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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호] 열린 행형이 사회 안전의 지름길 (이지연/ 인권연대 인턴활동가)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29 11:33
조회
365

이지연/ 인권연대 인턴활동가


 대부분의 행형법 학자들은 행형의 목적을 재사회화로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 교정 현장에서는 재사회화와 무관한 격리 위주 교정이 지속되고 있다. 현대적 의미의 재사회화란 자유박탈의 해악을 최소화하여 ‘탈사회화’(=감옥화)를 방지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한 ‘착한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를 벗어나 강제를 배제한 교육과 개방 행형의 확대를 도모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교정 시설의 존재 이유가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다가서게 한다는 것이다.


 지난 10일에는 외부 감시의 일환으로 일선 교정 행정에 참여하는 시민활동가들이 개방형 행형의 실태를 파악하고 폐쇄적인 행형 제도의 문제점을 짚기 위해 국내 유일의 개방교도소인 천안개방교도소를 견학하였다. 올 초 서울구치소 여성재소자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각 교도소 및 구치소에 만들어진 성폭력 감시단, 교정시민옴부즈만, 교정행정자문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구태의연한 폐쇄적 행형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교도소내 인권침해는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개방적인 공간 배치와 자율 활동 보장


 1988년 개청 이래 한국에서 유일한 개방시설인 천안개방교도소는 2002년부터 과실범 전담 교도소로 기능이 전환되어 유지되고 있다. 주로 가석방이 가능한 초범이나 3범 이하의 과실범을 300여명 이하의 규모로 수용하고 있다.


 개방교도소의 교정은 크게 4단계로 구분된다. 시설적응과정에 해당하는 1단계는 타 교도소 수감 생활을 하다 개방교도소로 이감되어온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주로 개방 행형에 대한 이해와 시설 환경 적응을 위한 교육으로 이뤄져 있다. 자립훈련과정과 개방처우과정으로 병행되는 2, 3단계는 구내 시설에서의 작업과 교도소에 들어온 외부 기업체에서 작업 활동을 하게 된다. 현재 천안개방교도소에는 컴퓨터와 자동차 정비 교육반 등이 주요 실무 교육/작업으로 진행되며, 3개의 지역 기업이 교도소에 입주해 있다. 마지막으로 제4단계 사회적응과정은 가석방 예정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데 외부 기업체로 출퇴근을 하면서 직접적인 사회적응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4단계의 과정을 거친 뒤 수용자들은 출소를 한다.


 예상과는 달리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천안개방교도소에는 풍물패 등의 간단한 동아리 활동이나 종교 활동 이외에 재소자들에 대한 별도의 재사회화 교육 프로그램이 극히 드물게 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재소자들의 대부분이 단기 징역형인 교통 과실범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통안전 등에 대한 실무 차원의 교육이 중요하게 행해지고 있으며, 이것도 주로 1단계 시설적응 과정에 있는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교도소 건물의 구성을 살펴보면 개방 교도소의 특징을 쉽게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교도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높은 담이 없다. 낮은 울타리가 건물의 경계를 표시해 주고 있을 뿐이다. 감시탑도 없으며 관내를 지키는 무장 교도관 역시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외부에 노출된 길을 따라 한쪽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사동들은 각각 협동관, 자립관, 희망관, 근면관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으며, 대략 1~4단계별 재소자들이 분류 처우에 맞게 수용되고 있다.


 신입 재소자들이 잠깐 거주하는 침상 거실을 제외한 일반 사방에는 보통 12명이 수용될 수 있는 이층침대가 놓여져 있다. 각각의 침대에는 일인용 관물대가 배정돼 있으며, 취침 시 완전 소등이 된 상태에서도 침대에 달린 야간 조명등을 개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모든 사방의 창문에는 철창이 없다. 야간에도 사동의 입구만 폐쇄될 뿐, 건물 내에서는 불침번의 관리하에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사방의 문을 닫을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일반교도소에서는 화장실이 각 사방에 속해 있어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지만, 개방교도소에는 화장실이 복도에 별도로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각 사방에는 케이블 방송까지 볼 수 있는 텔레비전이 설치 돼 있어, 일과 시간외에 자유롭게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다. 채널 선택권도 재소자들에게 있다. 각 건물의 층마다 복도 끝에 휴게실이 별도로 마련돼 있어, 재소자들은 일과 시간외에 그곳에서 독서를 하거나 비디오 시청 등도 할 수 있다.


