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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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불법행위, 경찰의 불행이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0:17
조회
253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8월 13일 새벽 2시, 종로경찰서 조사계에서 만난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운영위원장은 피곤해보였다. 진 보연대 후원의밤 행사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다 체포된 직후였다. 갑자기 10여명의 형사들이 달려들었고, 저항하지도, 아니 저항할 수도 없는 사람을 마구잡이로 끌고가면서 생긴 상처와 멍 자국이 곳곳에 있었다.


 경찰은 박석운 위원장을 체포하기 위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지도 않은 채, 긴급체포했다. 긴급체포는 현행범이 아닌 피의자에 대해 사전영장을 발부받기 위해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긴급한 경우에 영장없는 구속을 일시적으로 허용하는 제도이다.


 형사소송법은 긴급체포 요건에 대해 매우 엄격한 요건을 정해두고 있다. 곧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사전영장에 의한 구속사유(주거부정, 증거인멸, 도망의 염려)가 있는 경우에, 그리고 긴급을 요해서(너무 급해서) 판사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수 없을 때 영장없이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여기서 긴급을 요한다는 것은 피의자를 우연히 발견한 경우처럼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때를 말한다고 형사소송법에 규정되어 있다.


 8월 12일 열린 진보연대 후원의밤 행사는 진작부터 예정된 행사였고, 이 단체의 운영책임을 맡고 있는 박석운 위원장이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도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경찰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의 형사 10여명을 진보연대 사무실 앞에 배치시켜놓고 박위원장의 체포를 위해 기다렸던 것도 박위원장에 대한 긴급체포가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기본적인 요건에 해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박위원장에게 책임을 물을만한 죄가 있는가의 여부를 떠나 경찰이 박위원장을 체포하려면, 헌법과 법률의 규정에 따라 판사가 발부한 영장을 통해 체포했어야 했다. 긴급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긴급체포는 명백한 불법체포, 불법감금이다.


 출석요구에 불응해서 긴급체포를 했다는 경찰의 주장도 엉터리다. 출석요구에 불응한다는 것은 일면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으나, 출석요구를 할 만큼의 시간이 있었다면, 당연히 법원에 영장을 청구할만한 시간도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50대 중반의 인권운동가요, 시민사회의 책임있는 지도자가 법집행 기관인 경찰에 의해 불법체포, 불법감금되었다.



경찰이 내세운 혐의란 것도 그렇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불법집회를 주도했고, 특수공무집행방해와 형법상 일반교통방해죄를 위반했다는 것인데, 박석운 위원장이 촛불집회를 주도했다는 것은 공상소설의 소재로 써먹기에도 부족한 황당한 주장이다.


촛불집회가 그 누구의 주도도 없이 자발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은 누구나 목격했고, 또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니 더 이상 논란을 벌일 이유도 없다. 그는 촛불집회에서 연설을 통해 참석자들을 ‘선동’한 적도 없었다. 선동은 고사하고 마이크를 잡은 적도 없었다. 어떤 불법행위도 한 적이 없었다. 나는 박석운 위원장이 촛불집회 과정에서 했던 한가지 일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그가 했던 일이라곤 기껏해야 갑자기 많은 사람이 몰려 자칫하면 위험할 수도 있던 좁은 골목길에 서서 “천천히 움직이세요. 한줄씩 가세요, 잘못하면 다칩니다”라고 안내를 했던 게 전부였다. 안전한 집회관리를 위한 작은 역할이었다. 이쯤 되면 표창 대상일 수는 있어도 체포대상은 결코 아니다. 진보연대 상임운영위원장이라는 직함이나, 그동안의 운동경력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역할은 작은 것이었고, 그나마 한두번 정도에 불과했다.


