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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 전자팔찌는 인권침해적 미봉책에 불과하다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8 11:43
조회
484

최철규/ 인권연대 간사


 이른바 ‘전자팔찌법’안에 대한 인권옹호자들의 반발에 대해 ‘피해자 인권보다 가해자 인권을 더 중요시 한다’라든가 ‘성범죄를 옹호한다’라는 등의 비판이 있다. 이러한 비판들은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터부와 인권에 대한 그릇된 이해가 기형적으로 뒤엉켜 있는 것에 불과하며, 성범죄 문제에 대한 합리적 대책 마련이나 한국 사회의 인권 신장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인권을 갈라 피해자의 인권을 우선시하고, 심지어 성범죄자는 인간이 아니기에 인권 따위는 필요 없다는 발상이나 표현은 이미 반인권적이다. 인권이란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하는 최소한의 기본적 권리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제외되거나 차별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짐승 같은 ‘인간’이 있는 것이지, 인간 아닌 인간이란 존재할 수 없다.


제안된 전자팔찌는 명백히 반인권적인 제도이다. 이미 형사처벌을 마친 사람에 대한 이중처벌로 근대 인권법의 중요 원칙으로 자리잡은 이중처벌금지라는 원칙에 위배되며, 24시간 위치 추적으로 성범죄와 무관한 모든 사생활을 감시하여 침해하고, 사회적 낙인을 통해 갱생의 기회를 박탈해 버린다. 성범죄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가해자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아도 된다는 것은 이미 인권의 논리가 아니며, 한국 사회의 질 낮은 인권의식을 반영할 뿐이다.


그렇다고 인권옹호자들이 성범죄의 폭력성에 둔감한 것은 아니다. 동일한 범죄 행위에 대하여 똑같이 분노하지만, 분노의 대상이 다소 다르고, 분노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이 다를 뿐이다. 인권옹호자들이 분노하는 대상은 성범죄를 대하는 사회적 담론의 허약성과 정책 입안자나 집행자들의 무책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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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범죄 예방을 표방하는 전자팔찌를 보면서, 사전파악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범행 의도를 알려주는 것은 첨단 기계장치가 아니라, 예지력을 지닌 초인간들이다. 즉, 전자팔찌는 영화적 상상력조차도 훌쩍 뛰어넘는 비현실적 장치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보다 다차원적인 대책 필요


한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행위, 즉 범죄의 해결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범죄/자의 성격과 유형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이에 근거한 실효성 있는 대안이 제시돼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사회에 성범죄를 다루기 위한 충분한 연구와 제도가 존재하며, 전자팔찌가 진정 효과적인 대책인가?


전자팔찌 옹호론자들은 ‘성범죄 재범율이 80%에 달하기 때문에 전자팔찌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한다. 사실 왜곡과 논리적 비약을 통한 사기성 발언에 불과하다. 가석방자 45,321명을 대상으로 한 교정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강간 등의 성범죄의 동일범죄재범율은 19.1%로, 절도(68.5%)나 교통사고특례법위반 등(57%), 폭행 및 상해(45.4%)보다 낮다. 80%란 다른죄명입소자 비율, 즉 성범죄자가 성범죄이외의 다른 범죄로 처벌된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전자팔찌는 착용자의 시간대별 위치를 알려줄 뿐, 범행의도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므로 범죄 예방 효과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성범죄가 충동적이며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착용자에 대한 심리적 억제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다.


혹자는 미국을 비롯한 몇몇 사례를 들어 옹호하지만, 그것은 실효성 증명이 아니라 그저 다른 곳에도 이런 제도가 있다라는 제시에 불과하다. 미 플로리다주만 하더라도 전자팔찌 제도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뢰할 수 있는 검증이 어렵다. 또한 대부분의 외국 사례가 일반구금형을 대체하기 위한 것으로, 포괄적이며 맹목적인 한국의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


성범죄자의 재범을 막기 위한 유일하며 효과적인 대책은 성범죄자의 개인별 특성에 대한 분석과 이를 근거로 한 교육 및 치료 프로그램이다. 영국은 성범죄자 치료 프로그램(SOTP, Sex Offender Treatment Programme)을 갖추고 개인의 성격요소, 범행수법변화동기, 성관련 금기사항 인지정도, 성 의식, 사회적응력, 분노표출양식 등의 요소를 감안하여 성범죄 범행의 동기들을 분류하고 그에 맞는 교정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왜곡돼 있는 성 의식을 교정하고, 범죄 희생자에 대한 동정심 유발 훈련 등을 통해 인지적 차원에서의 자기 변화를 유도한다는 것이 골자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전자팔찌가 아니라, 이런 프로그램이다.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분노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선정주의에 휩싸여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일부 정치권과 언론이 제시하는 전자팔찌는 성범죄 예방이라는 목표의 근처에는 가지도 못한 채 또 다른 많은 폐해를 야기할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보다 다차원적인 대책을 세우기 위해 현재의 문제점을 꼼꼼히 살펴보고,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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