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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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안에서의 인권교육(사목 2003년 5월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0 18:08
조회
528

가정 안에서의 인권 교육


오창익(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내게는 초등학교 1학년생인 아들과 6살이 된 딸이 있다. 인권운동가로서 '가정과 인권'에 대해 늘 고민은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일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가는 일도 많고 아이들과 함께 놀아야할 주말에는 집회참석이다 무슨 행사다 해서 변변하게 아빠 노릇도 잘 못하고 있는 처지여서 늘 미안하기만 할 뿐이다. 자격이 부족한 아빠이긴 하지만, 어쩌면 자격이 부족할수록 가정에서 인권의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는 늘 고민스러운 과제이다.


아이들을 '위한' 체벌에 대한 고민

이를테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행한다는 '체벌'부터가 고민이다. 체벌은 확실히 교육적 효과가 있어 보인다. "맴매할 것이다"라는 말을 하거나, 맴매를 손에 들면 아이들은 금새 바뀐다. 아이들은 체벌을 피하기 위해 몸동작이 빨라지면 나는 아빠로서 교육의 효과를 실감하게 된다. 맴매 없이도 맴매하겠다는 소리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으니 막상 맴배를 하면 그 효과는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나타난다. 평소 아빠에게 존댓말을 거의 하지 않는 아이들도 맴매를 든 아빠에게는 존대말을 꼬박꼬박하고, 시키지 않아도 부동자세로 '차려'하고 있다.
체벌에 대한 첫 고민은 아이가 얼마나 아플까 하는 것이다. 나는 가정에서 매를 맞았던 기억은 없지만(맞은 적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부모는 내가 기억할 만큼 큰 다음에는 때리는 일이 전혀 없었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어릴 때 체벌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학교와 군대에서만큼은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맞으면서 컸다. 체벌이라고 부르기도 어렵고, 그저 폭력과 구타의 악순환이다 싶을 정도로 많이 맞았는데, 맞으면서 한결같이 느끼는 것은 당연하게도 "맞으면 아프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생각에 앞서 맞을 때의 고통은 너무도 분명하게 아픔을 주었다. 몸이야 정직한 것이니 내가 예전에 학교에서나 군대에서 맞아서 아팠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엄마나 아빠에게 맞으면 아플 것이다. 그래서 맴매를 하겠다거나 맴매를 손에 들기만 해도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공포는 공포에 대한 연상만으로도 몸을 움추리게 한다.
아이가 체벌을 연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흘릴 정도로 체벌의 고통은 구체적인데 과연 아이에게 고통을 줄만큼의 교육적 효과는 있는 것일까? 체벌에 대해 드는 두 번째 고민이다. 체벌의 교육적 효과는 언뜻 보면 상당해 보인다.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칠 정도로 버릇없이 굴 때, 아이가 하는 잘못을 즉각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다. 당장에는 큰 효과가 있어 보이는데, 그 효과가 지속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아이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어른들이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적 가치 등에 대해 서투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모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 아이들을 버릇없는 아이로 키우지 않기 위해 체벌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고 해도, 체벌이 지니는 즉각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체벌은 효과가 빨리 나타나는 매우 경제적인 교육수단이긴 하지만, 체벌 외에 다른 교육 방법은 없는지, 무엇이 진정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기 위해 적합한 교육인지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정말 자신이 없어진다.
체벌은 효과가 분명하지만 체벌이 반복될수록 효과는 줄어들고, 줄어든 효과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체벌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처음 체벌을 할 때는 체벌의 교육효과나, 맞으면 얼마나 아플까에 대해 생각하지만, 결국 더 자주 더 세게 때려야 하는 상황이 되면 부모는 최소한의 고민도 없이 체벌을 가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체벌이 교육적 효과가 있는가 없는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체벌이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사실이다. 나를 포함한 거의 모든 부모들은 아이들을 때리는 것이 옳지는 않더라도 아이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 아이들이 올바로 커나가도록 돕기 위해서 마음이 아프더라도 설령 아이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때려야 할 때는 분명하게 때려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인권의 잣대로 보면 부모에게는 아이들을 때릴 권리가 없다. 목적이 선하다고 해서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라크에서 설령 대량학살무기가 발견된다고 해도 미국이나 영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서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목적이 수단까지 정당화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어린이들에 대한 국제인권조약인 유엔 아동권리협약(1989년)은 제19조에 "모든 형태의 신체적 폭력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세계인권선언 2조도 사람은 누구나 차별적 대우를 받아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어른들이 누군가에게 맞지 않아야 될 권리가 있듯이 아이들에게도 그런 권리는 '당연히' 있다. 그러나 가정에서는 이런 당연함이 때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솔직히 매우 자주 부모의 편의나 이기심 때문에 묵살되고 있다.


