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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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지배의 초라함 (한겨레 06.12.0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6:38
조회
226

경찰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목소리를 불법이라 규정하고 거리 곳곳을 원천 봉쇄했다. 그런데도 집회는 열렸다. 정권 교체 이후 사라진 이른바 비합법 가두 투쟁이었다. 협정 반대를 위한 싸움이지만, 집회 자체가 봉쇄된 상황에서 사람들이 외친 구호는 “평화집회 보장하라!”였다. 시민이 국가에게 평화집회 보장하라고 외쳐야 하는 것이 2006년 12월, 한국의 인권현실이다.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장된 권리는 정부와 경찰의 지침으로 간단히 거부되었다. 도시는 원천봉쇄되었고 시민의 일상적인 출입은 경찰의 물리력에 막혔다. 법의 지배는 자취를 감추었고, 오로지 힘센 자의 실력행사만이 거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법의 지배를 통한 인권의 보장이란 것이 얼마나 초라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직업군인이 아니라, 법률가 출신 대통령이 지도하는 정부인데도 이렇다. 호민관 역할을 맡은 국가인권위의 대응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을 살리기 위한 탄핵반대 집회는 야간에 수십만명씩 모여도 괜찮지만,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는 주간에 수천명이 모여도 금지된다. 대통령처럼 꼬부라진 마음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인권의 실현은 일차적으로는 법의 지배에 따른 보호를 받아야 가능하다. 날 때부터 가지는 소중한 권리도 법에 의한 보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물론 인권의 실현은 단순히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해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계급, 빈부, 학력, 성별 등의 차별이 엄연한 상황에서 법의 지배는 인권의 실현을 위한 전제가 될 뿐이다. 그 다음에는 차별받는 사람들, 곧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약자, 소수자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적극적인 정책의지가 작동되어야 한다. 완전한 인권실현은 꿈이겠지만, 공평한 법의 지배와 약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통해 그 꿈은 조금씩 현실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노회찬 의원의 지적처럼 만명에게만 법이 평등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돈 없는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은 너무 멀리 있고, 그들이 당하는 차별은 노골적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갇힌 시민은 3만5000명이 넘는다. 기껏해야 100만원 남짓의 벌금을 내지 못해 하루에 5만원씩 쳐주는 강제노역을 당해야 하는 거다.


형사소송법은 구속 사유로 증거인멸, 도주우려와 함께 주거부정을 꼽고 있다. 단지 돈이 없어 안정된 주거공간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임대주택 공급 등 더 많은 배려를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구속할 수 있는 사람의 취급만 받고 있다. 전관예우, 유전무죄는 말할 것도 없다. 교과서말고는 누구도 법의 지배를 믿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법을 전공한 법률가들이 오히려 법의 지배를 무너뜨리는 일은 수도 없이 많고, 법을 가르치는 법학자들도 교과서 속의 현실에만 안주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기념일(12월10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정부의 무관심 때문에 이제는 정부 기념일에서도 빠졌지만, 세계가 함께 인권의 소중함을 새기는 날이다. 총리가 참석하는 기념식과 음악회 등 각종 행사도 잇따른다. 행사를 통한 기념도 필요하겠지만, 세계인권선언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것이 우리에겐 훨씬 더 중요하다.


이미 60년 가까이 되었지만, 지금 읽어도 인권선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각별해 보인다.


“인간이 폭정과 탄압을 견디다 못해 최후의 수단으로 반란을 일으키게 될 정도로까지 몰리지 않게 하려면,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법의 지배를 통해 인권을 보호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