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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법원1] - 사법부는 과연 듬직한 인권의 보루인가(04.4.26)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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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10-23 11:07
조회
389

 2004. 4. 26


인권과 법원 - 사법부는 과연 듬직한 인권의 보루인가


- 에피소드 하나 -


조작간첩 중에 강희철씨란 분이 있다. 제주도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가 일본에 있는 삼촌에게 다녀온 것이 그 유명한 고문기술자 이근안에 의해 간첩활동으로 조작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분이다. 강씨가 북한의 공작원이란 증거는 일제 만년필 한자루가 전부였는데도 사법부는 두달 넘게 불법구금되어 있었던 강희철에게 간첩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하였다.


강씨의 대법원 재판에 참여했던 박우동(당시) 대법원은 뒷날 강씨 사건에 대해 자신의 회고록 [판사실에서 법정까지](1995)에서 강희철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사실 간첩과 같은 사건은 물증이 별로 없고 범인의 자백도 받아내기 어렵다. 수사기관에서 자백진술을 했다 하더라도 법정에서는 쉽게 뒤엎는다. 그런 류의 사건인데, 제 1심 법원에 이르기까지 자백이 연결되었으니 무죄로 구제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하물며 법률심에서야 더욱 그렇다. 국선변호인의 상고이유서라는 것도 성의가 보이지 아니했고, 피고인 본인의 상고이유서도 억울하다는 결론만 강조했지, 설득력 있는 논리적 전개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재판해야 옳겠다고 생각한 것은 공소 사실 자체에서 내다보이는 조작성 때문이었다. 북한에 다녀오고 말고는 고사하고, 국내에서의 간첩활동이라는 것도 어디에 발전소가 있고 군부대가 있고 하는 것을 탐지했다는 등 판에 박은 시나리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리가 없었다. 상고 기각의 판결이 불가피하고 보니 항소심 재판에 부아가 치밀었다. 사형 다음의 중형을 선고한 판결에 그렇게 아무런 감정도 고뇌의 흔적도 느낄 수 없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 재판장이란 사람이 원망스러웠다. 그 사건은 상고 기각이 되어 법률상 틀림없는 재판으로 확정되고 말았지만, 두고두고 꺼림칙해서 잘 잊혀지지 않는다.”(158쪽 - 160쪽)


그런데 박우동씨가 이 글을 쓰고, 출판할 때도 강희철씨는 영어의 몸으로 수감의 고초를 당하고 있었다. 그는 이 전직 대법관이 증언하는 말도 안되는 혐의만으로 꼬박 15년을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전직 대법관이 늦게나마 엉터리 재판에 대해 언급한 것을 그나마 고마워해야 할까. 아니면, 적어도 나는 상고를 기각하긴 하였어도 항소심 재판장과 달리 감정도 있었고 고뇌도 있었다는 고백에 대해 그래도 인간적인 판사였음으로 감사하기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판사는 그저 꺼림칙해서 잘 잊혀지지 않는다고 강희철씨에 대해 자신의 회고록 한쪽 구석에 언급해 놓았지만, 강희철씨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너무도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 에피소드 둘 -


가장 최근에 보도된 ‘재심’ 관련 사건 하나를 함께 읽어보자.  “아버지가 7년 만에 아들의 가해누명을 벗겼다”는 제목의 기사이다.


교통사고로 부인을 잃고 아들마저 가해자로 몰려 감옥에 보낸 아버지가 7년간 사건을 직접 재조사한 끝에 법원의 재심결정을 이끌어냈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 재심 결정이 내려지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교통사고 사건에 대한 재심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7년 5월8일 오후 경기 동두천시 외곽 국도에서 6중추돌 교통사고가 났다. 당시 남선우씨(62)의 아들 남모씨(31)는 어머니 등 3명을 태우고 2차선 도로를 달리다 1차선에서 나란히 오던 차에 들이받혔다. 이 사고로 어머니 등 남씨 차에 탄 3명은 모두 숨졌으며 다른 차량 운전자 4명도 큰 부상을 입었다. 남씨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으나 가해자로 몰려 있었다. 경찰과 목격자, 보험사 직원 등의 말에 따르면 남씨가 먼저 중앙선을 침범해 이 사고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남씨는 무죄를 호소했으나 1심에서 징역 3년, 항소심에서는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2002년 3월 복역을 마쳤다.


그러나 아버지 남씨는 아들의 무죄를 확신, 7년간 사건을 직접 재조사했다. 그 결과 추돌 흔적이 있는 사고차량 등을 증거로 당시 사건이 일부 조작됐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허위진술을 한 경찰과 목격자는 위증죄가 인정돼 벌금형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원은 작년 12월 남씨에 대한 재심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한 첫 공판이 지난 22일 형사항소4부의 심리로 열렸다.


남씨측은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으면 7년간의 고통을 보상받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이상주기자 sjlee@kyunghyang.com


기사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 재심 결정이 내려지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교통사고 사건에 대한 재심은 이번이 처음이다” 라고 전하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고, 어머니와 함께 탄 사람들이 모두 죽는 등 가정이 완벽하게 파괴되는 엄청난 일이었지만, 기사가 전하는 것처럼 대법원은 남씨에 대해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하였다.


