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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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통합망 구축의 위험 (한겨레 06.08.04)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6:24
조회
239

형사 관련 정보를 한데 묶는 형사사법 통합정보체계(형사통합망)가 구축되고 있다. 경찰·검찰·법원·법무부 등 주요 형사사법 관련 기관뿐 아니라, 국정원·정통부·건교부·관세청 등 거의 모든 중앙 행정부처와 자치단체까지의 형사 관련 정보를 통합하는 기제다. 조사·기소·재판·교정까지를 한 번에 전자적으로 처리하여 편리하고 효율적이란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가 없다. 어떤 정보를 입력하는지, 입력된 정보는 언제까지 어떻게 관리하는지, 모아진 정보를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없다. 국가가 민감한 개인정보를 수집·관리하려면 반드시 법률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형사통합망의 경우에는 법적 근거도 없이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다. 법원·검찰·경찰이 각기 관리했던 형사정보망이 법적 근거 없이 관리되는 현실의 반복이지만,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해진다.


형사통합망에는 사법경찰관이 임의로 작성한 수사 보고서나 증거능력도 없는 피의자 신문조서 따위의 서류도 수록된다고 한다. 20만원어치 무전취식도 경찰관이 임의로 작성한 수사 보고서에는 언제나 “돈을 낼 의지나 능력도 없다”고 적혀 있다. 마음속에 들어가 본 것도 아닌데도 전국 어디나 한결같은 표현을 쓴다. 전과가 있다면 예외 없이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한다. 일선 조사관의 편견은 기소·재판 단계에서도 거의 수정·보완되지 않고 있다. 돈을 낼 생각이 있었다고 항변해 봐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건 종이서류에 국한되어 있고, 해당 사건에 국한되어 있다. 형사통합망이 구축되면 그때는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어릴적 수박이나 참외서리 경력부터 흔한 동네싸움 따위가 범죄경력으로 관리되고, 유죄 입증을 위해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에 적는 흡연 여부·주량·재산·가족 상황 따위부터 사건과 별 관계도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폐쇄회로 카메라 녹화물까지 모두 통합망에 담기게 된다. 피의자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방어할 기회도 없이 수사기관의 편견에 따라 재단되어 죄질 나쁜 범죄자가 되고, 시시콜콜한 자료는 양형자료로도 쓰이게 된다.


형사통합망이 소수의 범죄자만 겨냥하기에 선량한 다수의 시민과는 상관없거나, 심지어 범죄자에 대한 꼼꼼한 관리가 사회를 더 안전하게 할 것이란 생각은 아예 접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발생하는 형사사건은 정식으로 입건되는 사건만 쳐도 무려 268만건이나 된다. 매년 268만명의 국민들이 자신의 정보를 법적 근거도 없이, 기한도 없고, 어디다 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국가에 고스란히 넘겨야 한다. 이름만 검색하면 행적을 파악할 수 있는 위험한 기제가 다수 국민을 겨냥하고 있다. 구글에 떠있다는 주민번호 90만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


민감한 인권 현안인데도 일반 시민이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공청회 등 절차에서의 투명은 시늉뿐이고, 실질은 온통 관료들의 이해만을 담고 있다. 중요한 인권현안을 사회적 논란 없이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관료의 능력으로 여겨지는 한심한 상황이다. 대통령 등 정치권력이 관료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는 상태에서 관료들의 행패를 막을 방도는 별로 없어 보인다.


인력·예산·권한, 그리고 개인의 영달을 탐하는 관료들과 돈을 쫓는 대기업의 소리없는 민첩한 움직임은 마치 한강에 나타난 영화 속 괴물과도 같다. 국민은 고려조차 없다. 영화는 괴물에 대한 응징이 가족을 스스로 지키려는 피나는 투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 그럼 우리도 괴물을 잡기 위해 다시 소주병을 모으기라도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