그만큼 촛불집회 과정에서 기존의 시민사회운동세력의 역할은 제한된 것이었다. 촛불집회 초기였던 5월초부터 경찰은 촛불집회에 배후가 있다는 공갈을 퍼트렸고, 이런 공갈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박위원장은 몸을 아꼈다. 그는 집회현장에 나타난 적도 거의 없었고, 집회현장에서도 마치 구경꾼처럼 행동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아무런 불법행위도 없었다. 하긴 굳이 저명한 운동가가 앞장 서 해야 할 역할도 없었다. 만약 그가 촛불집회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야 한다면, 그 혐의는 촛불집회에 참여했거나, 인터넷 공간에서 활동했던 수십만, 수백만의 시민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박석운 위원장이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것도 황당하기만 하다. 그가 뭘 했는가. 경찰 기동대 버스를 파손해서 재물손괴를 했나, 경찰관을 폭행했나, 또는 공무집행중인 경찰관에게 언성을 한번이라도 높인 적이 있었나,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었다.


교통방해도 그렇다. 박위원장 개인이 교통방해를 한 적도 없지만, 일반적인 집회·시위 참석자에게 형법 제185조의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하는 것도 문제다. 일반교통방해죄는 육로·수로 또는 교량을 손괴·불통하게 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교통을 방해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


단순한 집회·시위 참석자들에게 교통방해의 적극적 범죄의사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도 무리다. 집회 참석자들이 교통을 방해하겠다는 인식과 의식을 갖고 있었는지, 고의로 그렇게 한 것인지, 아니면 집회·시위를 하려다 보니, 결과적으로 교통을 방해하게 되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상식적으로 집회와 시위는, 그 집회와 시위를 해야만 하는 목적의 달성을 위한 헌법상 기본권의 행사이지, 집회와 시위를 통해 교통을 방해할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형법상 교통방해죄를 적용하려면 집회·시위 참석자나 주최자가 고의로 교통을 방해하려고 했다는 주관적 범죄구성 요건의 충족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집회·시위자에 대한 교통방해죄의 적용은 법의 이름을 빌린 국가폭력에 불과한 것이 된다.


박석운 위원장은 불법체포되었고, 지금 불법감금되어 있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도 터무니없는 것 투성이다. 그저 대통령이 원하는 결과, 촛불집회는 대통령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불순 운동권세력이 배후에서 주도해서 생긴 해프닝이라는 것을 억지로 꿰맞추려는 얕은 수 때문에 그가 지금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다.


검찰과 경찰은 법질서의 보루라 할 수 있는 중요한 국가기관이다. 정권이 어떻게 바뀌든 대통령을 누가 하든,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자기 직분을 다하면 그만이다. 그들의 수사활동이란 것도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적법절차의 준수를 통해 인권의 보호라는 두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서울과 지방의 수사 인력 상당수는 촛불집회에만 매달려 있다. 시위 현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체포대상을 물색하는 일이나 인터넷 공간을 뒤져 범죄혐의가 될만한 꼬투리를 찾는데 온통 혈안이 되어 있다. 촛불집회를 제외한 모든 사건은 기본적인 처리도 되지 않을 만큼 뒷전이다. 촛불집회와 함께 한 시민들은 고단하지만, 국민이 걱정하는 진짜 범죄자들은 경찰 덕분에 살판이 날 지경이다.


나는 2004년과 2005년 <검·경 수사권조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경찰청장이 나를 위원으로 위촉했고, 나는 나의 신념과 소신에 따라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수사권을 경찰에게 합리적으로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겨우 3년 남짓 지났지만, 수사권 조정을 외쳤던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경찰의 수사가 법률이 아니라, 대통령의 뜻만 충직하게 쫓는 경찰청장이나 서울경찰청장의 말 한마디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이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강의실이나 현장에서 만났던 숱한 경찰관들, 나름의 소신과 포부를 갖고 활동하는 경찰관들이 서 있을 자리는 이제 없어져 버렸다. 국민의 경찰관들은 국민과의 대결을 위한 첨병으로 끊임없이 내몰리고 있고, 최소한의 적법절차 원리는 실종되어 버렸다. 오로지 압도적 수와 물리력의 우위만을 앞세운 경찰, 정확히 표현하면 국가폭력집단만이 있을 뿐이다. 아직도 모르는가. 국민을 탄압하는 정권과 경찰의 말로는 비참할 뿐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