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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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위는 어떻게 가능한가(한겨레,060825)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6:25
조회
251

포항 건설노동자 하중근씨가 숨졌다. 지난해 농민 두 사람이 경찰폭력으로 숨진 지 겨우 7개월 만의 참극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과 유족에게 사죄하며, 공권력이 남용되면 국민에게 미치는 피해가 치명적이어서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또 생겼다. 집회 현장에서 흥분한 전투경찰이 방패로 시민을 때리고, 소화기를 휘두르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재발 방지책도 없었지만, 폭력의 원인을 제대로 짚지 않은 이유가 더 크다.


국무총리와 일부 민간인사들이 ‘평화적 집회·시위’를 위해 민관공동위원회를 구성해 활동 중이다. 경찰 폭력으로 농민이 사망한 사건 직후 만들어진 위원회가 ‘평화적 집회·시위’를 강조하는 속내도 의심스럽지만, 의제도 ‘평화적 집회·시위’의 본질과는 무관한 엉뚱한 내용들이다. 하품 나는 논의가 계속되는 사이에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임신 5개월 된 여성은 유산했다.


누구도 말로는 집회와 시위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누구나 집회와 시위가 민주 국가의 핵심적 기본권이라고 말한다. 시민 처지에서는 숨통과 같은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말만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집회와 시위와 관련된 두 가지 핵심은 못 본 척하면서 딴소리만 잔뜩 늘어놓는다.


첫째는 법률적 제재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법률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4·19 이후 데모하지 말자는 데모까지 있을 정도로 민주주의는 성숙하지 못했고, 다수의 시민들은 집회와 시위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편승한 군부 쿠데타 세력은 1962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만들었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하위법으로 제한하는 이 유례없는 법률은 군부정권의 종식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존속하고 있다. 집회와 시위에 대한 행정적 관리가 필요하다면 다른 나라들처럼 행정조례 정도면 충분하다. 집회와 시위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고, 기본권을 행사하려는 시민에게 각종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어기면 형사처벌까지 하는 무서운 법률이 민주화되었다는 지금까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둘째는 인적 시스템이다. 한국에서 집회·시위를 관리하는 인적 시스템은 ‘전투경찰대 설치법’에 근거한 전·의경 제도다. 전투경찰대 설치법은 대간첩 작전 수행을 위해 1970년에 만들어진 법률인데, 전두환 정권이 1980년 법개정을 통해 ‘치안업무 보조’란 말을 슬쩍 집어넣었다. 이것이 5만여 전·의경이 활동하는 법적 근거다.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 행사를 하려는 시민들은 일상적으로 ‘전투’를 목적으로 창설된 부대와 맞닥뜨려야 한다. 이 부대의 구성원은 군복무를 대신해 끌려온 스무살 남짓의 젊은이들이다. 1919년 발족한 국제노동기구의 규정으로 봐도 명백한 강제노역이다. 직업 경찰관보다는 고참이 훨씬 무서운 내무생활을 하고, 진압기술도 고참에게 배운다. 전투의 기본은 적개심의 고취이고, 이들의 주적은 집회·시위에 참여한 시민들로 여겨진다. 전투경찰제 역시 집시법처럼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집시법과 전투경찰이라는 유례없는 두 가지 시스템을 둔 나라에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없다. 이런 시스템은 끊임없이 집회·시위와 관련된 폭력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과거청산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지만, 박정희·전두환씨가 정권안보만을 위해 만든 핵심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자기들은 권력을 잡았기에 불편한 것이 없겠지만, 시민들은 죽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