가정에서의 인권

가정의 중요성은 누구나 강조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사도직 활동]은 가정과 가정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사도직을 위한 양성은 아동 교육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 자녀들의 가정 교육은 부모의 책임이다.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모든 사람을 사랑하사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물심양면으로 어려운 이웃 사람들을 배려하도록, 특히 모범으로 자녀들을 점차 가르쳐 나가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다. 그러므로 가정과 가정의 공동 생활은 사도직의 실습이 되어야 하겠다"(30항).
가정이 모든 것의 기본이듯, 인권도 그 중요함을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인류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의 고유한 존엄성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 곧 인권을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가 된다"고 세계인권선언 전문이 강조하는 것처럼, 인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이고, 질서이다.
가정과 인권은 각자 '모태 ' '기본' '원칙' 등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으며, 국가, 사회 등 인간이 배태시킨 모든 제도와 법률과 체제는 가정과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인권이 기본적 가치일수록 가정에서의 인권은 더 중요해진다. 그러나 체벌을 통해서도 살펴보았지만, 가정에서 인권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부모와 자녀가 올바르게 역할을 합리적으로 구분하고, 부모가 자녀도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가정의 모든 일을 구성원 중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정해나가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남녀가 여전히 유별(男女有別)하며,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엄연한 한국의 가정이라면 더욱 그렇다.
제사, 손님 치르기, 가사노동은 온통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면서 여성들은 명절을 앞두고 저절로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는 것이 한국 가정의 현실이다. 끊임없는 경쟁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흔히 가장이라 불리는 남성들에게도 가혹하기만 해서, 남성들은 "집에서만이라도 쉬고 싶다"를 연발하고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탐욕스럽기만하고 기실 대책도 없는 사교육 시장의 먹이가 되어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공부에 공부를 거듭해야 하고, 공부에 시달리다가 짬이라도 날라치면 인터넷 게임 등이 가만 놔두지 않는다.
가정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가정 구성원간의 사랑과 신뢰는 찾아보기 힘들고, 최소한의 대화마저도 상실된 가정이 한둘이 아니다. 상황은 매우 힘들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상황에 우리 가정이 놓여 있다. 누구나 가정에 대해서 잘 해보고 싶지만 상황은 늘 곤혹스럽다. 모처럼 시간을 내서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며 먹어보기도 하지만,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인권교육에서 답을 찾아보자.