이렇게 억울한 재판이 건국 이래 처음이 아니었을텐데,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도저히 그럴 수 없는데도 교통사고사건에서의 재심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법원의 역할은 한사람의 인생을 완벽할 정도로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또한 법원에 의해 실제로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을 감시하거나, 법원에 대해 민주적 통제를 가하려거나, 재판활동에 시민이 참여하거나 하는 개선의 노력을 별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이 형사재판과 ‘사법 서비스’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에 대한 여론조사를 진행하였는데, 이 결과는 국민 대다수가 법원의 재판이 빈부격차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불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변호사의 선임 유무가 재판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95.3%가 그렇다고 응답하였고, 재판이 부유하거나 가난한 사람, 지위가 높거나 낮은 사람들에게 똑같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83.7%가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전관예우에 대해서는 83.4%가 존재한다고 답변하였고, 국민의 73.8%는 법원이 재판절차의 불편함이나 어려움을 재판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배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재판결과에 대해서도 65.2%가 불만족스럽다고 응답하였다.


이렇게 사법현실에 대한 불만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사법현실을 개혁하려는 노력은 거의 진행되지 않고 있다. 오늘부터 몇주 동안 법원의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우리 모두가 바라는 사법정의의 실현을 위한 개혁방안을 말씀드리도록 하겠다.


<법원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대한민국 헌법 제 5장(101조 - 110조)은 법원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헌법 101조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해놓고 있다. 즉, 법원은 사법기관으로서 사법작용을 하는 헌법기관인데, 사법작용이란 법적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에 분쟁당사자중 일방 당사자의 청구에 따라 독립된 지위를 가진 제 3자적 입장에서 무엇이 법인가를 판단하고 선언함으로써 법을 유지하는 국가작용이다.


사법에 대한 권한은 법원이 행사하지만, 헌법재판중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위헌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은 헌법재판소가 관할하고, 국회의원의 자격심사나 징계처분은 국회의 자율에 맡기고 있고, 행정소송과 관련하여 그 전심(前審) 절차인 행정심판은 행정기관에서 다룰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사면, 복권, 감형 등은 대통령의 권한사항으로 되어 있다. 법원은 이들 예외를 제외한 사법작용을 하는 기관이다.


<소극적, 중립적 권력으로서의 법원>


국회는 법률을 만들고, 정부는 법률을 집행하는 등의 적극적인 국가작용을 하지만, 법원은 법을 인식하고 판단하고 유지하는 소극적인 작용을 담당하고 있다. 즉, ‘청구(형사에 있어서 형사소추와 민사에 있어서 소의 제기)’가 없는 경우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청구가 있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법작용을 한다.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은 이를 통해 사법권의 독립과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중심제에서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헌법 104조 1항)’고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헌법 104조 2항)하는 상황이고, 법원의 예산안은 정부가 편성하고 국회가 심의. 의결(헌법 54조)하고, 법원이 국회의 국정감사대상이 되고,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법원의 권한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도 있는 상황(헌법 제 77조 3항)에서는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이 상시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한 보완으로 대법원장의 대법관임명제청권의 실질화, 사법부의 독자적인 예산안 편성권, 사법부의 사법에 관한 법률안 제안권 인정 등이 제안되고 있고, 법관선거인단에 의한 법원구성, 법원권한불가침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사법권의 독립의 중요성>


사법권 독립이란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관이 구체적인 사건을 재판함에 있어 절대적으로 독립하여 그 누구의 지시나 명령에도 구속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는 판결이나 결정만이 아니라, 판결과 결정에 이르는 모든 심리절차의 독립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사법권 독립은 입헌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이 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 권력분립의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법권의 독립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


- 국회로부터의 독립


사법권이 독립한다면 일단 국회로부터 독립하여야 하는데, 실제로 국정감사와 관련하여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 8조는 진행중인 재판이나 수사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감사 또는 조사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매년 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보듯이 법원의 판결이 자기 당에는 불리하고, 다른 당에는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조배숙의원은 이른바 총풍사건에 대한 재판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 질문을 했고, 홍준표의원은 이회창후보에 대해 법원이 불리한 판결을 하여, 대선에서 패배하게 되었고, 대통령 당선무효 판결을 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등, 정략적 질문이 쏟아졌다)이 숱하게 포함되어 있는 것이 실정이다.


법원이 새로운 청사도 짓고, 직원들 월급도 주어야 하고, 필요한 예산도 써야 하는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를 통해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구체적인 재판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는 사법부의 독립을 해치게 된다.


- 정부로부터의 독립


원칙적으로는 독립되어 있다. 정부 구성원과 법관의 겸직이 금지되며, 법원이 행정처분을 할 수 없고, 정부도 법원의 재판에 간섭하거나 영향력을 미칠 수 없게 되어 있다.


또한 법원은 행정처분이나 명령. 규칙에 대하여 행정재판권과 위헌명령심사권을 가지고 있고, 정부는 사법부 예산의 편성권, 사면, 감형, 복권 등의 권한을 갖고 있기에 상호간의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적절한 견제 보다는 정부에 의한 사법권에 대한 간섭의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인사에 구체적으로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법원에 대한 국회와 정부만의 통제가 아닌 민주적, 시민적 통제가 있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 또 다른 무엇으로부터의 독립


사실 국회나 정부로부터의 독립은 법적, 절차적, 제도적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독립도 중요하지만, 헌법의 규정대로 ‘헌법과 법률 및 자신의 양심’을 제외한 어떠한 외부적 간섭이나 영향을 받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이 외부적 간섭에는 사법부 내부에서의 작용도 포함한다. 법원의 지도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재판에서 법원 지도부가 생각하는 판결과 다른 판결이 나왔을 때, 그 법관이 인사를 포함하여 어떠한 책임도 추궁당하지 않아야 하는데, 실제로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또한 법관의 독립은 외부의 작용으로부터도 지켜져야 한다. 우선적으로는 소송당사자(외뢰인만이 아니라, 사건을 의뢰받은 변호인도 당연히 포함)로부터 독립하여야 한다. 또한 기타의 사회적, 정치적 세력으로부터도 독립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