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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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음악인의 따뜻한 꿈 - 가수 겸 작곡자 이지상의 「기억과 상상」 (경향잡지 06.8월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6:21
조회
318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시노래 동인 [나팔꽃]의 멤버이고, 지금까지 4장의 앨범을 발표한 중견 가수이지만, 이지상은 대중에게 너무 낯설다. 드라마, 연극, 영화음악을 만들어낸 작곡가, 각종 대형공연의 음악감독, 라디오 음악전문 프로그램의 DJ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지상은 너무 낯설다.


 흔한 기획사 또는 소속사도 없이 작사, 작곡, 녹음, 그리고 유통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혼자 소화해야 하는 비주류 음악인이기 때문에, 입소문을 듣고 앨범을 구해보았거나, 인권이나 평화, 환경 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열리는 ‘아주 특별한’ 콘서트에 와 본 사람이 아니라면 그의 이름 석자를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김광석, 안치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포크음악계의 실력있는 가수이고 시를 제대로 공부한 문학도이기에 시와 노래의 하모니를 가장 잘 이끌어내는 음악인이라는 찬사가 그에게 쏟아져도 그는 비주류이다. 대중과 만나 소통하는 일반적인 경로에서 비켜난 탓이다. 그에게 있어 비주류는 훈장이자 멍에이다.


 이지상은 스스로 비주류를 선택한 별난 사람이다. 대부분의 주류 가수들처럼 오로지 영리만을 추구하는 기획사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음악을 팔고 싶지 않기에 스스로 소외를 선택했다. 돈이 사람을 제치고 주인 노릇을 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체제에서 자신의 음악을 오로지 돈을 위해서만 파는 짓은 영혼을 파는 일이라고 믿는 고집이 이지상을 비주류 음악인의 자리에 묶어 두고 있다. 



10대를 중심으로 한 주류 음악시장이 난삽한 기교로 성적 흥분만을 자극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지상의 음악은 더욱 낯설다. 정통 포크의 장점을 잘 계승하고 있지만 그의 노래는 너무 느리고, 일체의 전자적 자극도 들어 있지 않다. 오로지 선명한 음율과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는 가사만이 생생하게 살아있을 뿐이다.


 새벽에 작업하기 좋아하는 이지상이 어느날 새벽의 느낌을 노래로 만든 「폐지 줍는 노인」은 도시의 구석, 생활고에 쫓긴 노인들이 다만 삼천원의 돈을 위해 벌이는 처연한 노동을 보는 이지상의 눈이 어디에 가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당신이 끄는 손수레엔 새벽이 가득 실려있고
그 안엔 빈병과 폐지와 먹다 남은 피자도 있고
당신은 우는 듯 어두운 골목길 서성이다
당신은 웃는 듯 새벽을 향해 걸어가다.
간밤에 세상이 토한 추한 흔적들을 밟고 서서
수척한 그 어깨 위로 세상의 아침을 주워 담고
세상의 한 복판에서 길을 잃은 노인처럼
두리번두리번 거리다 또 폐지를 찾아 걸어가다
그랬어 당신은 나의 고단한 새벽을 깨우는
그랬어 당신은 나의 지친 일상을 뒤흔드는 사람


폐지 줍는 노인을 보며 이지상은 값싼 동정이나 가진 자로서의 교만이 아니라, 일상을 뒤흔들고 새벽을 깨우는 풍경을 본다. 흔히들 말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선택이나 민중과의 연대의 실상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지상의 직관은 우리에게 아픈 각성을 바늘처럼 찔러댄다.


 이지상의 마음은 늘 함께 아파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의 그것과 같다. 미국이 벌인 침략전쟁 때문에 이라크에서 아무 이유없이 죽어가야 하는 아이들의 참상이 그의 눈을 비켜가지 않고, 미군 장갑차에 숨진 겨우 열다섯의 소녀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법도 없다. 그렇다고 이지상의 정치적 이슈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이른바 ‘경향적’ 문예활동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귀히 여기는 그의 마음은 대구지하철 참사에 의해 희생된 이름없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진다. 아득한 어둠 속에서 숨막히는 목소리로 가족과 마지막 통화를 하던 희생자의 절규를 잊지 않고 있으며 세상의 고통과 연대하려는 이지상의 마음은 그가 믿고 의지하는 하느님의 마음을 많이도 닮아 있다.



이지상이 최근 내놓은 4집 앨범 「기억과 상상」은 전쟁, 가난, 뜻하지 않은 사고 등 결코 안녕하지 못한 우리의 시절을 담담하게 담고 있는 「기억」과 두려운 사랑이지만 사랑으로 하여 선분홍빛 꿈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은 「상상」으로 나눠져 있다.


 기억하고 상상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는 바 전부이다. 우리는 매일처럼 기억을 되풀이하고 또 상상을 반복한다. 이지상에게 기억과 상상을 돕는 열쇠말은 연대와 사랑인 것 같다.


  이지상의 4집 앨범 [기억과 상상]은 쉽게 구할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이지상의 홈페이지 http://www.poemsong.pe.kr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곳에 가면 이지상의 다른 앨범도 구해 볼 수 있다. 특히 정호승의 시에 곡을 붙인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란 곡을 꼭 만나보길 권한다. 신약성서 27권을 한곡의 노래에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 곡이다. 


* 이 글은 경향잡지 8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