그럼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할까. 수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또 논의만큼 많은 이런저런 답에도 불구하고, 가정에 인권을 착목시키는 쉽지 않은 일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부모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일단 인권 교육에서부터 답을 찾았으면 한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가정에서 인권교육을 진행하면 많은 것을 함께 얻을 수 있다. 우선 부모는 자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공부해야 하는데 인권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사실 부모들에게도 인권에 대해 배우거나 공부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중학교 때는 '도덕', 고등학교 때는 '윤리', 그것도 '국민으로서의' 윤리를 배우기는 했어도 정작 인권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세월이 많이 변해서 인권대통령을 자임하는 전임 대통령에, 인권변호사 출신의 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인권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되었지만, 인권교육은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부모는 인권에 대해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자신이 그동안 자녀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혹시 체벌을 통해 자녀를 바로 키울 수 있다는 믿음처럼 잘못된 확신에서 비롯된 비인격적인 교육을 하지는 않았는가 등을 성찰할 좋은 기회가 된다.
또한 인권을 가르치는 과정 자체가 주는 이득도 중요하다. 인권교육은 자녀를 사람다운 사람으로 이끄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통해 경쟁논리에만 충실하도록 길들여진 사람들이 보여준 비뚤어진 모습은 익히 많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초등학생에 불과한 어린이들에게 축구를 더 잘해야 한다면서 합숙을 시키는 어른들의 이기심이 낳은 참사를 지켜보고서도 깨닫지 못한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말인가.
누구나 생명 경시 풍조, 폭력에 대한 숭상, 도덕성의 위기를 걱정하지만, 정작 답은 별로 없어 보인다.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려면 스스로를 귀히 여기면서도 공동체적 인성을 강조하는 인권교육이 꼭 필요하다. 전쟁 영화를 보면서도 전쟁영웅의 눈부신 활약보다는 그 뒤에 숨은 민간인의 희생, 또는 영웅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 다른 숱한 사람들의 고초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 자녀들은 인권교육을 통해 더 풍성해질 수 있고, 더 진지해질 수 있고, 세상이 나와 이웃의 협력을 통해 더 살만한 세상으로 바뀔 수 있다는 희망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권을 가르치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인권교육이란 것이 단순히 지식정보를 전달하고, 1215년에는 마그나카르타(대헌장), 1789년엔 프랑스대혁명 식으로 연도에 사건을 꿰맞추면서 외우기만 하면 되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가치를 전달(이 전달도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오히려 나눔에 가깝다)하기 위한 교육이기 때문이다. 교육을 진행하는 사람이나 피교육자나 충분한 교감을 나누고, 충분히 대화하고, 충분히 이해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정에서 인권교육을 하다보면, 별로 인권적이지 않은 가정현실도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옳지 않은 현실은 고치면 그만이겠지만, 고치기 힘든 현실 앞에서 혼란이 더해질 수도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모든 사람은 "나이, 성별... 따위에 의해 차별받으면 안된다"고 인권을 가르쳐주면서도, 동시에 형이나 언니에게 나이 어린 동생에게 양보할 것을 권하기도 해야 한다. 이런 경우 당장 동생에게 양보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자녀가 왜 나만 양보해야 하냐, 왜 나를 차별하냐고 부모에게 배운대로 저항을 하는 상황도 목격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풀겠다고 다짐에 또 다짐을 해도 구체적인 상황은 곤혹스럽기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인권교육은 더 중요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인권은 대체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한 답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리 고민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앞에서와 같은 큰 아이의 저항에 대해서도 할말은 얼마든지 많다. "너는 크고 힘이 세기 때문에, 너보다 약한 사람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 그건 엄마 아빠가 너보다 크고 힘이 세기 때문에 너를 지켜주고 너를 먼저 챙겨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너는 네 동생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 힘이 센 사람이 자기 몫만 챙기고 힘이 약한 사람을 먼저 돌봐주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는 힘센 사람만이 살아남을텐데, 그런 세상은 우리 아들(딸)이 바라는 아름다운 세상은 아니겠지."
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인권교육'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자녀를 위해 좋은 욕심을 내는 것이다. 일단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시작해보는 것이 중요하고, 인권교육을 진행하면서 조금씩 배워나가고, 조금씩 고쳐보겠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떤 교육이든 부모가 직접 자녀와 함께 무릎을 맞대고 호흡을 나누는 기회가 갖는 장점도 물론 포기할 수 없는 좋은 소득이다.


