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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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스(NEIS) 사태의 핵심 이해하기(경향잡지 2003년 7월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0 18:06
조회
571
네이스(NEIS) 사태의 핵심 이해하기

    교단 내 세력다툼으로 변질된 네이스 문제
네이스(NEIS, 교육행정정보 시스템)를 둘러싼 갈등과 혼란이 점점 우려되는 사태로 진전되고 있다. 전교조 교사들의 저항은 점점 더 거세지고 네이스 문제를 둘러싼 찬반 입장은 끝을 모른 채 날카로운 대립을 하는 가운데, 정작 네이스에 자신의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논의나 사태의 진행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
네이스 문제의 본질이 정보인권의 문제인지, 교단 내의 세력다툼인지조차 헛갈리는 상황이고, 진지한 논의보다는 ‘밀리면 끝장’이라는 식의 악다구니가 판을 지배하고 있다. 다름 아닌 우리 아이들의 교육현장의 이야기이다.
가장 큰 책임은 교육부에 있다. 교육부는 네이스 시행을 앞두고 교직원, 학생, 학부모들과 진지한 대화나 의견 수렴과정도 거치지 않고, 그저 임기응변식으로 말바꾸기를 계속해 왔다. 시행한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고3만 시행하고 다른 학년은 내년에 가서 보자고 했다가, 지금은 또 단위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고 공을 떠넘겼다. 이리저리 말을 바꾸기는 했지만, 한다, 안한다는 이야기는 그저 국면을 타개하려는 립서비스였을 뿐이지,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네이스를 강행하겠다는 기조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교육부만큼 잘못이 크지는 않지만, 교육감단, 교장단, 교총, 전교조 등의 교육주체들이 쓸데없이 감정을 이입하며 네이스 문제를 꼬이게 만든 책임도 지적되어야 한다. 네이스 문제에 대해 입바른 소리를 했는데도 싸잡아 비판하는 것에 대해 전교조의 불만이 있을지 모르나, 전교조가 좀더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방향으로 세련되게 싸우지 못했다거나 교단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정보니 인권이니 하는 것에는 거의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그저 전교조가 반대하니까 우리는 찬성한다며 ‘적의 적은 동지’라는 식으로 덤벼들고 있는 교육감단, 교장단, 교총 등과 전교조를 비교하는 것은 미안하긴 하다.

    네이스 사업은 로또 복권에 비길 수 없는 대박
네이스 시행에 대해서는 이미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침해의 우려가 크다며 중단을 권고했고, 뒤늦게 알려지긴 했지만 감사원도 교육부에 대한 감사 결과 네이스 시행을 유보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하였다. 싸움의 복판에 휘말린 전교조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대하고 있으며 일부 인권단체는 단식농성까지 벌이고 있다. 한결같이 귀담아들어야 할 주체들이 네이스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왜일까?
문제는 간단하다. 네이스라는 시스템이 새롭고 편리하긴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정보가 학교 담을 넘어 한곳에 모이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정보를 수집하고 모아두고 사용하려면 정보를 제공하는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그런 절차도 없고, 모아둔 정보가 어떻게 쓰일지나 방호체계가 뚫리게 될 경우의 위험에 대한 대비도 없다. 당국은 입만 열면 방호체계는 안전하다고 하지만, 컴퓨터 전문가들의 진단에 의하면 100% 뚫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국이 모아두려는 정보도 교육과는 상관없는, 자칫하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들도 적지 않다. 초등학교 때의 잘잘못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쫓아다니게 되고, 이러한 정보는 자신이 고용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은 기업 등에게 팔려나가기 딱 좋게 구성되어 있다. 짧은 지면에 일일이 소개하기 힘들 정도로 문제와 허점 투성이이고,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시스템이다.
그런데도 교육부와 이 사업의 주체로 선정된 삼성 SDS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네이스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얼른 이해가 안된다는 분들도 있지만,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를 모아두는 것이 돈도 되고 권력도 된다는 상식을 떠올리면 해답이 나온다. 날마다 타인의 정보를 빼돌려 무슨무슨 장난을 쳤다는 범죄기사들이 신문 지면을 채우고 있는 세상이다.
5년 전에 인권침해 가능성 때문에 무산된 전자 주민 카드 시스템 도입을 강행하려고 정보기술(IT) 관련 재벌들과 행정자치부가 사활을 걸고 뛰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행자부는 아직도 주민등록증을 IC칩이 내장된 스마트카드로 바꾸고, 여기에 건강보험증, 운전면허증, 신용 카드, 교통 카드 등을 포함시키는 통합 전자 주민 카드 시행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민간기업들이 전자 주민 카드 시행을 위한 컨소시엄까지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정부의 언질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삼성 SDS가 교육부와 함께 네이스 시행을 위해 혈안이 되어 각종 로비에 힘을 쏟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당연한 일이지만, 내수시장에서 네이스 시행처럼 어마어마한 예산이 투여되는 국책사업을 맡는 것은 로또 복권 당첨에 비길 수 없는 대박이 터지는 일이다.
돈도 엄청 벌고, 네이스 시행업체라는 브랜드 이미지도 강화하고, 다른 곳에 쓰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있지만 전국의 모든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고, 국민들에 대한 통제에 관심이 많은 독재정권에 시스템을 수출할 수도 있으니, 돈이 된다고 하면 애들 호주머니를 터는 장사에서부터 뭐든 빠지지 않는 재벌들이 네이스 시행에 그토록 목을 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인권은 스스로 지켜라

그럼 남는 건 뭔가? 교육부 관료들이 이미 수백억 원의 예산이 투여되었으니까, 문책을 당하지 않으려고 네이스를 시행해야 한다고 우기고, 삼성 SDS는 황금알을 낳는 유망사업을 절대 놓칠 수 없기 때문에 버티는 것인데, 그러면 모든 권력의 원천인 주권자이고, 꼬박꼬박 세금 내는 납세자이고, 개인정보까지 제공해야 하는 국민들은 언제나 고분고분하기만 한 봉이란 말인가.
네이스 문제가 어떻게 풀릴지는 쉽게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근대 시민혁명 이후의 인권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대로 자신의 인권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평범한 상식을 깨닫고, 작더라도 구체적인 실천에 나서는 시민이 늘어갈 때 네이스 문제도 가닥을 잡아갈 것이다.
5년 전 전자 주민 카드 시행을 막았던 열정과 참여, 그리고 시민사회의 건전한 상식이 아쉬운 상황이다.†

오창익 루가 / 인권실천 시민연대(http://www.hrights.or.kr)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