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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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어디에서나 어른들이 젤 문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1-05-26 14:20
조회
580

이회림/ 00경찰서


 "담배 한 대 하러 가자~"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21년차 경찰 선배가 말씀하십니다. 비흡연자인 저에게 백해무익한 담배를 강권하는 50대 아재일까요? 알고 보면 답답한 사무실보다는 하늘도 보이는 곳에서 허심탄회하게 대화 좀 하자는 그런 시그널이지요.


 왼손엔 달달한 믹스커피, 오른손엔 전자담배 아니고 진짜 담배, 건강에 해로울 수밖에 없는 두 가지를 양손에 야무지게 챙겨 들고는 씽긋 미소 짓는 선배를 따라 오늘도 야외 흡연실로 따라갑니다.


 "이 경사, 니 요새 안 디나(안 피곤해)? 살살해라 살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데이~~"


 선배와 저 그리고 저의 후배, 우리 셋은 지난 11월에 신설한 경찰서에 학교전담경찰관으로 발령을 받아 51개 초중고등학교를 17개씩을 맡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1회 이상 방문해야 하는 A등급 학교, 한 달에 2회 이상 방문이 요구되는 B등급 그리고 한 달에 1회 이상 방문하게 되어있는 C등급 학교로 나누어져 있지요. 이렇게 A, B, C로 등급을 나누는 기준은 이전 해까지 집계된 각 학교의 학교폭력 범죄 발생 현황과 상관관계에 있습니다.


 A등급 학교인 H고에서 최근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H고 1학년 여학생 지민(가명)이는 평소 교내에서 일진이라고 불리는 아이들 무리가 12명 있는 것이 늘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12명 중의 우두머리인 해룡이(가명)가 “ㅋㅋㅇ 단체톡방”에서 특수반 장애학생 남준(가명)에게 욕설을 하며 놀리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러했다고 합니다.


 그날 밤 지민이는 단체톡방 안에서 남준이를 도와주지 못한 미안함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고민 끝에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모든 일을 알렸다고 합니다. 담임 선생님은 해룡이를 불러 주의를 주고, 문제의 그 단체톡방을 해체하도록 조치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도 해룡이를 비롯한 12명의 일진은 활개 치고 다녔고, 선생님들의 시선을 피해 여전히 아이들을 괴롭혔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gettyimage


 일진들의 비행이 점점 교묘해져 선생님들이 관리할 수 있는 영역 밖으로 치닫고 있다고 느낀 지민이는, 어느 토요일 오후, 용기를 내 동네 지구대로 찾아갑니다. 지민이의 호소를 들은 순찰 요원분들은 스쿨폴리스인 저에게 이 사실을 전달해주었고, 저는 지민이에게 전화를 걸어 간단히 1차 전화 면담을 진행하였습니다. 월요일 방과 후, 지민이를 만나 그간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고 화요일에는 H고로 찾아갔습니다. H고 교감 선생님은 늘 저에게 “정말 열심이시네요, 열정이 대단하시네요~” 하시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던 분이라 마음 편히 신고 사실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12명 일진의 존재에 대해 매우 놀라워하시며 전혀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한 달 정도 열심히 파고든 노력 끝에 피해 학생 4명과 목격한 학생 2명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로부터 놀랄만한 말을 듣게 됩니다.


 교감 선생님이 전교생들을 다 모아놓고 “애들아~ 앞으로 학교폭력 등 문제가 생기면 스쿨폴리스에게는 말하지 말고 선생님한테 먼저 말하도록 하자~ 학교 위신 깍이니까”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교감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 이해가 안 된다며 저에게 알린 것이었지요. 저는 이 말을 듣고 나서부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이날 이후로부터 교감 선생님 등 학교 측에는 제가 수집한 정보를 전부 다 알리지 않고 일부만 선별해서 알렸습니다. 학교 측이 가해 학생들의 편에 서 있는 것은 결코 아니겠으나 교감 선생님의 “위신 깎인다”라는 그 한마디에 저와 피해 학생들은 학교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H고를 방문해 교감 선생님을 뵐 때마다 ‘열정적이라 보기 좋습니다’ 와 ‘위신 깎이니까 스쿨폴리스에게 말하지 말아라’ 두 마디가 교감 선생님의 얼굴 좌, 우 말풍선 안에 들어있는 듯했습니다.


 이후, H고 12명 일진사건 뿐만 아니라 B, C등급 학교에서도 ㅋㅋㅇ톡 개정 갈취 사건 등 연이어 심각한 수준의 학교폭력이 발생하였습니다.


 "안 디나? 살살해래이~~"


 담배도 안 피우는 저를 굳이 하늘이 보이는 야외 흡연 공간으로 불러 내 이렇게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던 선배님께 이렇게 대답합니다.


 “선배님~ 저 이제 7개월 차 스쿨폴리스이지만 확실히 알게 된 거 하나 있어요. 어디에서나 어른들이 제일 문제라는 거네요~ 그 교감선생님처럼요”
 “그래 맞데이~ 학교폭력도 가해 학생들 가정환경 보면 답 나온다 아이가~~ 가해 학생들도 어찌 보면 다 피해자다, 피해자!”


 허허로운 담배 연기를 허공에 확 뿜으시며 이렇게 한마디 하시는 선배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감 선생님 같은 사람도 있고 이런 선배도 있고 뭐 그런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