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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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지도 잠자지도 못하는 전·의경, 편안히 승진시험 공부하는 경찰관 (주간<시사인> 08.06.21)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0:03
조회
266

촛불이 광장과 거리를 뒤덮고 있다. 벌써 50일째 계속 타오르고 있다. 6.10 항쟁 기념일의 대회전이 끝나고도 지칠 줄 모른다.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뿜어대는 특유의 열기로 뜨겁기만 하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광장의 뒤편에 그들이 있다. 병역의 의무에 이끌려 전의경이 된 이십대 젊은이들이다.


 밤낮없이 진행되는 촛불집회가 시민들에게는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한마당이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견디기 힘든 상황일 뿐이다. 가장 큰 고역은 씻지도 못하고 잠도 못자는 거다. 길거리에서 만난 전의경들은 일주일, 열흘 동안 누워서 잔 적이 한번도 없다고 호소한다. 누워서 자는 것도 고역인 건 마찬가지다. 서울의 인력만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전국 곳곳에서 전의경을 끌어올렸지만, 이들이 묵을 숙소는 아예 없다. 그저 경찰서 강당에 매트리스 한 장 펴주는 게 전부다. 화장실도 식당도 부족한 곳에서 수백명이 한꺼번에 잠을 잔다. 그런데도 길바닥이나 버스보다는 낫단다. 범죄자를 가둔 교도소도 이렇게 허술하지는 않다.


 전의경의 평균 출동시간은 89시간이나 된다. 휴일도 없이 교육훈련, 부대 정비를 빼고도 하루 13시간이다. 큰 집회가 계속되면 잠 잘 시간도 쉴 시간도 없다. 구타와 가혹행위도 일반 군대보다 훨씬 심하다. 노예도 이렇게 험하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현역 사병에 비해 전의경의 자살율은 2배나 높다.


 드러난 양태만으로는 집회 때문에 전의경이 혹사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엉뚱한 사실과 만나게 된다. 경찰은 집회시위 등 시국 상황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언제나 집회 참가자 수를 훨씬 넘는 인력을 투입하고, 3중 4중의 저지선을 확보해둔다. 만약에 뚫리면 안된다는 생각뿐이다. 대규모 인력의 투입으로 고초를 겪는 전의경은 안중에도 없다. 전의경은 혹사당하지만, 경찰관들은 전의경을 관리하는 기동대 근무를 선호한다. 승진시험을 앞둔 경찰관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부대관리부터 시위 진압까지 궂은 일, 험한 일은 전의경이 전담하기에 시험공부할 시간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업무도 편하기 때문이다. 전의경은 교도소 재소자나 노예만도 못한 삶을 강요당하고 있는데, 직업경찰관들에게는 기동대 근무가 오히려 선호하는 보직이 되었다.


 전의경이 시위진압부터 직업경찰관들의 허드렛일까지 해주는 법률적 근거는 <전투경찰설치법>의 ‘치안업무보조’라는 여섯 글자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장 집회현장만 봐도 그들이 전담이고, 오히려 직업 경찰관들이 전의경을 보조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전의경 문제와 관련한 대안은 지금 당장 전의경 제도를 폐지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치안공백이 있을 거란 경찰의 엄살에 귀 기울일 만큼 그들의 처지가 만만치 않다. 설령 경찰의 엄살을 감안해도 그렇다. 대안이 있어서 노예제를 폐지한 것이 아닌 것처럼, 전의경 제도도 마찬가지다.


 수구언론은 큰 집회가 있을 때마다 전의경의 고초를 보도한다. 시민들이 집회에 나오니까 젊은 친구들이 고생을 한다는 거다. 그렇지만 조중동 등 수구들이 값싼 위문품만도 못한 뻔한 소리를 늘어놓는 그 순간에도 우리 젊은이들의 시름은 깊어져만 간다. 전의경 제도 폐지는 언급도 안하면서 걱정하는 척 하면서 기껏해야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이나 채우려는 짓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국민을 상대로 ‘전투’를 상정하는 세계 유일의 군대같은 경찰, 대간첩작전을 한다고 만들어 놓고는 기껏해야 정권안보만을 담당하는 준군사조직, 시위진압만을 주 임무로 하는 특별한 경찰부대를 지금껏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부끄럽지만, 젊은이들을 혹사시키는 이 강제노역제도가 21세기에도 끄떡없다는 것은 더 부끄럽다. 국가는 염치도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