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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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대신해 돌멩이 맞을 '분'?(시민의신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5:07
조회
310

농민 대신해 돌멩이 맞을 분?


[시민포럼]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지난 16일 여의도에서 열린 농민 시위가 폭력과 유혈사태로 얼룩졌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라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심해 부상자도 500명이나 나왔고, 경찰차량 7대가 불타는 등 피해가 적지 않았다. 충돌의 현장은 전쟁터 같았다. 경찰은 잘 훈련된 1001중대를 비롯한 정예 기동대원들을 투입하여 농민들을 집회장까지 밀어붙였다.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곤봉과 방패로 때리고 찍기를 반복하면서 숱한 부상자가 나왔다. 누가 봐도 악순환이다.

‘고 정용품 열사 추모와 쌀 협상 국회비준 저지를 위한 전국농민대회’를 연 농민단체의 요구는 농업의 근본적인 회생 정책이나 쌀 개방에 대한 대책없이 졸속적으로 쌀 협상 국회 비준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농민들은 농민 대표·국회·정부 3자의 농업대책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자는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의도 거리에 정책 대안에 대한 요구와 이에 대한 수렴의 공간은 마련되지 않았다. 마치 내전을 방불케하는 충돌뿐이었다. 요구는 사라지고 충돌만이 부각된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누가 뭐래도 악순환이다. 

일부지만 집회 참가 농민들이 과격한 행동을 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경찰차량을 불태우는 일은 사회적으로 납득되기 힘든 잘못이다. 그러나 세끼 밥을 모두 농민들의 피땀과 일방적인 희생의 덕으로 값싸게 먹는 도시민 입장에서 농민들의 분노와 분노의 표출에 대해 일방적인 비난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농민들의 집회와 시위에 대한 경찰의 대응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이번 집회에서 기동대원들은 흥분한 상태에서 할아버지뻘의 농민들을 두들겨 패고, 무리하게 집회장까지 농민들을 쫓으면서 많은 부상자를 만들었다. 명백하게 부당한 공권력 남용이다. 

평택 7·10 집회에서 “작살내!” “조져 버려!” “훈련된 동작으로 상체를 가격하고, 과감하게 논두렁에 처박아 버려!”라고 기동대를 격려(?)하던 서울경찰청 기동단장의 광기가 여기서도 되풀이되고 있었다. 일년에 한두번쯤 집회에 참석하는 농민들과 달리 매일처럼 훈련을 반복하는 조직의 대응이라고 믿기 어려운 폭력이었다. 훈련받은 병력이 집회에 참석한 농민 모두를 적으로 간주하며 맨몸에 빈손으로 가만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도록 한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다. 
사태에 책임이 있는 정부의 당국자들과 국회의원들은 농민들 집회에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 표가 되는 곳이라면 결혼식장, 상갓집은 물론이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조기축구회 모임이나 초등학교 운동회는 물론이고, 하루 저녁에 열 번씩이나 되는 술자리까지 마다하지 않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2만 명이나 되는 전국의 유권자들이 모인 자리인데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몇 명을 빼놓고는 얼굴을 내민 국회의원이나 정부 당국자는 없었다. 웬만한 자리라면 기를 쓰고 발언기회라도 얻고자 했을 대선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기야 대통령도 농민들의 분노가 걱정되어 미리 참석을 약속한 전남도청 개청식 행사에 불참할 정도이니,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다. 

오늘의 이 사태에 이르게 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들, 농민들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규탄하는 그 사람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들이 돌멩이라도 얻어맞겠다는 심정으로, 집회 현장에 나와 생생한 농민의 분노를 직접 몸으로 들었다면 어땠을까? 국제화 시대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있는 그대로 설명을 하고,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 개선의 여지를 차분하게 설명하고, 그동안 생각했던 정책만으로 부족한 것이 있다면 겸허하게 농민들의 요구를 수용하려고 노력하는데도 숱한 부상자가 나오는 유혈 충돌로 이어졌을까. 

국민을 위해 일해 달라고 뽑은 사람들이기에 그들을 국민의 공복, 즉 국민 모두의 종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들의 자리는 자처하여 차지한 것이다. 종이 되겠다고 자처한 사람들이 주인의 분노를 외면하고, 또 다른 종을 내세워 주인의 분노를 진압하려는 상황이 바로 농민 시위에서의 충돌과 유혈사태의 핵심이다. 

돌을 맞겠다고 자청하는 정치인은 진정 한사람도 없는가. 대통령을 위해 대신 돌을 맞겠다는 충직한 정치인도 있는데, 돌을 맞더라도 농민의 분노, 나아가 농민의 고통과 함께 하겠다는 정치인은 왜 한명도 없는 것일까.

떳떳하게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절규에 대한 답은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이게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는 나라인가.

 press_20051122_100356_485.jpg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