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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시위 과정에서의 경찰폭력 막을 방법은 없는가(코리아포커스 기고문, 05122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5:25
조회
344
시민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경찰

집회.시위 과정에서의 경찰 폭력 막을 방법은 없는가.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수백 명의 농민이 부상을 입고, 두 명의 농민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사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상황은 구체적이고, 본질은 단순한데도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기만 하고, 경찰은 청장을 중심으로 결사 옹위 투쟁을 벌이는 것 같은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에 기대서이든, 아니면 정부의 회개에 의한 것이든, 그것도 아니면 범대위를 중심으로 한 투쟁의 확산에 의한 것이든 간에 이번 사태는 일정한 결말에 이르게 될 것이다.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보상과 함께 허준영 청장을 비롯한 책임져야할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묻고, 국정운영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사과 등으로 사태는 풀리겠지만, 그렇다고 제 명을 다하지 못한 억울한 농민의 희생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같은 불행한 사태가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폭력시위가 원인이 아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 경찰은 물론이고, 보수성향의 언론들은 일제히 그 원인을 ‘폭력시위’에서 찾고 있다. 시위대가 구태를 벗지 못하고, 폭력을 휘둘러 생긴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시위대가 폴리스라인만 넘어도 갈빗대가 부러질 정도로 두들겨 맞을 각오를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폭력시위에 대해 경찰이 너무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어서 문제이고,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폭력시위에 대한 규탄 보다는 책임소재를 가르겠다며 약자 편을 드는 척 해서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황우석부터 농민사망사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회적 쟁점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보수언론에 대고 진지한 이야기를 해봐야 소용이 없겠지만,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것은 이번 사태의 핵심은 폭력시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경찰이 폭력시위라는 불법행위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적법성과 정당성을 벗어난 과잉활동을 했고, 그 결과 농민 사상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 책임을 묻는 것이 어떻게 폭력시위를 당연시 하는 것이고, 그것이 어떻게 경찰의 정당한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이 되겠는가. 우리 사회는 이미 2002년 서울지검 고문치사사건을 통해 아무리 살인용의자라고 하여도, 그의 범죄를 입증하고 나아가 법에 의한 심판을 하기 위해서라도 그를 고문해서는 안되고,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은 바 있다. 이러한 기본을 다시 확인해야 하는 고약한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아무리 폭력시위를 진압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흉기와도 같은 수천 명의 진압 경력(警力, 경찰력)을 동원해 마구잡이로 진압봉을 휘두르고, 방패를 휘두르는 일이 정당해질 수는 없는 일이다.

괜한 사람들 때문에 이야기가 옆길로 빠졌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경찰이나 보수언론의 말처럼 폭력시위만 없어지면 이제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가? 그러한 주장은 범죄가 다 없어져야 수사상 인권침해도 모두 근절될 수 있다는 주장과 같다. 음주운전이든 폭력시위든 간에 사람사는 세상에서 규범에서 일탈하는 행위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규범에서 일탈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경찰관이나 검사, 판사, 그리고 변호사들이 먹고 사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바람대로 시위 과정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없어지면 좋겠지만, 이러한 생각은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이 모두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처럼 어쩌면 현실성이 없다. 폭력시위가 발생하는 원인을 제거해 나가고, 폭력시위 가담자를 정확하게 적발해서 정확한 책임을 묻고, 폭력이 발생할 소지를 없애 나가는 등의 다각도의 해결책이 함께 모색되지 않고, 그저 폭력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 없어져야 할 사람들 하는 식으로 단순히 상황을 몰고 나가서 우리 사회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정략적으로 이번 사태를 이용하고픈 소수의 모리배들이 각자의 뱃속을 채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작 문제는 집회․시위에 대한 경찰의 대응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집회․시위에 대한 경찰의 대응에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다수의 경찰관들은 만약 농민들을 철저하게 막지 못해 국회의사당이 불타는 등의 극한적인 사태로 이어졌으면 어떻게 할뻔 했냐는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국회 방화라는 극한적인 사태를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진압활동이라는 것인데, 농민들이 국회의사당에 불을 놓을 생각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러한 의도가 성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경찰이 물포를 쏘아대며 시위대의 진출을 막던 1차 저지선조차 뚫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집회 경비에 앞서 경찰은 대체로 1차 저지선 외에도 2,3개의 저지선을 더 확보해놓고 경비작전을 벌이고 있다. 일년에 두어 번 정도 큰 규모의 폭력시위가 벌어질 뿐인 요즘은 물론이지만, 연일 폭력시위로 밤을 지새우던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에도 경찰의 저지선이 뚫려 청와대나 국회가 불타는 일은 결코 없었다. 아니 청와대나 국회 근처까지 돌멩이 하나라도 날아든 적이 없었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을 들이대면서 자신의 무모한 집회․시위 진압의 명분을 찾으려는 경찰에 있는 것이다.

경찰의 집회․시위 대응은 언제나 집회․시위 참석자의 수를 훌쩍 넘어서는 대규모 경력을 미리 포진시켜 놓고, 대규모 경력의 힘으로 집회․시위를 관리하는 방식을 진행되고 있다.

다음의 표를 한번 보자.



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평균적으로 보면 보통 10명이 참가하는 집회에 13명이나 14명 정도의 경찰관이 출동하여 집회․시위를 관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위가 폭력적 양상을 띠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상관없이 경찰은 언제나 집회․시위 참가자를 훨씬 상회하는 경력을 투입하고 있다.

