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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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이 전두환씨보다 나은 것은? (한겨레 06.07.14)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6:14
조회
237

지난 수요일 서울시청 앞에는 2004년 탄핵반대 집회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집회였다. 참가자들은 격앙되었고,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는 격문이 발표되었다. “노무현 정권 퇴진하라!”는 구호가 나오기도 하였다. 격앙되었지만, 큰 집회에서 가끔 보이는 일탈은 없었다. 경찰이 말하는 죽봉이나 물푸레나무도 없었다. 그저 아우성과 절규, 그리고 맨몸의 저항이 있을 뿐이었다.


이날 경찰은 2만여 경찰인력을 동원해 청와대를 중심으로 스크럼을 짰다. 세종로·종로 등 큰길은 물론, 간선도로나 좁은 골목 할 것 없이 청와대 방향으로 난 길에는 어김없이 경찰의 봉쇄가 있었다. 돌아갈 길도, 한 사람 빠져나갈 숨통 같은 것도 없었다. 아예 광화문역과 경복궁역, 안국역에서는 차량을 정차시키지 않는 배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교통의 원활한 흐름이나 생업에 종사하는 시민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오로지 대통령 1인만을 고려한 원천봉쇄였다. 지역의 치안현안을 내놓고 저 멀리 경남 쪽에서까지 올라온 경찰 인력은 경찰이 시민이 아니라, 대통령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 숱하게 보았던 장면이 재현되고 있다.


대통령만을 위한 경찰의 원천봉쇄와 대통령을 향한 시민의 저항이 거리 곳곳에서 충돌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제2의 을사늑약이나 한일합방과 다를 바 없다”는 시민들의 절규에 대한 대통령의 답은 미리 들은 바 있은 터이다. 대통령은 시민들이 오해하고 있고 이는 홍보가 부족한 탓이라며, 대책팀을 가동해 홍보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이미 공중파 텔레비전을 비롯해 국정홍보처가 뿌려대는 장밋빛 미래가 넘쳐나는데도 단지 홍보가 부족한 탓으로 돌리는 그 단순한 우직함이 놀랍다. 국민을 단지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보는 그의 시각이 이젠 무섭기까지 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에 환호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남은 잔정마저 떨어내는 상황이다. 구제금융 사태를 불러온 전직 대통령에 빚대, 돌아온 와이에스(YS)라거나 전두환과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린다. 대통령 자신이나 대통령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일부 사람들에게 전두환이나 김영삼과 닮은 노무현이란 표현은 그 자체로 모욕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자신의 생각을 국민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밀어붙이는 오만과 독선이나, 길거리에서 시민을 대하는 태도는 전직 대통령들과 너무도 닮았다.


평화적 인권운동을 탄압하는 것도 여전하다. 인권운동가 박래군은 올 들어 벌써 두 번째 구속되었다. 평화행진단에게 몽둥이를 휘두른 사람들에게 조처를 취해 달라고 평택경찰서를 방문한 것이 죄질 나쁜 공무집행 방해로 둔갑한 것이다. 박래군에게 적용된 혐의도 가당찮은 것이지만, 그 혐의를 그대로 인정한다고 해도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는 그를 구속한 처사는 이해할 수 없다.


인권운동가를 구금해서 양심수로 만들고, 국운이 걸린 중대한 사안을 자기 혼자 결론내고 국민은 그저 대통령의 시책을 묵묵히 따라야 한다고 여기거나 원천봉쇄를 통해 시민의 저항을 경찰력으로 짓누르는 것은 전직 대통령들의 행태와 너무 닮았다. 관계 장관 몇 명을 내세워 ‘평화시위’ 운운하면서도 정작 너무도 평화적인 기자회견이나 1인 시위마저 봉쇄하고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까지 나는 노무현 정권에서 인권의 진전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이제는 그 주장을 철회하고자 한다. 노무현 정권에서 인권은 본격적으로 후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