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상상 (허창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6:24
조회
271

허창영/ 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


우리사회의 여러 난맥상을 푸는데 중요하게 제시되고 있는 것이 바로 ‘시민성 회복’이다. 여기서의 시민성은 윤리의 문제라기보다는 권리의식에 기초해 책임과 참여하는 자로서의 시민의 자세를 의미한다. 시민성을 상실한 시민들의 사회는 결국 ‘복종하는 국민’들만 존재하게 되고, 역으로 국가는 더욱 굳건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이런 결핍으로 인해 도전보다는 안존을, 공적 이익보다는 사적 이익에 집착하는 개인들을 양산한다고 진단한다. 우리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획득한 이후 시민성을 갖추도록 하는데 소홀했다는 반성에서 나온 얘기이다.


이러한 지적에서 교육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교육 역시 성장하는 세대가 시민성을 갖도록 하기 위한 일정한 역할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궁극적으로는 ‘시민으로의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답에는 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다시 ‘어떻게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할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지금 한국사회의 교육은 궁색하기 그지없다.


시민으로의 성장은 읽고, 듣고, 쓰는 것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다양한 경험과 도전, 비판과 성찰, 대화와 토론, 공간에 대한 경계 허물기와 넘나들기 등 복합적인 상호 소통과 교류로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 공간, 관계에 갇힌 한국사회의 교육은 시민으로의 성장보다는 복종하는 국민을 강요하고 있다. 책상에 앉아 정답을 찾는 데만 급급한 우리의 교육에서 시민으로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새로운 교육체제가 논의되고 있는 것 역시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내용적 변화’만으로는 새로운 교육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리 새로운 내용을 가지고 접근한다고 해도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다시 얘기하면 교육의 전환은 틀을 뒤집거나 판을 새로 짜는 사고의 전환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고민 속에서 얘기되고 있는 것이 바로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상상이자 시도이다. 교육을 위해서는 온 마을이, 또는 도시 전체가 교육의 공간 또는 교육자로 서야 한다는 얘기이다.


사실 ‘마을이 학교다’라는 말은 이미 상식의 언어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아직도 학교 안에 굳게 갇혀 있다. 설령 지역사회에 문을 두드린다고 해도 지역사회 역시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교육은 그저 학교 또는 교육당국의 문제로만 치부되고 있고, 마을, 지역, 도시는 외면하고 있는 형국이다. 학교 안에 갇힌 교육을 지역을 향해 열고, 도시 안에서 교육받을 권리가 올바르게 실현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기만 하다. 이런 왜곡된 구조 속에서 아이들이 시민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5월 16일 열린 <2015 세계인권도시포럼> ‘도시와 어린이·청소년 회의’가 ‘도시와 교육의 만남 :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상상’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의 반영이었다. 교육을 학교 안에 가두지 말고 도시와 교육의 만남을, 마을학교 또는 마을교육공동체, 혹은 교육적 도시에 대한 꿈을 꾸어 보자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야콥 헥트는 위로부터 전달받아 아래로 전달하는 ‘피라미드식 교육’을 벗어나 ‘모든 학생이 선생’이라는 전제 아래 서로의 장점들이 상호 소통하는 ‘네트워크식 교육’으로의 전환을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학교라는 울타리는 무의미해지고 학습공동체 또는 ‘커다란 학교’로서의 도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기관, 교육기관, 지역사회, 시민 등의 네트워크가 촘촘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후스토 멘데즈는 교육이 어린이청소년과 인권의 맥락에서 기획되어야 하며, 교육과 도시의 만남을 통해 자율성에 기초한 책임 있는 시민, 참여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교육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교육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안교육은 삶을 바꾸지만, 공교육은 국가를 바꾼다.”는 기조였다.


화두는 던져졌고, 방향에 대한 공감도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막막하다. 회의에 참가했던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올해부터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이날 회의에 패널로 참석했던 광주시청 참여혁신단장 역시 적극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포럼이 끝나고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보자는 의사도 타진해왔다. 회의에 참석했던 시민사회 역시 의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나가기로 했다.


교육과 도시가 만나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이다. 학생들이 닫힌 교문을 열고 지역으로 쏟아져 나올 수 있도록, 도시와 마을은 이러한 학생들에게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할 과제가 남았다. 비록 지금은 막연하지만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될 일이다. 아이들이 시민으로 성장하고, 시민으로 살도록 하기 위한 전환의 길목에 우리는 함께 서 있다.


※ 이 글은 ‘광주교육정책연구소’의 소식지 <교육정책 공감톡톡> 2015년 7월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이 글은 2015년 7월 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