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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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교도소의 도발 (주간 [시사IN] 07.11.13)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7:00
조회
241

안양교도소의 도발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문제는 안양교도소에서 일어났다. 금지된 물품을 갖고 있었다고 조사를 받던 재소자가 교도관에게 폭행을 당한 것이다. 재소자 쪽은 맞아서 얼굴이 부을 정도로 심각한 폭행이 있었다고 했지만, 교도소 쪽은 “해석상의 문제가 있겠지만 앞뒤 정황을 볼 때 의도적이고 심각한 폭행은 아니”고 “수용생활 잘 하라고 등을 한대 두드리려다 어깨를 쳤다”고 했다.


 진정을 받은 국가인권위원회는 조사를 통해 폭행사실을 확인하고 안양교도소장에게 해당 교도관을 징계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안양교도소는 거부했다. 그저 어깨를 쳤을 뿐이고, ‘인마’라는 순화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한 정도니 징계대상이 아니라는 거다. 대신 자체 인권교육을 시켰다고 했다.


 이번에는 인권위가 폭행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하며 반격에 나섰다.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폭행사실 자체를 부인하니 증거 동영상을 보고 국민이 판단했으면 한단다. 반격은 또 다른 반격을 부르는가. 폭행 교도관은 인권위가 초상권 침해 등 인권침해를 했다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양상은 복잡하지만 사건의 핵심은 간단하다. 교도소 쪽이 뭐라 변명하든 교도관이 재소자를 때린 것은 움직이지 않는 사실이다. 폭행이 불법행위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불법행위가 있으면 당연히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을 때리는 경우라면 죄질은 더 나쁘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징계를 권고했다. 형사고발이나 수사의뢰보다 약한 징계권고 조치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팔은 안으로 굽는 속성에도 불구하고 해당 교도관의 징계를 교도소 쪽에만 맡긴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증거가 명백한 사건을 수사의뢰하기도, 피해정도가 가벼운 사건을 형사고발하기도 어려웠다는 것이 인권위의 고심이었단다. 그렇지만 폭행사건을 형사처벌할지의 여부의 판단은 인권위가 아니라, 검찰과 법원의 몫이다. 이번 경우에는 그냥 형사고발 하는 것이 맞았다. 인권위의 성숙한 모습, 곧 위원장이 취임 직후 밝힌 ‘매력있는 기관’으로의 변모는 좌고우면에서가 아니라, 원칙에 충실한 모습에서 나오는 것이다. 교도소 쪽이 낮은 수위의 징계조차 거부하자, 동영상 공개라는 이례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은 점잖지 않은 감정적인 대응이었다.


 인권위의 대응은 좀 부적절한데서 멈추지만, 안양교도소와 해당 교도관의 대응은 도발이었다. 명백한 폭행은 그저 등을 두드리려다 어깨를 친 것이 되어 버렸다. ‘임마’라는 말을 해서 부적절했다지만, 현실의 교도소에서 ‘인마’는 부적절한 언어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 교도관들이 재소자들을 칭하는 가장 흔한 말은 ‘애들’이다. 명색이 인권운동가 앞인데도 ‘애들’을 반복해서, “이곳이 소년원이냐?” 물어도, 왜 묻는지 뭘 묻는지도 모른다.


 교도소 쪽의 무리한 대응은 인권위의 법적 한계 때문일 거다. 권고란 것이 받아들여도 그만, 그렇지 않아도 그만이니, 버텨서 손해 볼 게 없다는 생각이다. 상대가 법적 권한이 분명한 검찰이었다면 그렇지 못했을 거다. 게다가 교도관의 얼굴이 나오지도 않고, 누군지를 특정할 수도 없는 동영상이 공개되었다고 ‘교도관의 인권’이 침해되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는 모습은 딱히 평가할 다른 말을 찾지 못할 정도로 기가 막힌 일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재소자들을 맡겨도 되나 싶다.


 재소자의 가석방과 각종 처우는 교도관에게 달려 있다. 하루라도 빨리 나오고 싶은 재소자에게는 가히 생살여탈권과 비슷한 막강한 권한이다. 지금 한국의 교도소에 필요한 것은 ‘교도관의 인권’ 어쩌고 하는 볼멘소리가 아니라, 막강한 권력을 감시하는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다. 한국에는 그게 없다. 인력도 권한도 부실한 인권위로는 너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