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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동칼럼]이선균과 이재명, 너무 다른 경찰 수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1-12 09:57
조회
44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선균 배우를 좋아했단다. 자신이 최고책임자로 있는 조직과 관련되어 사람이 죽었다면, 혹시 무슨 잘못은 없었는지부터 살피는 게 공직자의 기본이지만, 그는 늘 달랐다. 이태원 참사나 오송 참사에서도 유체이탈식 발뺌만 했다.


공개 소환을 반복하며 망신을 주지 않았다면, 거짓말탐지기 조사라도 해달라는 애타는 호소에 귀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정밀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왔으니 원칙대로 무혐의로 종결하면 그만인데도 경찰은 그러지 않았다. 유아인 배우에게 그랬던 것처럼 꼬투리라도 잡겠다며 압박을 거듭했다. 이런 압박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선균 배우는 그렇게 죽음으로 내몰렸다.


마약 수사는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단순 투약자를 넘어 판매와 유통, 나아가 제조범까지 검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선균 배우를 수사하는 경찰은 전혀 달랐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한다고 으스대는 모습이었다. 관할도 아닌 인천지방경찰청장은 이선균 배우 말고는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굴었다. 세계적인 배우를 엮을 수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태도로 피의사실을 유출했고, 공개 소환과 공개수사를 고집했다.


물론 이선균 배우의 죽음이 경찰만의 책임은 아니다. KBS는 공영방송의 본분을 내팽개치고 저질 유튜브 수준의 보도를 했고, 진짜 저질 유튜버들은 광기를 보였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악질 보도의 근거는 모두 경찰이었다. 경찰은 수사를 시작하지도 않은 ‘입건 전 조사’ 단계에서부터 40대 유명 배우 등의 단서를 흘리다가 반나절도 안 되어 이선균 배우가 마약수사를 받을 거라고 공표했다.


사람이 죽었으니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났지만, 그렇지 않아도 무혐의로 끝날 사건이었다. 설령 경찰이 몰아붙인 것처럼 마약을 복용했다 쳐도, 이선균 배우가 실형을 선고받고 투옥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초범인데다 수사에 협조했으니 구속하기도 어려웠을 거다. 만약 이선균 배우에 대한 수사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살해하려던 테러범에게 했던 것처럼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면 어땠을까.


이재명 대표 테러 사건 수사는 딴판이었다. 피의자는 다음 대선의 유력한 후보인 이 대표를 죽이려고 범행을 저질렀다. 그가 밝힌 것처럼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거나 야당이 총선에서 이기는 것을 막기 위한 테러였다. 사람을 해치고 민주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무서운 범죄였다. 죄질 나쁜 살인미수니, 징역 10년은 넘는 무거운 처벌을 받을 거다.


그렇지만 이 범죄자에 대한 경찰의 대접은 이선균 배우와 비교해 너무 달랐다. 신상공개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신상공개를 안 한 이유조차 공개하지 않겠다고 배짱을 부렸다. 어떤 각별한 인권보장을 이유로 신상공개를 안 하더라도, 왜 비공개인지는 밝혀야 했다. 국가기관의 작용과 공직자의 활동은 모두 공개와 공개적 책임을 전제로 하는데도 경찰은 거꾸로였다. 범죄자가 국민의힘 당원이었고 태극기 부대 일원이라는 중요한 사실조차 끝내 숨겼다. 이쯤 되면 경찰이 신경 쓰는 게 뭔지 짐작할 만하다. 이선균 배우처럼 누군가는 죽음으로 내몰면서까지 공치사에는 열심이지만, 대통령이 싫어할 만한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는 ‘충심’이 만들어낸 기괴한 장면이었다.



 

수사는 범죄 유무를 가리는 국가작용이다. 누군가의 주목을 끌기 위한 푸닥거리나 대통령이 싫어하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공작일 수는 없기에 흔히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고 근사하게 표현한다. 수사기관이 실체적 진실을 찾겠다며 이선균 배우에게 그랬던 것처럼 무작정 달려들면 안 되기에 ‘적정절차 원리’를 준수하며 인권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사는 진실을 발견하며 인권도 보장하는, 양쪽으로 달려가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힘든 일이다. 이게 수사를 공부할 때 배우는 맨 첫 대목, 곧 기본 중의 기본이다.


수사는 현실에서 국가가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기다. 무기이니 사람이 죽거나 다칠 수 있고, 그래서 함부로 쓰면 안 되는 ‘최후 수단’이다. 하지만 평생 수사만 했다는 사람이 대통령도 하고 여당 대표도 하는 세상이 되자, 최후 수단은 선제공격을 위한 흉기로 둔갑해버렸다. 수사는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정의와 진실만을 추구해야 하지만, 윤석열 정권에서의 수사는 한쪽으로만 기울어졌다. 그저 대통령만 의식하고 있다. 검찰은 진작부터 그랬고, 이젠 경찰도 부쩍 검찰의 행태를 쫓고 있다. 원칙은 이런 식으로 구석으로 내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