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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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판 재구성 어찌할것인가(시민의신문, 07.01.12)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6:40
조회
222

올해 가장 큰 화두는 역시 연말의 대선이다. 연초부터 온통 정치이야기다. 누구에게 세배를 갔다거나 어디를 방문했다, 무슨 말을 했다는 등 이른바 유력후보라는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연일 언론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는 아무래도 지난 10년 동안 집권에 성공했던 이른바 ‘민주파’가 수성에 성공할지, 아니면 한나라당 등 보수파의 기세높은 반격이 성공을 거둘지에 있는 것 같다. 이런 판에선 특정 후보의 당선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유력후보의 이탈은 곧 이적행위라며 미리 빗장을 걸어두는 보수파나 유력후보가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외부 인사의 영입에 눈길을 돌리는 민주파의 행보는 특정후보의 당선이 아니라, 특정세력의 당선을 위한 것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그동안의 체제는 해체된 것처럼 보인다. 3김 시대는 물론이고, 직전 선거까지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이었던 후보를 정당이 대체하고 있는 국면이다. 정당이 인물을 대체하고 있으니 이런 것도 발전이라면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후보가 꼭 당선되어야 한다거나 또는 이번 선거처럼 어떤 정당이 꼭 당선되거나 낙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커지면 흔히 말하는 정책선거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반노무현 정서에 기대 정권교체를 벼르는 한나라당 등 보수파나 반한나라당 정서에 기대 수성을 다짐하는 민주파 모두 선거전략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저쪽이 싫으면 우리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공약을 가다듬고 새로운 국가경영의 비전을 세우는, 곧 대통령이 될 준비를 하는 것은 불필요해 보인다. 유력후보마다 말로는 대통령이 되면 무슨 일을 하겠다고는 하지만, 그 말에 무게감이 실리지 않은 까닭이 여기 있다. 


기존의 지역구도에다 상대진영에 대한 반감을 가장 큰 매개로 하는 선거구도는 지난 5년을 평가하고, 새로운 5년을 준비하는 선거의 의미를 실현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문제의 해결은 걸림돌을 치우고, 의미있는 선거판이 될 수 있도록 ‘재구성’을 하는 것인데,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선거판의 재구성은 우선 민주노동당에 기대를 해봐야 하는데, 웬일인지 요즘 민주노동당은 기대를 걸 일보다는 걱정을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북핵문제, 이른바 ‘일심회’ 사건 등에서 갈피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것이 마치 씨름판에서 아직 샅바조차 잡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꼭 민주노동당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운동진영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시민사회의 중견 인사들이 수구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대선과정에서 적극적인 개입을 하고 진보개혁세력을 대표할 반 수구 국민후보를 내기 위해 활발한 움직임을 갖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정치조직 건설을 위한 이들의 움직임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관건은 아무래도 ‘수구 반대’가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수구세력이어서 반대하는 것, 고귀한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폄하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 같은 움직임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우려가 적지 않다. 


내용을 갖춘다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내용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지난 10년 동안의 정권에 대한 냉정하면서도 치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동안 민주파가 잘한 것은 무엇이고 잘못한 일은 무엇인지를 밀도있게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평가를 바탕으로 다음 5년의 청사진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런 평가 작업과 함께 꼭 진행해야 할 일은 시민사회운동 전반에 대한 평가이다. 


말로는 시민사회운동의 가장 큰 특장이 도덕성이라고 하지만, 우리 내부에서 스스로 도덕성을 허문 일은 없었는지, 우리 내부의 문제에 대해 얼마나 치열했는지에 대한 평가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실 그동안 시민사회진영은 내부 문제에 있어 민주화운동세력다운 갈등해소의 전형을 만들지도 못했고, 엄격한 도덕성을 견지하지도 못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둘러싼 갈등이 그랬고, 시민의신문 사태 또한 그랬다. 


두 가지 사태는 모두 밖의 공격이나 모략 때문에 빚어진 일이 아니라, 운동사회 내부에서 불거진 사태였다. 이들 사태는 모두 내부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기껏해야 쟁송으로 이어져 법원의 판단을 구하거나, 여태 소모적인 다툼이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양심수라는 개념을 만들며 현실 법원의 판단을 넘어섰던 그 자존심과 도덕성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내부의 갈등조차 수습하지 못하는 시민사회진영이 이제 다시 때가 되었다고 ‘수구반대’의 깃발을 아무리 힘껏 치켜올린다 한들, 그 깃발 아래 얼마나 모일지 의문이다. 


문제는 언제나 밖보다는 안에 있는 경우가 많다. 치열한 성찰, 정확한 분석, 그리고 다시 한번 제대로 헌신하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대선은 역시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밖에 없고, 그만큼 민주주의는 더 후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