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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 모든 권력에는 감시가 필요하다는 상식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8 11:56
조회
245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경찰서의 유치장에는 ‘유치인의 권리보장’이라는 커다란 게시물이 붙어 있다. 유치인은 무죄추정을 받으며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거나, 인권침해를 당했을 때는 국가인권위를 비롯해 다양한 곳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들이 적혀 있다. 지난해 경찰이 이 게시물을 붙이기 전에는 ‘유치인 준수사항’이 붙어 있었다. 유치인은 자신의 죄를 반성하며 똑바로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어찌 보면 단순한 변화지만, 경찰서에 구금중인 유치인이 무죄추정을 받는 피의자이기에 원칙적으로 ‘반성할 죄’가 없다는 상식이 이제야 확인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수십 년째 붙어있던 ‘준수사항’이 ‘권리보장’으로 바뀌게 된 것은 경찰서 유치장을 참관한 시민인권보호단의 지적 때문이었다. 경찰서 유치장 근무 직원들은 아무 생각 없이 매일처럼 보아왔던 것이지만, 외부의 시민들 눈에는 전혀 달리 보였던 것이다. “왜 저런 글이 붙어 있냐”에 대한 질문에 대한 정직한 답은 구태의연한 문구를 떼어 내는 것 뿐이었다. 확실히 내부와 외부는 다른 눈을 갖고 있다.


 문제는 경찰이나 교정 같은 기관들이다. 이들은 물리력을 갖고 있고, 특히 피의자나 재소자에 대해 우월적 지위에 있기에 권력 남용의 가능성이나 피의자, 재소자들에 대한 인권침해 가능성을 늘 갖고 있는 기관이다. 이런 기관이 오로지 내부의 논리로만 운영되는 것은 위험하다. 내부의 논리, 내부의 시각만 있을 때, 서울구치소성폭행 사건처럼 피해를 당한 여성재소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큰 불이익이 두려워 오로지 참기만 하든지, 아니면 자살을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는 극단적인 선택만이 가능하게 된다. 끔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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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논리로만 운영되는 것은 위험


 최근 영국 정부의 초청으로 영국의 교정, 경찰 분야에 대한 감시 기제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우리와 같은 역사적 굴절이 많지 않고 비교적 오랫동안 근대사법 체계를 이어온 저들이 “모든 권력에는 감시와 통제가 필요하다”는 간단한 원리를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 그 실체가 궁금했다.


 영국은 문헌에서 보았던 것 이상으로 꼼꼼한 여러 겹의 감시 기제를 갖고 있었다. 경찰활동에 대한 감시로는 경찰관련 진정사건을 처리하는 경찰 옴부즈만이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었고, 지난 2002년 경찰개혁법의 제정으로 독립적 경찰비리민원조사위원회(Independent Police Complaints Commission, IPCC)같은 조직도 활동하고 있었다. 소수 인종에 대한 몇 건의 경찰폭력사건이 발생하자, 영국 인권단체 리버티 등이 경찰감시가 더 필요하다는 집중적인 캠페인을 벌인 결과 만들어진 조직이다. 이 기구는 단순한 비리만이 아니라, 수사상 오류나 수사 미진에 대한 진정도 처리해 주고 있다. 우리의 경우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손도 못 대는 국가인권위에 경찰관련 진정사건 처리를 위해 채 10명도 안되는 조사관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 경찰감시의 전부인 것과 크게 비교된다. 경찰 옴부즈만의 직원은 120명이고, 경찰비리민원조사위의 직원은 350명이나 된다.


국가경찰제도가 아예 없고, 철저하게 자치경찰로 운영되어 그 자체로 분권화되어 있으며, 일반직 경찰관들의 가입율이 99%에 이를 정도로 노조가 활성화되어 있는 등의 내부 기제는 물론이고, 외부의 감시 기제도 다양하게 작동하고 있는 현실이 바로 영국경찰의 수준과 질을 담보하는 안전장치였던 것이다.


 지난해 두 명의 농민이 경찰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는 사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얻은 성과라는 것이 고작해야 경찰청장의 교체였고, 이후에는 범정부차원에서 생뚱맞게도 평화적 집회·시위문화의 정착이라는 동문서답식 해법에 골몰하는 것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다. 영국식이라면 전투경찰제도의 해체나 최소한 경찰활동에 대한 튼실한 독립적 외부 감시기제를 만드는 것이 답이어야 했다.


 감시기제는 안전장치


 영국은 교정 분야에서도 매우 꼼꼼한 여러 겹의 감시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었다. 각 교도소마다 독립적 교정감시위원회(Independent Monitoring Board for Prisons, IMB)가 활동 중이다.


 15명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교도소에 관한 모든 상황에 대해 일상적 인 전담 감시활동을 진행하고 있었고, 이 기구의 대표는 아예 교도소에 상주하고 있었다.


 교도소의 모든 시설에 접근할 권한을 가지고 재소자들의 민원을 직접 청취하면서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었다. 일종의 밀착형 전담감시체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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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 분야에서의 진정사건 처리를 전담하는 옴부즈만에 일하는 직원은 210명이었고, 교정기관이 목적에 맞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지를 조사하는 전담 조사기관으로 교정조사처(Inspectorate of Prison)도 활동 중이다. 이곳의 직원은 21명이다.


 중층의 감시 구조가 필요


 여의도에서, 의왕의 구치소에서 사람이 연달아 죽어나갔다. 한결같이 우리 사회가 살뜰히 보살피고, 더 많은 배려를 했어야 할 사람들이었는데도 그랬다. 우리는 왜 사람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인가. 그 교훈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모든 권력에는 감시가 필요하다’는 상식을 구체적인 감시 기제를 통해 구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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