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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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빠진 인문학 교도소에서 꽃피다(주간<시사인> 08.08.16)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0:12
조회
245

교도소에서 만난 그는 머리를 빡빡 깎고 있었다. 삭발을 해야 할 비장한 뭔가가 있었을까. 그런데 체구나 얼굴은 비장함과는 딴판이다. 얼굴에는 장난기 있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체구는 여유 있었다. 잔여 형기는 5년이란다. 어휴, 5년을 더 살아야 한다니, 그동안 얼마나 갇혀 있었나를 묻기도 힘들었다. 삭발과 여유있는 표정과의 부조화는 5년을 더 갇혀 있어야 한다는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2주간의 교육이 끝나는 날, 그에게 소감을 청했다. “그동안 저는 석방되면 어떻게 먹고 살까만을 열심히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교육을 받고 난 다음...지금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제 고민이 되었습니다.”


 한방 맞은 것 같았다. 그도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을 게다. 학교도 다녔을 것이고, 교도소에 와서도 인성교육이나 직업교육도 받았을 게다. 그런데 2주간의 짧은 교육만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다니.


 내가 일하는 단체가 성공회대학교, 수유+너머, 지행네트워크, 철학아카데미와 함께 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한 인문학 교육을 하려 했던 이유를 그는 단박에 정리해주었다. 그 순간 고맙고 또 행복했다. 문학평론가 이명원 선생은 재소자들을 위한 인문학 교육에 <평화인문학>이란 이름을 붙였다. 텃밭인 대학에서는 위기라는데,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이 보이는 교도소에서 인문학은 다시 꽃피고 있다.


 교도소는 죄값을 치루는 곳이기도 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목적은 범죄자의 교정교화에 있다. 사회로 돌아가서는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돕는 거다. 허나 국가가 이미 성인이 된 사람들, 머리 속이 꽉 찬 사람들의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교정직 공무원들이 열심히 뛰기도 하지만 상황은 열악하다. 수천명을 수용하는 교도소에 강의실이라고는 달랑 두세개가 전부이고, 예산이나 인력 모두 부족하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인문학 교육이 하나의 돌파구가 되었으면 했다. 문학, 철학, 역사, 예술 등에 대한 공부를 통해 나와 이웃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교정교화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재소자들은 많이 배우지 못했고, 가난하다. 그럴수록 자존감은 더 중요하다. 현실과 싸워 버틸 수 있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한 재소자는 생일케이크란 걸 교도소에 와서 처음 먹어보았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에겐 흔한 것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생일케이크만으로도 펑펑 울기도 한다. 해서 재소자들을 위해 가능하면 최고의 강사를 모시고, 최고의 대접을 해주고 싶었다. 존중을 받아봐야 다른 사람도 존중할 수 있을 거 아닌가.


 <평화인문학> 과정을 마친 우리의 이웃들이 소감을 담은 편지를 보내왔다. 이제 막 시작한 <평화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성원을 바라는 마음에서 몇 구절만 살짝 공개한다.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제가 처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 인생은 고난의 바다와 같을 테지만, 한번 살아볼 가치가 있다 믿고 싶습니다. 용기를 내어 제 자신과 마주하겠습니다.”


 “왜 상황이 여기에 이르게 되었는지 생각하면 너무도 후회스럽기만 합니다. 평화인문학 과정에 참여한 것은 저에게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어떠한 시련이 닥쳐온다 하여도 굳건히 헤쳐 낼 것입니다.”


 “시작은 그냥 방안에 멍하니 있는 게 너무 지겨워 교육을 신청하여 듣게 된 사람인데, 강의를 들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면서 죄가 죄처럼 느껴지지 않는 증상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저 또한 이라크에서 웃으면서 사람을 죽이는 그런 살인자의 모습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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