규모의 다소를 막론하고 집회가 예정된 지역 근처에는 집회 시작 훨씬 이전부터 수많은 경력이 사전 배치되어 있는 낯익은 모습은 경찰의 이런 대응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아예 차선 한두개쯤을 차지하고 길게 늘어선 기동대 버스의 대열, 그리고 무료한 표정으로 버스 안에서 대기하는 기동대원들은 최소한 한국에서만 목격할 수 있는 별스런 모습임에 분명하다.

경찰관의 직무 수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의하면 경찰의 직무 범위는 ‘범죄의 예방․진압 및 수사’ ‘경비․요인 경호 및 대간첩작전 수행’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교통의 단속과 위해의 방지’ ‘기타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이며, 이러한 직무 수행은 “그 직무수행에 필요한 최소한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하며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 국민의 요구이고, 입법자의 요구이다.

모든 집회․시위가 폭력시위의 양상을 띠는 것은 결코 아니고, 허준영 경찰청장이 지난 9월 23일 시위진압용 기동대 차량의 철망을 제거하라고 지시했을 정도로 폭력시위 자체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당시 경찰청장은 “그동안 평화적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각계에서 노력할 결과 폭력시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므로 더 이상 기동대 차량에 철망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였고, 이의 근거로써 다음과 같은 통계를 제시하였다.



2004년의 91건은 1995년의 809건이나 811건에 비교하면, 얼마나 ‘크게 감소’하였는지 알 수 있다. 폭력시위가 감소하였지만, 경찰은 기동대 버스의 철망을 제거(그것도 일부만을)하는 상징적인 조치 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집회․시위에 대한 기본적인 대응 방식은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은 없다. 한국 사회가 지난 10년 동안 또는 지난 20년 동안 얼마나 변했나를 생각하거나 경찰이 수사 분야 등에서 혁신작업을 강도 높게 진행했던 것에 비하면, 경찰의 집회․관리 대응이 얼마나 구태의연한 것인지 알게 된다.

현존하는 구체적인 위험이 있으면 모르지만, 모든 집회와 시위에 대규모 경력을 투입하는 방식은 오히려 폭력시위를 유발하는 위험마저 갖고 있다. 경찰이 보이지 않는 집회와 시위가 폭력시위로 변했던 사례가 과연 있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폭력은 상대가 있어야 가능한 작용이다. 상대가 없는데 허공에 대고 폭력을 휘두를 바보 같은 시위대는 어디에도 없다. 위험을 방지한다면서 대규모로 경력을 투입하는 지금의 작전이 어리석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존하는 구체적 위험이 없는 한 통상적인 집회․시위에 경력이 투입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경찰의 이같은 구태의연한 대응이 가능한 것은 바로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의경 제도 때문이다. 집회․시위 진압 활동을 전․의경들에게 전담시키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의 경찰인력은 모두 15만 명에 이르지만, 이중 1/3이 넘는 5만 1천여 명은 흔히 ‘전․의경’이라 불리는 전투경찰순경들이다. 이 전투경찰순경은 작전전투경찰(전경, 18,984명)과 의무전투경찰(의경, 32,435명)로 나뉜다. 전경은 군부대에 입영했다가 차출되어 경찰로 파견된 인력을 뜻하고, 의경은 자원하여 입대한 경우를 뜻한다.

전경이든 의경이든 모두 ‘전투경찰대설치법’에 근거하여 운영하고 있다. 법률에 의하면 전투경찰순경(전․의경)은 간첩이나 무장공비를 상대로 한 대간첩작전을 수행하는 것을 기본업무로 하고 있다. 대간첩작전이 설립 목적이기 때문에 그 명칭도 무시무시하게 ‘전투’경찰인 것이다.

천안대 김상균 교수가 작전전경(전경)제도가 도입된 1976년 당시의 국회회의록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당시 박정희 정권은 “대간첩 작전 등을 위해 전투요원 확보, 전투능력의 향상, 조직적인 경찰력의 필요 및 전사상자에 대한 급여금 지급 근거 마련 등을 위해 근거 법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또한 1982년 12월 창설된 의경의 경우에도 “경찰조직의 이원화, 우수한 인적 자원 확보 가능, 부조리 유혹 근절, 경찰에 대한 사회의 친밀감 조서, 국가재정상 치안수요 증가에 따른 직업 경찰의 증원곤란 및 경찰 내륙지 작전수행에 따른 전력증강 등의 이유” 때문에 의경 모집을 위한 근거법률로써 전투경찰대설치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약간 복잡해지긴 했지만, 전․경제도의 도입이 첫째는 대간첩 작전의 수행을 위해, 두 번째는 경비 절감을 위해 도입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전․의경이 대간첩작전을 일부 수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독도의 경비를 전․의경이 맡고 있고, 해안초소 경비 등의 업무에도 종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미 간첩이 없어졌다고 해서 간첩에 대한 대응과 경계마저도 불필요하지는 않겠지만, 대간첩작전을 위해 신설된 전․의경제도가 분단국가의 특수상황을 반영한 대간첩 작전이 아닌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자연스러운 국민 기본권의 표현인 통상의 집회․시위에 대한 진압 활동을 전담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전투경찰설치법상에 ‘치안업무보조’라는 조항도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지만, 특수하고 비상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제정된 법률에 근거하여 일반적․통상적인 치안활동을 진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헌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헌법재판소가 전․의경 제도에 대해 5:4로 합헌결정을 내린 것은 이미 1995년의 일이었다. 보수적인 헌법재판소의 결정이고, 만 10년 전의 결정이었지만, 당시에도 4명의 헌법재판관이 전․의경 제도가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냈을 정도이면, 전․의경 제도가 위헌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