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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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동칼럼] 검찰의 도발(2023.10.19)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10-23 09:23
조회
65

왕조시대에는 ‘사또 재판’을 했다. 고을 원님이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을 잡아다 추궁한다. 범인이란 예단은 ‘유죄 추정의 원칙’으로 이어지고, “네 죄를 네가 알렷다!”라고 윽박지르는 게 전부다. 수사와 재판은 무의미하다. 피의자가 자신을 방어할 도리도 없다. 지도자의 선의에 기대는 방법밖에 없지만, 권력자의 선의에 기대는 것처럼 허망한 일도 없다.


그래서 만든 게 검사 제도다. 경찰이 수사하면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하고 법원에서 재판하는 게 현대 형사사법의 일반적인 구조다. 억울한 사람이 생기는 걸 줄이고, 법집행 공무원의 감정적인 대응이나 아집, 또는 자기 욕심 따위가 끼어들지 못하게 하자는 거다. 형사사법 과정에도 견제와 균형 등 민주주의 일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검찰은 기형적이고 극단적으로 왜곡돼 있다. 국가가 현실적으로 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국가형벌권은 검찰이 한 손에 틀어쥐고 있다. 간판은 기소기관이라 붙여놓고, 수사에 골몰한다. 수사와 기소, 형 집행권까지 장악한 검찰은 구약성경 ‘욥기’에 나오는 괴물 레비아탄(리바이어던) 같다. “칼로 찔러봐도 박히지 않고 창이나 표창, 화살 따위로도 어림없는” 강력한 존재다. 그래서 “도무지 두려움을 모르고” “모든 권력가가 그 앞에서 쩔쩔매니, 모든 거만한 것들의 왕”처럼 군다.


레비아탄을 통제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법의 지배’밖에 없다. 검사의 권한도 국민에게서 나온 것이니, 국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하는 거다. 이런 원칙이 종사자 입장에서는 불편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헌법과 법률은 온통 이거 하지 말라, 저거 하지 말라는 간섭과 통제투성이니 말이다. “이런 식이면 수사를 하지 말라는 거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종사자들의 푸념에도 불구하고 법의 원칙은 확고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제일 잘하는 일이라는 ‘압수, 수색, 검증’의 경우에도 형사소송법은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고 해당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에 한정하여”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15조). 지금처럼 마구잡이로 하지 말라는 거다. 구속영장 청구를 남발하지만, 형사소송법의 원칙은 ‘불구속 수사’다. 별건 수사를 하거나 다른 사건으로 알게 된 증거나 자료를 내세워 관련 없는 사건에 대한 자백이나 진술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형사소송법 제198조). 피의자나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고 수사과정에서 취득한 비밀을 엄수해야 한다. 검사가 공소제기 전의 사건에 대해 공개하거나, 직무상 비밀을 누설하는 행위는 형법상 범죄다(제126조, 제127조). 검찰이 형사사법을 장악하고 있으니 검사의 범죄에 대해 모른 척할 뿐이다.


형사소송법은 일반적 수사준칙을 대통령령으로 정해둔다고 규정(제195조)하고 있다. 이 준칙은 더 엄정하다. “예단이나 편견 없이 신속하게 수사해야 하고, 주어진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하거나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수사, 곧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위해서도 “물적 증거를 기본으로 하여 객관적이고 신빙성 있는 증거를 발견하고 수집하기 위해 노력”하고, “수사과정에서 선입견을 갖지 말고, 근거 없는 추측을 배제하며, 사건관계인의 진술을 과신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 등을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명예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규정과 딴판인 현실이다. 윤석열 정권이 검찰의 수사 역량을 집중해 떠들썩하게 진행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관련 수사가 특히 그렇다.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그렇게 많은 인력을 투입해 오랫동안 털었다면 이 대표가 부당한 이익을 챙겼다는 증거 몇개쯤은 나왔어야 했다. 이 대표가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 자체가 검찰이 얼마나 무리한 수사를 했는지 알려준다. 한심한, 그리고 이상한 수사다.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검찰은 곧바로 세 번째, 네 번째 기소를 감행했다. 다섯, 여섯 번째 기소도 벼르고 있을 것이다. 법원이 상식적인 판단을 하는 한 검찰 맘대로 세상이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형사사법시스템은 근간부터 흔들리고 망가지고 있다. 어쩌면 윤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근간을 스스로 허물고 있는 것 같다. 다음부터는 국민들이 수사와 기소, 형 집행을 한 손에 틀어쥔 레비아탄을 용납하지 않고 검찰에서 수사권을 박탈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