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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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사람들의 고마운 나라 (주간 [시사IN, 07.10.8)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3 16:55
조회
210

버마사람들의 고마운 나라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6월 19일 아웅산 수치 여사의 생일을 맞아 화요일마다 열리는 ‘프리 버마캠페인’에 참여하는 버마민주화운동가들과 조촐한 축하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버마가 민주화된다면 어떤 나라가 가장 고마워 할 것인가 물었다. 노르웨이란다. 밥도 사는데 인사치레라도 한국이 고맙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르웨이는 외국인의 이민을 강력히 규제하는데도, 난민에게는 매우 관용적이어서 지금까지 1만명 가까운 버마 난민을 받아들였다. 노르웨이 정부가 직접 비행기를 보내 버마-태국 국경 지역에서 데려온 난민만 해도 1천명이 넘는다. 찾아온 버마 난민은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받아주었다. 한국이 이제 겨우 8명만 그것도, 길고 지루한 재판 끝에 받아들인 것과 크게 비교되는 대목이다. 4천9백만명의 인구를 가진 한국의 역할은 인구 460만명의 노르웨이가 한 일에 비교조차 어려울 정도로 초라하다. 


한국에서의 난민 지위는 그저 강제출국 당하지 않는 권리 정도에 그치고 있다. 난민지원예산도 1천만원뿐이다. 1인당이 아니라, 1년의 예산 총액이 그렇다. 노르웨이는 거주 지원은 물론, 학교도 보내주고 직업교육과 함께 일자리도 알아봐준다. 제 나라 국민과 똑같은 대접을 해준다. ‘버마민주의 소리’등 민주화운동의 해외 기지가 노르웨이에 모여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한국은 같은 아시아 국가로서 식민지배, 일제의 침략, 군부 쿠데타와 민주화 운동 등 버마와 비슷한 아픔을 겪었지만, 한국정부와 기업의 대응은 비인간적이고 염치도 없다. 한국정부는 버마민주화운동에 대해 언급조차 거의 없고, 대우인터내셔널 등 기업들은 버마의 천연자원에만 눈독을 들이 있다. 국내법으로 금지된 무기까지 버마군부독재정권에게 넘기는 범죄행위도 서슴지 않고 있다.


놀라운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은 대의원대회에서 버마 민주화투쟁 지지 결의문 채택을 놓고 몸살을 앓았다. 미국이 버마민주화투쟁을 지지하는 것이 걸림돌이 되어서 결국 만장일치가 아니라 표결로 결의문을 채택했단다. 반국가단체의 것과 비슷한 주장을 하면 결국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이니 처벌받아야 한다는 국가보안법과 똑같은 논리가 걸림돌이 되었다니 너무 한심하다.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민주화와 산업화에 동시에 성공한 나라라고 자랑한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한국의 사례는 성공적이라 할만하다. 그렇지만, 이런 자랑의 이면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모습들뿐이다. 한국의 성공이 한국사람들만의 공인가. 한국의 물건을 사준 외국 사람들이 있었기에 세계적 무역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광주학살의 참극을 용감하게 증언하고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해 준 해외의 양심적 인사들 덕에 이만큼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다.


많은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정작 다른 나라를 돕는데 인색한 나라, 이기적이며 오만한 부자나라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춰진 한국의 모습이다. 부끄러운 모습이다. 정부와 기업이 최소한의 윤리적 역할도 못한다면, 이제 언론과 시민사회라도 나서야 한다. 당장 군부독재가 바꿔놓은 나라이름 ‘미얀마’를 ‘버마’라고 고쳐 부르는 쉬운 일부터 버마민주화운동을 돕는 성금을 모으거나, 화요일 점심마다 서울 종각 앞에서 열리는 ‘프리 버마 캠페인’에 참가하는 일, 그리고 한국의 정부와 기업에게 인도적인 역할을 요청하는 것까지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마음을 담은 댓글 한줄을 올려주어도 좋다. 우리가 버마사람들과 같은 사람으로써 그들의 고통과 연대하겠다는 마음뿐이어도 좋다. 고마운 나라는 아니어도 최소한 부끄러운 나라는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런 마음과 작지만 구체적인 실천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