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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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딜레마, 어떻게 푸나(시민의신문, 061026)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6:31
조회
227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반도가 요동을 치고 있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인 남북한은 물론이고, 미,중.러,일 등 주변국들의 움직임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이 요동의 파장이 시민들의 일상까지 치고들어가 사재기 파동이 나는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불안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누가 뭐래도 중대한 사태임은 분명하다.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드디어 강성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고 선전하는 북한의 태도를 보면, 핵무기 개발이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단순하게 체제 인정을 포함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은 미국대로 이전에 비해 훨씬 강도 높은 압박을 통해 북한의 붕괴를 획책하고 있고, 일본은 호기를 맞았다며 한층 강화된 미일동맹을 통해 경제력에 맞는 보통국가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으며, 중국은 북한에 대한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고 분주하기만 하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이 얽혀 있어서 북한의 핵실험 문제를 간단하게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다. 1970년대 남북한에 대한 두 냉전진영의 교차 승인 문제부터 1994년의 제네바 합의, 그리고 그 이후 조.미 커뮤니케 등의 맥락이 있기 때문에 북한의 핵실험만 떼어놓고 일방적으로 규탄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꼭 맞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문제에 대한 시민사회진영의 대응은 한번쯤 곱씹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단 북한의 핵실험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의 문제부터 보자. 몇몇 민족해방계열의 단체들이 낸 성명도 그렇고,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들려온 불협화음도 그런데, 일부 인사들은 북한의 핵실험을 마치 드라마 속 주몽이 가지게 된 ‘강철검’에 비기면서 북한의 자위권 발동에 대해 다른 나라가 시비를 걸어선 안된다거나, 미국의 일방적인 공세 때문이니, 비난의 대상은 미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 큰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북한에게는 핵무기 개발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일부는 북한의 체제의 필요성 자체를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나, 평화를 위해 북의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해도 그것이 꼭 핵무기여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를테면 2000년 6.15 이후 남북 사이의 화해협력을 훨씬 더 강화하여 경의선, 경원선도 개통하고, 이산가족 상봉도 전면적으로 시행하고, 이산가족의 상호 방문도 허용하고, 6년이 넘도록 지키지 않는 약속인 김정일위원장의 남한 방문도 진행하면 어땠을까. 미국이 북한에게 인권을 무기로 들이대기 이전에 북한이 오히려 인도주의, 평화, 인권의 원칙에 서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판을 만들었다면 오히려 곤궁에 처하는 것은 미국이 아니었을까. 


미국에게 굴복하지 않으면서도 남한과 손잡고, 국제사회의 평화와 인권을 사랑하는 선의의 사람들과 연대하는 방법을 모색했더라면 어땠을까? 북한당국의 핵실험은 일면의 이해되는 측면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 보다는 북한의 지도자 입장에서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는 선택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북한인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북한 당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공화국엔 인권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북한이 지상천국이기 때문이라는 건데, 철부지 어린아이의 장난말도 아니고 인권문제에 대해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용기가 놀라울 뿐이다. 물론 극심한 경제난, 국제사회의 고립 속에서 기본적인 먹거리를 해결하기도 버거운 상태에서 여러 가지 인권적 요구를 수용할 능력이 부족할 수는 있다. 그러나 능력이 부족한 것과 의지가 없는 것은 구분되어야 하고, 특히 어떤 인권문제도 아예 없다는 식의 배짱은 별개의 문제이다.
 
나는 동포이기에 북한 주민의 인권을 살뜻하게 챙겨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한다. 인권은 모든 사람의 것이기에 북한주민의 인권은 레바논, 팔레스타인, 그리고 우리 자신의 그것과 똑같은 무게로 다뤄져야 한다. 그렇지만 북한의 지도부가 이런저런 말도 안되는 핑계를 내세우며 인권의 진전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세계시민의 관점에서도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북한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감자’라고들 한다. 식단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메뉴면서도 오븐에서 갓 꺼낸 뜨거운 감자를 손으로 집을 때는 데기 쉽다는데서 비롯된 이 말은 매우 중요한 현안이지만, 현실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미묘한 문제를 일컫는데 쓰인다. 


그런데 감자야 뜨거우면 식혀서 먹을 수도 있고, 먹으면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해주기도 하는데, 북한은 뭔가. 말로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대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면서, 우리 코 앞에서 핵실험을 하고, 그 이전에는 핵무기 탑재를 위한 것이라는 뉘앙스를 팍팍 풍기면서 미사일 발사실험을 하거나 자국민의 인권문제에 대해 진지한 관심조차 없는 북한의 지도부가 과연 감자만큼의 역할이라도 하는지 의문이다. 


북한은 북한일 뿐이다. 우리 시민사회도 북한에 대한 과잉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 보고, 본대로 판단하고, 판단한 대로 말하는 기본이 북한 문제에서도 지켜져야 한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