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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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교 신자들과 인권공부를? (한겨레21)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0:07
조회
199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취업난과 비싼 등록금, 구제금융위기와 학부제의 시행 등으로 인해 대학을 둘러싼 환경이 시장만능주의로 변해 버린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중,고생들이 촛불을 들고 나올 때, 대학생들은 축제에 초대된 ‘원더걸스’ 때문에 난리였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인권이 힘있는 사람들의 호사스런 취미가 아니라면, 열악한 환경에서 잠을 줄여가며 토익공부와 알바에 젊음을 허비하며 살아야 하는 학생들에게 더 절실할 것이란 믿음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비록 관념의 소산이래도 말이다. 인권의 쓸모는 인권교육을 통해 촉진된다. 우리는 대학생들을 위한 인권강좌를 열기로 했다. 어쩌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올드 보이들의 고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권실천시민연대(인권연대)의 <대학생 인권학교>는 3일 동안 8개의 강의를 듣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참가 인원은 35명으로 정하고 선착순 모집을 했는데, 이미 한 달 전에 다 찼다. 시작 전부터 반응은 뜨거웠다. 대학생들이 자주 가는 카페 등에 소식을 싣는 것이 홍보의 전부였다. 강의를 듣는다고 무슨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학생은 장애가 있는 아빠가 괜한 열등감 속에서 사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홍세화, 하종강의 책이나 <한겨레21>의 ‘인권OTL 시리즈’를 보거나, 촛불집회 때문에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이 예전에 당연시했던 정치적 무관심과 우매함이 얼마나 큰 폭력이 될 수 있는지 반성하는 계기를 삼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다.


 촛불집회 한번 나가보거나, 인터넷에서 댓글 하나 다는 것으로도 훌륭한 인권활동일 수 있다는 조효제 선생의 말에 학생들은 안도했고, 고미숙 선생은 몸과 공부의 소중함을, 한채윤 선생은 소수자 문제를 보는 올바른 시각을 일깨워주었다. 이권우 선생은 책을 통한 공부의 재미에 대해 역설했다.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강의를 하는 정태인, 하종강, 홍세화 선생의 강의 때는 눈물을 훔치기도 하였다.


 스스로 돈과 시간을 들여서 교육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강의가 끝나면 질문이 쏟아졌고, 말 한마디라도 더 받아 적으려는 손놀림은 빨랐다. 강의 평가를 받아보니, 딱 1명만 빼고는 겨울방학에도 이런 강좌에 참여하겠단다. 인권운동가가 되고 싶다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학생들은 나와 내 또래의 편견을 한방에 무력화시켜버렸다.


 그렇다. 아무리 환경이 바뀌고 상황이 어려워져도 진지하게 자신과 이웃의 행복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예전에는 그런 친구들이 한총련 등 기성의 학생운동 조직에 쉽게 어울릴 수 있었지만, 학생운동이 거의 붕괴된 요즘에는 그저 각성된 개인으로 존재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정치단체와 사회단체가 있지만,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램을 운영하는 곳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문제는 스무 살 친구들이 아니라, 편견에 사로잡혀 후배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선배들에게 있었다. 문제제기는 젊은이들이 아니라,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학습과 조직이 필수라고 말만 할 뿐, 정작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던 기성세대를 향해야 온당할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