 이처럼 개방교도소에는 침실, 화장실, 세면실, 휴게실 등이 각각의 용도에 맞게 별도로 있기 때문에 겉으로 보아서는 대학의 기숙사나 일반 연수 시설 등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식사 또한 별도로 마련된 식당에서 자율배식으로 행해진다. 화장실이 사방 밖에 있으니 사방의 문을 폐쇄할 수 없고, 문을 잠글 필요가 없으니 다른 교도소처럼 굳이 식구통을 이용한 배식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역시 공간 배치의 문제다. 현재 일반 교도소는 사방안에 화장실이 있고, 그곳에서 세면을 하고 또 그 옆에서 식구통으로 배식받은 밥을 먹는 것을 너무도 당연한 제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 이러한 제도만이 교도소의 보안을 책임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간주하며, 이러한 형식이 조금이라도 변경되면, 당장 교도소의 보안이 무너질 것이라고 아우성이다. 그렇기에 재소자의 인권 처우에는 눈길이 갈 여지가 없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화장실을 밖으로 빼고, 식사를 식당에서 하는 것만으로도 재소자들의 비인간적인 처우는 상당부분 개선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보안을 해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높은 담이나 무장 경비교도대가 없는 천안개방교도소에서도 보안상의 불편함을 크게 느끼지 않는데, 뾰족한 쇠철망이 쳐진 교도소 내외정문을 비롯하여 무장한 경비 교도대가 상주하고 각 사동마다 두꺼운 철창을 사용하는 일반 교도소에서 화장실을 자유롭게 오간다고 해서 탈옥 같은 사고가 생길 리 만무하다.


 개방교도소의 또 다른 특징은 말 그대로 ‘개방적인 사회화’ 방식이다. 재소자들은 횟수에 제한 없이 자유롭게 면회 할 수 있다. 면회 방식도 다르다. 타 교도소에서는 ‘특별접견’이라 불릴 방식이 개방교도소에서는 일반화 되어 있다. 철창 없이 테이블에 함께 앉는 직접 대면이 가능하며, 면회 내용도 재소자가 직접 간단하게 기입할 뿐, 접견실 관리 교도관의 통제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아마도 이러한 자유로운 면회가 개방형 행형을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을 비롯한 일반 사회인들과의 자유롭고 빈번한 직접 대면이 재사회화를 가능케 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또한 개방교도소에서는 귀휴제도의 활성화가 이뤄져 가족의 경조사 발생시 외출, 외박 제도를 적극 실현하고 있다. 자유로운 전화 통화는 기본이다.


 징벌방에 대한 견학도 이루어졌는데 실제로 징벌이 확정되면 타 교도소로 이송당하기 때문에 재소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징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앞서, 재소자들 스스로가 징벌 사유가 되는 행위를 하면 개방교도소를 떠나야 한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사건이나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한다. 징벌에 대한 역발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행형은 격리 상태에서 갖가지 금지 규칙을 정해 놓고 이를 넘어서면 징벌 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비인간적인 처우에서 더욱더 비인간적인 징벌을 가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구조다. 그러나 개방된 처우를 일반 기준으로 설정하고, 징벌 사유 발생 시 그런 개방 처우의 일정 부분에 제약을 가한다면 징벌에 대한 소내의 많은 시비와 인권침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과밀수용 해결하여 개방형을 확대해야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교정 선진국에서는 천안개방교도소 식의 행형 제도가 특수 경우가 아니라 일반적인 제도로 존재한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교정의 궁극적 목적이 범죄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다가서는 것을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에 다가서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회 그 자체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단지, 죄에 대한 벌로써 약간의 자유를 박탈할 뿐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범죄자의 처우 문제에 대한 인식이 이와는 크게 다른 것 같다. 즉, 범죄자이기에 마땅히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하고, 범죄자이기에 그들에 대한 수많은 인권침해가 정당화된다. 범죄 및 범죄자에 대한 체계적이며 과학적인 이해에 기반하기 보다는 다분히 감정적으로 인과응보식 대응만이 전개된다. 문제는, 이러한 한국의 행형 방식이 과연 재범의 우려를 줄이고, 범죄수를 줄여 사회를 안전하게 하는데 기여하는가이다. 탈사회화(=감옥화) 전문 시설인 현재의 교정 환경에서는 크게 기대를 하지 못할 것 같다.


 현장의 교정직 종사자들은 비용과 인력의 한계를 들어 개방형 교도소의 확대에 회의적이다. 그러나 사실 교정 환경 개선을 위한 가장 큰 문제는 과밀수용이다. 그렇다보니, 재소자에 대한 인간적 처우보다는 항상 보안이 최우선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과밀수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속 남발의 폐단을 없애 구속수감자 수를 줄이고, 가석방 제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려 전체 재소자 수를 획기적으로 줄인 후, 다른 일반 교도소를 최소한 천안 형태의 개방교도소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 등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장기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꼭 실현해야 할 과제이기에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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