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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스라엘 합병안에 대한 팔레스타인 활동가의 한숨과 용기(이동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6-24 15:01
조회
970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2019년에 다시 만난 팔레스타인 활동가 라쉬드는 많이 피곤해보였고 주름은 한층 깊어졌다. 그는 ‘요르단계곡’ 마을의 농부이면서 이스라엘의 부당한 인권침해 사실을 알리는 ‘요르단계곡연대(Jordan Valley Solidarity) 소속 활동가이기도 하다. 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팔레스타인을 방문한 한국의 참가단에게 ‘요르단계곡’ 주민들이 겪는 부당한 현실에 대해 열성적으로 이야기하던 그가 저녁 즈음에 필자에게 짧게 하소연했다. “셀림(필자의 현지이름), 요즘 정말 힘들어. (한숨) 갈수록 어려워져.”


 ‘요르단계곡(Jordan Valley)’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요르단 국경이 위치한 지역으로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요르단강과 지구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사해(Dead Sea)로 이어지는 지역을 일컫는다. 이 지역은 수천 년 동안 주변국가의 곡창지대(Food basket) 역할을 하며 팔레스타인 입장에서 보면 서안지구의 30%를 차지할 만큼 방대한 지역이고 6만 5천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농업과 축산업에 종사하며 삶을 일구어 내는 터전이다. 하지만 1967년 3차 중동전쟁이후 이스라엘은 요르단 계곡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전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였다. 특히 이 지역은 대부분 군사지역으로 설정이 되어 사람들의 이동제한, 수자원 이용 제한, 토지 몰수 등 수십년동안 피해가 이어져 오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요르단계곡’이 또 한차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20년 1월, 이른바 ‘세기의 협상’이라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평화안이 공개되자 이스라엘은 환호했고 팔레스타인은 절망했다. 평화안의 주요골자는 ①서안지구 불법정착촌의 주권인정 ②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 ③요르단계곡을 이스라엘로 편입 ④팔레스타인에 500억 달러 금융제공 ⑤이스라엘 사막지역 팔레스타인 대체부지 제공 등이다. 완벽하게 이스라엘 우파쪽에서 수십 년 동안 추진하던 팔레스타인 합병계획을 뒷받침하는 평화안인 동시에 팔레스타인을 더욱 쪼개고 분리시키는 21세기판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이다.



요르단계곡 합병시위에 참여한 팔레스타인 여성들과 주민들
사진 출처 - 요르단계곡연대 JVS 홈페이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2019년부터 총선공약으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정착촌과 요르단 계곡 지역을 이스라엘에 합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최근 기사에 따르면 2020년 7월부터 이 합병계획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의 계획이 엄연히 국제법 위반이고 그동안 국제사회가 합의했던 원칙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 16일 유엔의 47명 인권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서안)합병은 전쟁과 경제 황폐화, 정치적 불안, 조직적 인권유린 등을 야기할 것이고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다”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역시 강력한 반대의 의견을 수차례 발표하며, ‘합병이 진행될 경우 그동안 이스라엘과 맺은 모든 협상을 무효로 돌리겠다’고 선언하지만 현실적인 대응방법이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합병계획에 맞서 싸우는 이들은 팔레스타인 풀뿌리 조직들과 그 지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다. 그들은 수십 년째 이스라엘 군대와 경찰에 저항하며 스스로의 인권과 평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요르단계곡연대’ 단체는 “We will fight to the end(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외치며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그리고 7월 1일 국제적인 캠페인 “The Day of Rage on 1st July(7월 1일 분노의 날)”을 준비하고 있다.


 현지에서 긴박한 메일과 소식을 접하면서 다시 라쉬드의 한숨이 떠올랐다.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던 활동가가 순간 내비친 피곤함의 단면. 당시 그에게 힘이 되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해외의 활동가에게 연락하고 sns를 통해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삶의 고단함속에서도 저항의 불씨는 아이러니하게 평화를 외치는 권력자들에 의해 계속 타오르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안보와 평화를 외치는 만큼 그 지역의 평화는 깨져나가고 사람들의 생존은 위협받는 현실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