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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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날 기념식장 앞 풍경 (진보정치 07.10.29)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6:58
조회
220


경찰의 날 기념식장 앞 풍경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10월 19일 경찰의 날 기념식장 앞. 민주노동당 주최로 ‘경찰의 이랜드 코스콤 투쟁 탄압과 민주노동당의 정치활동 방해 규탄대회’가 열렸다. 제목에 담긴 것처럼 잘못된 경찰의 행태를 항의하고, 경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알리고자 하는 뜻이 담겼단다.


민주노동당이 경찰권 남용이나 부당한 사용에 대해 항의하는 것도 맞다. 무엇보다 진보정당의 정체성에 맞다. 맞지만, 어른스럽지 못해 보인다. 잘못이 있어도 꼭 생일잔치에 가서 규탄을 해야 했을까.


경찰을 보는 민주노동당이나 당원들의 시각은 마치 고장난 시계처럼 멈춰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긴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주로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경찰과 만나게 된다. 가끔은 물리적인 충돌까지 빚어지는 싸움의 공간이다. 싸울 때의 상대는 적이다. 쫓겨난 사람, 밀려난 사람들의 아우성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경찰의 물리력을 동원한 대응이 있었다. 진보정당의 처지에서 경찰과의 싸움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찰이 태도를 크게 바꾸지 않는 한, 싸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경찰은 크게 보아 두가지 얼굴을 하고 있다. 꼭 적의 얼굴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대선후보의 신변안전을 책임지는 경호업무를 맡고 있는 것도 경찰이 아닌가. 시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근무하거나 인명구조, 교통안전 등 생활밀착형 치안활동을 벌이는 경찰도 있다. 물론 국가보안법이라는 녹슨 칼에 기대 엉뚱한 짓이나 일삼는 보안경찰도 있고, 쓸데도 없어 보이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주워담고 다니는 정보경찰, 집회․시위 현장에서 활동하는 경비경찰도 있다. 대통령의 몽둥이도 있지만, 민중의 지팡이도 있다.


10만명이나 되는 조직원을 갖고 있는 거대한 조직인 경찰이 모두 한가지는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 조만간 집권에 성공해야 할, 그리고 성공할 가능성도 풍부한 진보정당이 단순하게, 과거 민주화운동 시기에 그랬던 것처럼 경찰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만을 낳게 된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잘못이 있더라도 심하게 몰아붙이거나 감정 상하게 다그치면 역효과가 난다. 생일잔치날의 규탄대회는 책임있는 대중정당의 면모에서는 비켜서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민주노동당이 생일잔치날 규탄대회를 해도 저들이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거다. 당의 이름을 걸고 열심히 규탄하는데도, 규탄당하는 상대는 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니, 곤혹스러울 뿐이다. 혹시 당이 상대방의 반응조차 제대로 신경쓰지 않는 관성적인 싸움만을 반복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싸움을 해야 한다면 피하지 않고 싸우되, 제대로 싸워야 한다. 어설픈 주먹질로 허방을 날리면 안된다. 기자회견 방해했다고 궁시렁대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곤란하다. 정당의 대응은 훨씬 달라야 한다. 보다 전문적이어야 하고, 힘이 제대로 실려야 한다.


싸우되 상대방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싸움, 상대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싸움이 필요하다. 묵묵히 일하는 다수 경찰관들을 포용하고 격려할 수도 있어야 한다. 검․경수사권 조정에는 찬성하지만, 경찰조직에 대한 이중삼중의 감시와 견제장치가 있어야 한다든지, 민생치안은 고무하되, 시국치안의 폐해는 뿌리를 뽑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떻든 지금과는 좀 달라야 한다. 노조도 직장인협의회도 없는 공무원 10만명이 민주노동당이 손을 내밀어주길 기다리고 있다면 과장일까. 관성을 극복하고 충분히 준비된 싸움을 제대로 한다면, 다수 경찰공무원과 진보정당의 행복한 만남은 한낮 꿈같은 일에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