인권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구체적인 방법은 가정의 형편에 따라 진행하면 된다. 가급적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는 것이 좋은데,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다만 30분이라도 인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일단은 세계인권선언이나 아동권리협약 등의 문건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각 조문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각 조문의 현재적 의미(또는 자녀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세계인권선언만 하더라도 전문을 제외하고 본문만 30개조가 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조문씩만 함께 생각해보더라도 7개월이 걸린다.
기본적인 문건을 함께 읽고 난 다음에는 인권의 역사에 대해서도 함께 공부해보면 좋을 것이다. 왕에게만 있던 권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인민에게도 보장되었는지에 대한 교육을 통해 인권이 거져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지금 보장된 권리라고 하더라도 주체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나의 인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이 끝난 다음이어도 좋고, 그동안이어도 좋은데, 괜찮은 방법의 중의 하나는 신문을 놓고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사를 고르도록 해서 왜 이런 기사를 골랐는지, 보도된 기사가 왜 문제인지,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이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들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이 문제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이 문제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등 풍성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한번 이야기를 나눈 주제에 대해서는 차곡차곡 스크랩을 해두는 것도 좋다.
물론 가정에서의 인권교육이 쉽지 않은 일이고, 가정에서 제대로 인권교육을 진행하는 부모가 쉽게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별로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가정에서의 인권교육은 사람다운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 한번쯤 욕심낼만한 일인 것도 틀림없다.


아니면 주일학교에 보내라

만약 가정에서의 인권교육에 대해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은 자녀를 주일학교에 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도 좋다. 가정에서의 인권교육이나 주일학교를 통한 교회교육은 모두 가치를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피교육생으로 하여금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하고, 깨달은 바를 내면화하며, 종국에는 사람의 변화를 꽤하며, 이를 통해 나와 이웃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인권교육과 교회교육이 모두 '사람'을 위한 교육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주일학교를 중심으로 교회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기껏해야 대학생 정도로 전문성이 부족하고, 썩 신뢰할만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사람을 위한 교육'이 지닌 장점은 전문성의 부족 따위를 충분히 상쇄할만하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교회에 나가서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소중한 사람이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내 친구도 소중하다. 하느님은 나를 무척 사랑하시지만, 나만 사랑하는 것은 아니고,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내 친구도 사랑하신다. 누구든지 또 어떤 사람이든 그가 잘 생겼건 못생겼건, 집이 부자이든 아니든 하느님을 똑같이 사람을 사랑하신다." "나는 하느님의 큰 사랑을 받았으니, 그만큼 아니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나도 착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겠다"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고 생각해보라. 이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바라는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자녀가 사람다운 사람으로 커나가기를 바란다면 집에서 인권교육을 시작하거나, 그것도 힘들다면 자녀를 주일학교에 꼭 보내야 한다. 유치부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서 주일학교에 보내고, 주일학교에 가는 것이 참 좋은 일이고, 엄마 아빠가 진정으로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일러주어야 한다.


십계명이랄 것은 없지만

다음은 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생각해볼 몇 가지 지침이다. 이런 정신과 자세를 늘 기억했으면 하는데, 이것은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정마다 형편에 맞게 고쳐서 써도 좋고, 가족 구성원이 서로 제대로 사랑하기 위한 열가지 약속 등을 정해보는 것도 좋겠다. 열 가지 약속을 매년 새해나 결혼기념일 등 가족 기념일을 맞아 갱신해 보는 재미도 적지 않을 것이다.




1. 자녀도 독립된 인격체라는 인식을 부모가 먼저 가져야 한다.
2. 가정 안에서의 의사결정에서 자녀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하고, 가족회의 등을 통해 민주적이고도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3. 자녀의 진로에 대해 부모는 단지 조언의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
4. 형제자매간에 성별, 나이, 학업 성적 등의 이유로 차별대우가 있어서는 안 된다.
5. 자녀를 이웃의 자녀들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
6. 자녀가 잘못을 했을 때는 일방적인 체벌보다는 왜 잘못인지를 깨닫게 하고, 스스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7. 교육적 체벌도 가급적 삼가야 하며, 부득이한 경우에는 감정이 섞여 있지 않은지 부모 자신이 먼저 성찰해야 한다. 자녀를 때리지 않고도 기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욕설을 해서는 안 된다.
8. 자녀를 흥분한 상태에서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9. 자녀들이 다른 사람의 권리도 존중할 줄 아는 생각과 생활태도를 지니도록 늘 가르쳐야 한다.
10. 자녀의 일상생활에 대해 깊은 관심을 지니되, 자녀의 사생활도 보호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