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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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는 일만 골라하는 사람, 이광열(경향잡지, 06년 12월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6:37
조회
259
경향잡지 12월호 (아름다운 사람)  

안되는 일만 골라하는 사람, 이광열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어느 고교 3학년 교실의 급훈이다.

대학에 가도 대개 임금노동자로 살아야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는 공부 못하는 사람,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사람, 안목이 부족해 값이 뛸 부동산 매물도 잡아두지 못한 사람, 심지어 게으르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동의어쯤으로 여겨진다. 전형적인 노동 천시 탓이다. 노동은 세계를 재창조하는 신성한 일이며, 인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인데도 그렇다. 프랑스는 고등학생들에게 임단협(임금과 단체협약) 방법론도 가르치고, 영국에선 직접 자기 몸을 움직여 육체노동을 하는 배관공의 수입이 제일 많다지만, 이건 먼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어떤 부모도 자식이 노동자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 커서 노동자가 되라고 한다면 그건 덕담이 아니라 악담이 된다.

노동 자체가 부정당하는 상황이니, 노동자가 자신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노조를 통해 근로여건 개선과 임금 인상을 위한 활동이라도 벌일라치면 이제는 아예 쌍심지를 치켜든다. 노조는 국가경제를 망치는 주범이고, 기업 활동을 어렵게 하는 공공의 적쯤으로 간주된다.

헌법과 노동관계법에 의해 보호받는 노동조합의 일상적 활동마저 불온시하는 마당이니, 어떤 이유에서든 실정법을 위반하고 감옥에 갇힌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눈밖에 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눈 밖에 난 존재들이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 결과 올해 들어 구속된 노동자의 수가 9월말 현재 218명이 될 지경이다. 매일 한명 꼴이다. 지금도 감옥에 있는 구속노동자는 모두 88명이나 된다.

이광열은 이렇게 눈 밖에 난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구속노동자후원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구속된 노동자들의 옥바라지와 이와 관련된 일이 모두 그의 몫이다. 구속 노동자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얼마 안되는 후원금을 쪼개 영치금을 넣어주거나 책을 사 보내고, 전국의 교도소를 돌며 면회도 다닌다. 그뿐인가, 노동자들이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한 싸움에도 게으르지 않는다. 노동악법을 개정하고, 검찰이나 경찰의 편견과 싸우는 것도 그의 몫이다. 자신을 앞세우기 보다는 갇힌 사람들의 처지를 먼저 살피고,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요즘의 세태로 보면 경이스럽기까지 하다.

강원도 인제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의 대학으로 유학을 떠날 때, 그의 가족과 고향의 기대는 남달랐다. 전공도 취업이 잘된다는 무역학과였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대학생활은 기대와 사뭇 다른 것이었다. 군사정권 시절 대학생의 삶이 거개 그렇듯 그는 학생운동에 투신했고, 그 투신의 삶을 20년이 되도록 꺾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른 것은 물론이고, 지금도 고단한 삶은 끝이 없어 보인다. 상근하는 단체에서 받는 활동비(보통 월급이라고 하기 면구스러워서인지, 월급을 이렇게들 부른다)는  50만원인데, 여기서 방세 13만원 내고 나면, 정말 깜깜해진다. 전단지 붙이는 시간당 5천원짜리 부업으로 겨우 숨통을 틀 수 있는 형편이다. 우직하다고 할까, 아니면 순진하다고 할까. 이광열은 돈 안되는 일,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티나지 않는 일로만 자신을 몰아간다. 마치 그런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일과 일을 하는 조건이 힘겹지만, 그래도 별것 아닌 도움을 귀하게 여기는 갇힌 사람들의 격려와 감사의 인사가 그를 곧추세운단다. 다들 돈을 먹고 사는 세상에 그는 격려를 먹고 산다니......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일이 주는 보람 때문에 그만 둘 생각은 없단다.

스스로 택한 가난은 그를 남루하게 만들었다. 남루한 입새, 부드럽지만 원칙적인 말투, 작은 일에 감사하는 그는 마치 식민지 시절에 조국과 민중의 운명을 온통 제 어깨에 짊어지고 풍찬노숙의 삶을 마다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과 닮아 있다.

구속노동자후원사업을 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노동조합들도 별반 관심이 없다. 자기 식구가 구속될 때는 호들갑을 떨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저 남의 일로만 여긴다. 이럴 때도 그의 선택은 연대의식이 부족한 노조에게 날선 도덕적 비난을 칼을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몸으로 때우고 만다. 한번 더 몸을 움직이고, 한번 더 스스로를 고단한 삶으로 몰아가는 것이 그의 한결같은 태도이다. 세상의 이치대로라면 미욱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잘난 사람만 좋은 대접을 받는 세상, 돈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살만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참담하기 그지없는 세상에서 그의 구체적 실천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최후의 심판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실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늘어나길 바란다.

“너희는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오 25장 36절)

그가 일하는 구속노동자후원회는 http://cafe.daum.net/supportingworkers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