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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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을 시민에게 돌려달라 (시민사회신문 08.07.0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0:08
조회
202

시작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였다. 지난달 24일 국무회의 자리. 대통령은 국가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는 엄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경찰청장까지 출석시킨 자리였다. 대통령의 황당한 발언은 경찰청장의 보고를 들은 뒤 그 자리에서 나온 즉흥적인 것이었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경찰이 시위대로부터 폭행당하고 많은 피해를 입었다. 시위대는 이미 일반 시민이 아니다”는 취지의 보고를 했다. 


대통령의 ‘엄단’ 발언의 후과는 참혹했다. 경찰은 당장 ‘엄단’ 버전으로 돌아섰다. 경복궁 앞에서 12살 어린이와 81세의 노인이 체포되었다. 차도에 있었다는 혐의만으로 시민들을 체포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형사미성년자인 초등학생을 체포하는 것도 불법이다. 안진걸 씨 등 광우병 대책회의 관계자들도 같은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를 비롯한 시민운동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마구잡이 체포와 무차별적 폭력이 자행되었다. 한국YMCA 전국연맹 이학영 사무총장 등은 전투경찰에게 짓밟혔다. 민변의 한 변호사는 두개골 골절을 당하는 중상을 입었다. 부상자는 적게 잡아도 1천500명이 넘는다.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두 달 동안 1천명 가까운 시민들이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사람들이 5·18 당시의 참상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시민들을 향해 곤봉과 방패를 휘두르고, 물대포와 소화기를 쏘아대는 경찰의 폭력진압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지휘관의 명령이란 기껏해야 공무원의 행정적 지시에 불과한 것이다. 그 위에는 훈령, 예규 등의 각종 규칙이 있고, 그 위에 법률, 또 그 위에는 헌법이 있고, 맨 위에는 인권이 있다. 시민의 인권을 구체적으로 탄압하는 행정 명령이 문명국가에서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이다 보니, 인권이 최상의 가치라 하여도 어쩔 수 없이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헌법 제37조에 따르면 이런 경우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해산시키는 것이 질서의 유지에 해당한다고 쳐도, 경찰의 집회 해산 행위는 반드시 법률에 따라야 한다. 물론 사람을 때려도 된다거나, 짓밟아도 된다는 법률은 없다. 경찰의 폭력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정당성 없는 국가폭력일 뿐이다. 이 국가폭력의 희생자는 주권자요 납세자인 시민이다. 


그래서 어청수 경찰청장은 즉각 그만두어야 한다. 시민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하듯 폭력을 휘두르게 한 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상식의 복원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그에게는 경찰 총수라는 상징적인 책임을 훨씬 넘어서는 실질적인 책임이 있다. 그가 현장에서 직접 지휘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경찰 대응의 구체적인 방향도 전적으로 그가 정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어청수 씨가 그만둔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2005년 농민사망사건으로 경찰청장이 그만두었지만 경찰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시민이 아니라, 오로지 인사권자인 대통령만 쳐다보고, 대통령만을 위한 치안활동을 벌이는 행태가 바뀌지도 않았다. 고약하게도 지금 서울의 광화문에서 목격하듯이 집회 시위와 관련된 경찰폭력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구체적인 개혁 작업 없이 그저 책임자 한두 명만을 집에 보내는 것으로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시민을 섬기고, 오로지 시민만을 쳐다보며 경찰, 시민의 신뢰와 사랑을 가장 큰 자산으로 여기는 경찰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경찰개혁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경찰청장의 스스로 코드 맞추기에 따라 10만 경찰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폐해를 극복하고 경찰에게 본연의 역할을 찾아주기 위해서도 그렇다. 


자치경찰제의 전면적 실시, 경찰에 대한 전문적 감시기구의 창설, 전의경제도의 폐지, 정보, 보안, 경비 기능의 전면적 폐지 또는 축소를 전제로 하는 경찰 기능의 재조정, 민간경찰청장의 임명 등 경찰의 문민화 작업이 당장 시급한 개혁과제로 꼽힐 수 있다. 그뿐인가 경찰대학 문제나 수사권 조정도 미뤄둘 수 없는 과제이다.


촛불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경찰청장 퇴진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끝내 외면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쩌면 자신에게 닥친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누구보다 충직했던 어청수 씨를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시민들에게는 약간의 승리감 말고는 남는 게 없다. 어청수 씨의 퇴진은 그저 상징적인 조치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경찰개혁의 실질적인 조치이다. 악순환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도 대통령만을 위한 경찰을 시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