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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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을 위해 쓰던 지갑을 열어라(평화신문, 2014.9.7)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0-24 16:57
조회
186
[시사진단] 나만을 위해 쓰던 지갑을 열어라   
2014. 09. 07발행 [1281호]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이 감정을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4박 5일 좋은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랄까. 꿈같은 닷새였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기간 내내 평화방송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말씀은 쉽고 간결했고 또 정확했다. 손짓과 몸짓, 그리고 표정엔 진정성이 묻어났다. 누군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고마움을 느꼈던 적이 또 있었을까. 신기한 체험이었다. 종교가 없는 홍세화 선생은 고결함과 섬세함을 느꼈다고 했다. 오태규 한겨레 논설실장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미리엘 주교가 책 밖으로 걸어 나온 느낌이라고 했다.

미리엘 주교, 경찰에게 끌려온 장발장에게 은촛대마저 내어주는 섬세한 사랑으로 많은 독자의 가슴을 쳤던 인물이다. 하지만 미리엘 주교에게서 기억해야 할 것은 장발장과의 만남 그 하나의 사건만은 아니다. 주교관을 환자들에게 내어주고, 온 정성을 다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살폈다. 1만 5000프랑의 연봉을 받았지만, 겨우 1000프랑만 ‘개인적 지출’에 사용했고 1만 4000프랑은 가난한 이웃을 위해 썼다. 빚 때문에 투옥된 가장들의 석방 사업, 산모 구호 단체, 감옥 개선 사업, 재소자 위로와 석방 사업, 구휼 사업, 극빈 가정 자녀 무상교육 등이 그가 일상적으로 돈을 보내는 곳들이다. 자신을 위해서는 연봉의 15분의 1밖에 쓰지 않으면서도 미리엘 주교는 이런 씀씀이를 ‘우리 집 지출 계획’이라 불렀다. 

그저 착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현실 판단은 정확했고, 또 준엄하기도 했다. 여성, 어린이, 청소년, 하위 계급, 약자와 가난한 사람,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잘못은 곧, 남성, 어른, 상위 계급, 강자와 부자, 유식한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하지만, 부자와 강자들에게는 못마땅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누구나 공평하게 대접받아야 하지만,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여야 한다면, 힘없는 사람들 쪽으로 기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더 오래전부터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생사관도 남다르다. 산적 떼가 출몰하는 험한 산길을 가는 게 목숨을 내놓는 일이라고 말리자, 자신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혼들을 돌보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도무지 막힘과 걸림이 없다. 

미리엘 주교의 삶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겹쳐진다. 똑 닮았다. 정의롭되 따뜻하다. 차가운 정의는 오만하고, 정의 없는 온정은 자기만족에 그치기 쉽지만, 두 사람은 놓치기 쉬운 둘을 다 챙기고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소설 속 주인공이고, 다른 사람은 단지 닷새 동안의 꿈같은 만남을 뒤로하고 먼 곳으로 떠났다. 다시 만날 기약도 없다. 허탈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공감하고 기억하고 연대하자는 교황의 뜻을 좇을 방법은 없을까?

답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다. 눈을 돌려 살펴보면, 도처에 미리엘 주교나 프란치스코 교황 같은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프라도 형제자매들을 비롯해 자신을 내어 놓는 수도성직자와 평신도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들은 미리엘 주교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을 잇고자 오래전부터 애써왔다. 이들은 언제나 선의의 사람들 참여와 후원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의 안내에 따라 시간을 내어 연대 활동에 참여하거나, 자기 지갑을 열어 더 넓은 의미의 ‘우리 집 지출 계획’에 돈을 보태면 된다. 다만 얼마라도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게 훌륭한 시작이 될 수 있다. 기억하고 공감하고 연대하기 위한 시작은 자기만을 위해 쓰던 자기 지갑을 여는 데 있다.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자기만족을 위해 자동차, 골프, 와인 따위에 지갑을 열던 사람들이라면, 더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시작이 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