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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동칼럼] 감춰진 언론의 진실(2023.12.14)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12-14 09:55
조회
42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대장동 사건’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대리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상대 차량이 8.5t 트럭이었고 고속도로였지만, 누구도 크게 상하지 않은 접촉 사고였다. 다행이다. 그런데 유동규 전 본부장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벌인 사건이라도 되는 듯 엄살을 부렸다.


기다렸다는 듯 여당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표와 관련한 “여러 사건에서 관련자들이 연달아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소상하게 이런 일을 보도했다. 어떤 매체는 유 전 본부장이 입원한 병원까지 찾아가 인터뷰했다.


경찰은 현장조사와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고의성을 찾아볼 수 없는 단순 사고라고 판단했다. 이뿐만 아니라 유 전 본부장 차량의 책임이 좀 더 크다고 했다. 그래도 조선, 중앙 등은 지면 공세를 반복했다. 의혹을 제기하는 척하면서 야당 대표에게 살인교사 혐의를 덧씌우려는 거다. 잘못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음모론에 기대서 어떻게든 흠집을 잡아보겠다는 건, 천박한 정치공세일 뿐이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가 명품 핸드백과 고가 화장품을 ‘선물’로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앞서 교통사고 영상기록이 진실을 말해주듯, 김건희씨의 뇌물수수도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일부는 흔히 ‘독수독과론’이라 부르는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을 들이대기도 한다. 수사기관이 위법부당하게 수집한 증거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과 언론사의 함정 취재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함정 취재는 부도덕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대통령 부인의 뇌물수수 사건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더구나 국정 운영에 누구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진 대통령 부인의 뇌물수수 사건인 만큼 언론의 주목은 당연한 일이지만, 다수 언론은 짐짓 모른 체로 일관하고 있다. 왜일까?


대통령 부인과 야당 대표의 부인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는 무척 다르다. 이재명 대표의 부인 김혜경씨는 이 대표의 경기도지사 시절, 법인카드를 유용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언론보도도 쏟아졌다. 지난주에는 검찰이 경기도청 등 10여곳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같은 사건으로 압수수색만 4번째였다. 이 대표와 관련한 경기도청 압수수색은 새로운 도지사가 취임한 이후에 진행한 것만 14번이다. 경기도 청사도 다른 곳으로 옮겼고, 도지사와 비서진이 모두 바뀌었는데도 반복적 압수수색을 했던 거다. 그래도 다수 언론은 마치 새로운 사건이 터진 것처럼 보도를 쏟아냈다. 대통령의 부인과 도지사의 부인에 대한 언론의 대접은 사뭇 달랐다.


검찰의 무리한 압수수색은 경기도청만이 아니었다. 동네 세탁소마저 압수수색 대상으로 삼았다. 없는 먼지라도 털어내겠다는 기세다. 세탁소 주인은 죽음을 암시하며 실종될 정도로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다. 카드 사용내역만 들여다보면 그만인데도 요란한 압수수색을 하는 건 그저 겁주기 위한 쇼일 뿐이다.


검찰이 반복적 강제수사를 통해 언론을 움직이고, 마침내 여론마저 움직여 총선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기관이 여당의 총선 승리와 대통령의 정적 제거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지만, 이를 비판하고 엇나간 국가작용을 바로잡아야 할 언론은 그저 검찰이 불러주는 기사만 받아쓰고 있는 형국이다. 세탁소 주인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다.




주류 언론은 국민의힘이 해야 할 총선 걱정을 대신 해주고 있다. 이대로 가면 폭삭 망할 테니, 대응을 잘하라는 주문이다. 정치지형이 둘로 갈라진 나라에서 대다수 언론은 특정 정치세력, 곧 정부·여당 편만 들고 있다. 진영을 나눠 상대를 없애야만 내가 산다는 저열한 싸움도 언론의 책임이 크다. 그래서인지 언론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추락하고 있고, 언론의 영향력도 줄어들고 있다.


우리 언론은 왜 이 모양인가 하는 걱정도 많다. 마침 <감춰진 언론의 진실>이란 책이 나왔다. 경제학이란 렌즈로 언론을 들여다봤다. 언론이 어떻게 권력에 포획되고, 스스로 권력이 되었는지를 꼼꼼하게 따지고 있다. 언론이 이 지경이 된 것은 언론사나 언론종사자만의 잘못이 아니라 그런 언론을 방치하거나 같은 편이라고 옹호했던 수용자의 잘못도 적지 않을 거다. 그러니 편파적이거나 자기 회사의 이익만 좇는 엉터리 언론을 골라내는 시민의 안목이 어쩌면 유일한 해법일 거다. 좋은 언론이든 좋은 정치든 모두 시민의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