부를 수용하여 서울경찰청 기동단장을 직위해제한 것이 전부이다. 2002년 10월 26일 서울지검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하자, 8일 만에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책임을 지고 함께 물러났던 것과 크게 비교되는 상황이다.

나는 사실 지난 며칠 동안 허준영 경찰청장에게 스스로 사퇴할 것을 조언하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주변에서는 말렸다. 그가 그만 둘 생각이 전혀 없기에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그저 서운해 하기만 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과 소원한 사이가 되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허준영 경찰청장의 사퇴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그에게 그래야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책임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에게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책임은 없을지 모르지만, 경찰의 최고 책임자로서의 책임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다음에 밀려나지 말고, 경찰을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스스로 사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조언은 해주고 싶다. 여러 사람이 괜한 고생을 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