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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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농사꾼 윤요왕의 삶(경향잡지 06년 10월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6:30
조회
403
경향잡지 9월호(아름다운 사람)

젊은 농사꾼 윤요왕의 삶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네 살 민재와 아직 돌이 안 된 민규의 아빠 윤요왕은 농사꾼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전형적인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경기도 가평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대학은 도계를 넘어 춘천에서 다녔다. 그가 대학에 입학한 1991년은 매우 혼돈스러운 시절이었다. 입학하자마자 경찰폭력에 의해 명지대생 강경대가 죽는 것을 고통스럽게 지켜봐야 했고, 민주화를 위한 죽음의 행렬이 이어졌다. 신입생 윤요왕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매일처럼 거리투쟁에 나섰다. 투사 기질 탓인지, 그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쉽게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대학 졸업 후의 진로를 고민하던 윤요왕은 교회에서 무언가 쓸모 있는 일꾼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천주교 인권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1년 반쯤 일한 다음에는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으로 3년 동안 일했다. 원주에서 지낼 때, 중학생들의 경찰의 고문을 받아 살인누명을 쓰게 된 사건이 있었다. 부모들은 윤요왕을 찾았고, 그는 자기 일처럼 쫓아다녔다. 윤요왕의 열성 덕에 어린 학생들은 무죄로 석방되고, 국가배상까지 받게 되었다. 크고 작은 민원이나 미군기지 문제 등 원주지역의 골치 아픈 문제들이 그에게 몰려왔다. 마치 솜씨 좋은 의사에게 환자가 몰리는 것처럼 일은 꼬리를 이어 그에게 몰려왔다. 일이 쌓여도 그는 내내 태평했다. 태평하되 게으르지 않았고, 언제나 성실하고 진지했다.

그러나 윤요왕은 대학 4학년 때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 했다. 저 혼자만의 다짐이었는데도 그는 진지했다. 윤요왕이 학창시절 마지막 농활을 했던 춘천 고성리에서 했던 다짐은 “나중에 귀농을 해야지. 귀농을 한다면 이 마을로 와야지.”하는 것이었다.

윤요왕의 막연한 다짐이 현실이 된 것은 4년 전이다. 귀농 첫해엔 머슴살이를 했고, 둘째 해에는 고향 친구들과 함께 살림집을 직접 지었다. 작년에는 감자와 고추를 올해는 거기다가 고구마, 콩, 무, 브루컬리도 심었다.

그는 최근 내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귀농 생활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피부로 와 닿는 노동의 고됨과 그 가치에 조금씩 농민이 되어갔고, 농작물뿐만이 아니라 풀 한포기, 돌 하나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에 의해 존재하고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배웠습니다.

이제 조금 정신 차리니 농촌의 현실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모두가 회생불가 판정을 내린 농촌! 정말 그렇더군요. 어린이들과 청년들이 없는 노인만 사는 농촌, 빚더미에 올라앉은 몇 안 되는 젊은 농사꾼들 거기에 FTA(자유무역협정)... 그런데 이런 문제의 원인은 아주 간단합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농산물을 제 값에 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농사를 지으며 농민들이 쏟아 부은 땀의 가치를 비농민들이 몰라주기 때문이지요.

한국의 농촌 현실에서 윤요왕의 고민은 그만의 것은 아니다. 농사짓고 살아가는 한 어쩌면 피해갈 수 없는 삶의 조건이다.

현실은 답답해도 윤요왕의 사는 법은 확실히 남다르다. 얼마 전에는 주민들 동의 없이 진행되는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을 하더니, 요즘에는 대부분 조손가정이어서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아이들을 위해 공부방을 만드는 준비를 하고 있다. 자신은 물론 부인까지 나서 교사가 되고, 대학 후배들을 반강제로 끌어다 교사를 맡겼다. 근동에 유치원이나 학원조차 없고, 있어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형편 때문에 갈 수 없는 어린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그의 일이 되었다. 농사 지러 들어갔으면 농사나 잘 지어야지 아이들 고민까지 하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도 윤요왕은 피식 웃으며 다른 집 애들이나 자기애들이나 똑같은 처지이니 그래도 젊은 자신이 나서야 한다고 답한다. 윤요왕은 늘 이런 식이다. 그냥 외면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없다. 일을 해결하기 위해 일을 만들고 일 때문에 고통받지만, 그래도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최근 ‘한밥상 한가족’을 제안해 왔다. 그가 땀 흘려 재배한 농산물을 모두 보내 줄 테니, 대신 매달 일정액을 보내라는 것이다. 나는 때마다 순수 유기농산물을 밥상에 올릴 수 있어서 좋고, 그는 투기형 농업을 하지 않고, 얼마 안돼도 정액 수입을 마련할 수 있어서 좋은 방법이었다.

  올해는 감자, 토마토, 건고추, 고구마, 검은콩, 김장용 무 따위를 보내주고, 내년부터는 잡곡과 쌀도 보내준단다. 의심 없이 유기농산물을 먹고 싶은 분은 윤요왕의 전자우편 wjjpyw@hanmail.net로 연락하면 될 것이다.

 윤요왕이 스스로 말하듯이 그와의 거래로 농촌이 살아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하나의 대안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와 같은 농사꾼이 농촌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희망이고 위안이다. 그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귀농은 실험이었을 뿐이라고 씁쓸하게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나부터 그와의 거래를 터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