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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 한국사회와 가난 ① - 가난, 그 끝자리의 삶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8 11:41
조회
269

박재천/ 제정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사회의 곳곳에서 우리사회의 양극화를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말하고 있다. 국정목표가 양극화의 해소에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정치권은 물론 사회전반에서 양극화라는 사회현상이 마치 쓰레기 치워내듯 없애버려야 할 골치 덩어리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실상 당사자인 가난한 사람들은 양극화라는 말이 무엇인지 모른다. 양극화라는 말도 어렵지만 실제 근원의 책임자며 원인 제공자들이 정치권이나 독점재벌기업들이기 때문이다. 장본인들이 은폐용으로 말하는 해소대상으로서의 양극화라는 말이다.


 양극화는 사회구조의 문제


 1974년 11월, 나는 청계천 판자촌을 처음 보았다. 청계천 둑을 따라 수천, 수만 세대의 개미집 같은 판자촌들이 즐비하여 세상에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다니 하면서 충격이었다. 그 충격이 나의 삶을 결정하였다. 그 곳 판자촌에 살기 시작하면부터 지금까지 가난한 사람들은 밀리고 밀려 항상 말석에서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으며 끝자리 인생살이가 반복, 반복되고 있는 사실을 목도하고 있다. 당시의 판자촌 사람들은 서울 사대문 안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다. 이들이 또 철거되어 서울 외곽이나 산동네로 밀려났다. 80년대 들어 이들이 또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철거되고 쫓겨났다. 지금은 비닐하우스에 살거나 지하셋방이나 단칸 쪽 방에 거주하는 현실이 우리 한국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의 살고 있는 끝자리 모습이다.


 인류역사에서 ‘가난한 삶’은 늘 존재했지만 ‘가난의 문제’는 산업화 이후에 나타난 사회구조적인 결과들이다. 가난한 삶이란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서로 도와서 사는 협동하는 공동체의 삶이다. 이렇게 산업화 이전에는 적어도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 수는 있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산업화는 기계화를 낳았고,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빼앗았다. 그러면서 독점이 생겼다. 정치는 이 독점을 보호하고 극대화시켰다. 그래서 양극화는 정치결탁으로 경제독점이 제도적으로 만들어낸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악이다.


 이런 차원에서 한국사회의 가난의 문제는 일제강점, 미군점령, 한국전쟁이라는 강요된 역사에서 그 뿌리가 있으며 연원이 있다. 여기에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가 시작되면서 가난의 문제는 고착화되었다. 1980년대 이후는 건설독점재벌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희생당하고 강요당한 가난이 되었다. 외환위기(IMF)이후 가난한 사람들은 그 폭이 더 넓어졌으며, 실업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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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한겨레


 강요당하는 가난


 일반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고용, 주거, 교육, 의료, 환경, 복지 등에서 차별 받거나 소외되어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정상이라면 적어도 일(노동)할 수 있어야 되고, 일에서 얻은 것(돈)으로 사는 집(주거), 인간이 되기 위한 교육,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나 복지 등에서 보호되고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그 간극이 점점 더 벌어져 지금에 이르러 이것을 양극화라고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한국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은 주거고통이 심하다. 아무리 내 집 마련의 꿈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일할 수 없는 처지에서는 하늘의 별이다. 개발독재로부터 시작된 가난한 사람들의 살 자리는 끊임없이 철거되고 밀려나 최소한의 권리조차 무시되었다. 1970년에는 청계천 판자촌을 비롯해 서울 곳곳의 판자촌이 철거되었다. 1980년대에는 목동을 비롯해 사당동, 목동, 양평동, 신당동, 창신동, 상계동, 암사동, 오금동 등이 국제체육행사를 이유로 강제로 철거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독점건설기업을 살찌우기 위해서 가난한 산동네 사람들을 길거리로 내몬 것이다. 1990년대에는 금호동, 행당동을 비롯해 삼양동, 봉천동 등이 모두 철거되어 지금 서울에는 눈에 보이는 산동네가 외관상 없어지고 아파트 숲으로 변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일자리와 사는 자리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일시에 뽑혀버리는 참으로 비인간적인 행정의 조치와 건설기업의 탈취가 강제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교육으로부터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 중에는 자식들의 교육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자식들이 공부해서 가난의 반복과 대물림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과연 이런 희망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미 교육도 부자들의 자녀들이 독식하고 있지 않는가. 자연히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과 생활환경 그리고 복지 또한 열악하지 않겠는가.


 지난 시절 가난한 사람들 당사자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현실에 뛰어들어 구조적인 악에 저항하면서 자구노력을 빈민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전개하였다. 지금도 이 운동은 실업운동으로, 주거권 실현운동으로, 아동 청소년 공부방운동으로, 사회복지운동으로, 노숙자운동 등으로 전개되고 있다. 실업자를 조직하고, 철거민을 조직하고, 지역사회의 여러 모임과 대안을 마련하면서 구조적인 가난의 문제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집단으로 이주사업을 전개하여 스스로의 마을을 만들고, 서로의 기술을 조직하여 협동조합 방식의 생산조합을 만들고, 마을단위의 복지공동체를 만들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인간은 명예나 출세나 부자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참 인간이 되어가기 위해서 생명을 가진 것이고, 이 생명은 참 생명을 원한다. 참 인간이 무엇일까. 인간의 삶의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나 공동체가 있다면 참 인간이 되는데 더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삶의 조건으로서의 일자리, 살 자리가 구조적으로 막혀 있는 가난한 사람들은 자유로워야할 삶의 조건에 매여 한 치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고, 오히려 사회는 메아리 없는 양극화해소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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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연합뉴스


 파이를 통한 해결 논리는 허구

 우리사회의 누구나 ‘가난한 삶’을 향해 살 수 있어야 한다. 무조건 돈 벌어서 쓰고 보자는 심사는 자연을 파괴할 뿐 아니라 자원을 고갈시키고 인간을 돈으로밖에 취급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위해서 조심스럽게 쓰고 사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며 참 인간이 되는 길이면서 참 생명을 가지는 것이다. 이 같은 삶이 지금 우리사회의 ‘가난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이다. 가난의 문제는 가난한 삶을 통해서 치유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파이’를 키워서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양극화해소 논리는 그래서 허구다. 가난한 삶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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