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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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착한 공무원을 기다리며(한겨레, 06.12. 28)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6:39
조회
251

관료들은 힘이 세다. 정당정치가 정착하지 않은 현실에서 집행은 물론 정책 생산까지 그들의 몫이다. 선출되지 않기에 물갈이도 불가능하다. 그래서인지 언론에 비친 관료들은 탐욕스런 얼굴이거나, 민중의 고통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철면피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공무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주 눈에 띄지는 않지만, 빛과 소금처럼 귀한 공무원도 적지 않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 유학 중인 ㄱ아무개씨의 아들이 살해되었다. 강도였다. 젊은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치고 원통하지 않은 일이 없겠지만, 학비조차 변변히 대주지 못한 아들이었다. 눈물조차 말라버릴 일이었다. 건강했고 누구보다 착한 아들이었다. 아들의 죽음을 수습하러 급히 호주행 비행기를 탔지만, 그곳에는 아무 연고도 없다. 모든 것이 막막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공항에는 호주대사관의 경찰주재관이 나와 있었다. 그는 죽은 아들의 친구처럼 살갑게 굴었다. ㄱ씨가 묵을 호텔과 장의사, 심지어 변호사까지 모두 예약해 놓았다는 거다. 이런저런 궂은일도 마다지 않았다. ㄱ씨는 평생 가장 큰 고통을 겪은 바로 그때, 한 공무원이 자신과 함께해주었다고 고마워했다.


서울의 한 경찰서장 ㅇ아무개씨. 그는 홀몸노인들이 혼자서 쓸쓸한 죽음을 맞는 현장을 볼 때마다 무언가 할 일이 없을까 고민했다. 노인들의 마지막 길은 쓸쓸했다. 돌아가신 지 한 달이 넘어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요구르트 배달이었다. 홀로 사는 노인 200분에게 요구르트를 배달해 드리기로 했다. 요구르트 아주머니들이 자연스럽게 하루에 한번씩 어르신들을 살펴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지구대에 연락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 놓았다. 매일처럼 찾아오는 사람이 생기자 어르신들이 누구보다 좋아했고, 요구르트 아주머니들은 보람 있는 일을 하는데 수입도 늘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비용을 대는 경찰서 행정발전협의회 위원들도 좋아했다. 경찰서장은 이런 맛에 기관장을 하는 거라며 그저 웃기만 한다.


군사령관 ㅂ아무개씨. 4성 장군이다. 그는 최근 자신이 지휘하는 예하부대 지휘관들에게 “생명과 인권을 중시하는 군만이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제목의 지휘서신을 보냈다. 취임 후 첫 지휘서신이었다. 내용인즉, 대부분 외아들인 장병들의 생명과 인권을 소중히 여겨야 장병들이 체제를 수호할 가치를 느끼고, 그래야 강한 전투력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당연한 이야기였다. 당연해도 4성 장군이 직접 강조하면 확실히 달리 들린다. 총기난사, 멸치장군, 인분사건 등이 끊이지 않는 현실이지만, 4성 장군의 명령이 사람이 사람 대접을 받는 군대를 위한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들은 요즘 말로 ‘착한’ 공무원들이다. 하기야 착한 공무원이 어디 이들뿐이겠는가. 수구언론의 사망선고에도 불구하고 인권현장을 누비는 국가인권위 직원들, 밤을 낮 삼아 뛰는 경찰관과 소방관, 교정직 공무원들, 구석진 골목을 찾아다니는 동사무소 사회복지사들…. 착한 공무원들이 있어 그래도 세금 내는 것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 살 만한 세상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착한 공무원은 거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력, 예산, 규범에 매여 책무를 소극적으로 해석하고 자기 할 일만 다하면 그만이라는 풍토가 만연한 상황에서 개인의 선의에만 기댈 수는 없다. 착한 공무원이 늘어나길 바라는 시민들의 구체적인 요구와 활발한 감시가 꼭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군가 “자유는 영원한 감시의 대가”라고 말했다. 착한 공무원 역시 끊임없는 감시의 대가이다.


오창익/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