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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발 말똥게는 어떻게 되었을까(김아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9-09 15:52
조회
144

김아현/ 인권연대 간사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제주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닷가에는 붉은발 말똥게들이 살고 있었다. 다른 생물들도 많이 살았지만 유독 그 ‘게’가 주목받은 이유는 그들이 처해있던 위기 때문이었다. 붉은발 말똥게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가까운 장래에 멸종 위기에 처할 우려가 있는 207종의 동식물이 여기에 해당한다. 삵이나 맹꽁이처럼, 듣기로는 친근하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목격된 적이 별로 없는 동물들도 2급의 멸종위기종이다.


 멸종위기종의 지정과 연구는 국가와 국제기구 모두를 통들어 이뤄지는데 우리나라는 환경부가 소관부처고 국제적으로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이라는 기구가 가장 강력한 공신력을 갖는다. 멸종위기종 지정은 당연히, 전문가 집단의 체계적인 연구와 논의를 거쳐 이뤄진다.


 구럼비의 붉은발 말똥게는 국가(환경부)가 전문가의 식견을 빌어 지정한 멸종위기종이었지만, 결국 그들에 의해 강제이주를 당했다. 해군기지 공사를 하려면 구럼비 바위를 발파해야하는데 그 게의 희소가치가 걸림돌이었기 때문이었다. 갯가 바위 위에서 살아야 하는 게를 통발로 포획해, 서귀포시 시내에 있는 큰 절인 약천사 앞으로 이주시킨다는 것이, 국가의 용역을 받은 소위 전문가 집단이 내 놓은 대안이었다.


 강제이주를 당하기도 전에, 한낮의 열기로 달궈진 바위 위 통발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말라 죽어있는 붉은발 말똥게들의 사체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광경은 너무나 강렬하고 기이해서,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통발 안에서 어렵게 살아남아 강제이주 당하는 데 성공한 붉은발 말똥게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사진 출처 - 한겨레


 어떤 전문가들은 이처럼, 용역 발주자의 요구에 맞춰, 합리를 벗어난 황당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앞서 예로 든 경우에, 나와 동료들은 붉은발 말똥게의 강제 이주를 권고한 전문가들을 지식범죄자라고 여겼다. 강제이주 권고가 범죄는 아니지만 심정이 그랬다.


 그런데 지금, 고쳐 생각하면, 그 전문가들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사용한 재료가 과연 ‘지식’인가 싶은 것이다. 전문성을 올곧게 사용했다면 그런 결론이 나올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성이나 지성, 전문성이 아니라 다른 기제를 사용해 그런 결론을 도출했을 것이다(그것이 계산이나 일신에 관한 욕심, 굴종 같은 것이 아니길 바란다).


 어쨌거나 그 전문가들은 지금도 존중받으며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전문가는 대체로 존중받는다. 자주 호명당하고, 존경을 받기도 한다. 황당한 주장도 마이크를 가진 전문가가 하면 사회에 유통될 자격을 얻는다.


 그런데 전문성에도 계급이 있다. 어렸을 때 공부를 아주 잘 해야 얻을 가능성이 높은 어떤 분야, 이를테면 법률이나 의료 분야의 전문가가 지니는 힘은, 궁중복식이나 김치유산균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전문가에 비할 바 없이 크고 강하다. 게다가 성공적인 입시를 통해 한 번 얻은 전문가 자격은 놀이공원 프리패스처럼 기능한다. 이를테면 정치평론으로 유명해진 변호사가 그의 전문이 아닌 다른 분야에도 진입장벽 없이 쉽게 진출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전문의가 토크쇼나 관찰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유를 당췌 이해할 수 없지만 모두 실제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여기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기회가 없었다. ‘저 자격의 기원은 무엇인가’를 궁금해 했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어려서 공부를 잘 했고, 성적이 좋았고, 상위권 대학의 좋은 과에 진학해서 얻기 시작한 호감과 명성과 자격이 대체 어디까지 힘을 발휘해도 좋은 것인지에 대해 지금부터라도 따져물어야 한다. 오래전 성적표가 평생 가는 상징자본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박근혜 정부 때까지는 필요했던 공공병원과 공공의료인력이 단지 정권만 바뀌었다고 엄청난 악(惡)이 되는 극적인 변질은, 근거가 없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진이라면 전문가 생태계 피라미드의 최상위를 차지하는 계층이다. 최고의 전문가집단이 스스로 자기 결론을 뒤집는 이 촌극에 많은 이들이 상처받았다. 평범한 이들의 말 바꾸기는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고 어떤 경우에는 법으로도 처벌받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의 말 바꾸기는 다른 대접을 받았다. 그 때문에 누군가 목숨을 잃고 고통 받을 때조차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문득 다시, 궁금해진다. 사실은 늘 궁금했다. 갯가 바위 아닌 곳으로 강제로 옮겨진 붉은발 말똥게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