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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언제 끝나려나 - 윤요왕/ 강원도 화천의 농사꾼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5:03
조회
408

윤요왕/ 강원도 춘천의 농사꾼



지난 2주일간 농촌에서는 예취기(풀깍는 기계) 소리가 온 동네와 인근 야산을 뒤덮었다. 그 하나는 추수를 앞두고 마지막이 될 논두렁을 깎는 소리요 또 하나는 추석을 앞두고 조상의 묘소를 깎는 소리이다.

거기에 하나 더! 마을 부역으로 동네 길 옆의 풀 깎는 소리가 더 해진다. 다름 아닌 추석 때 귀향하는 이들을 위한 동네길 풀깍기 행사인 것이다. 70, 80세 노인들이 아침부터 나와 동네 안길들을 정리하고 뭐 대단한 일이라도 한 냥 흐믓한 미소를 띄우며 신작로를 바라다본다. 아마도 그런 노인들의 수고도 모른 채 도시의 자녀들은 자가용으로 휭하니 지나올 게 뻔한데도 말이다. 올해도 농촌의 노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이것저것 챙겨줄 것 준비하면서 짝사랑의 마음으로 추석을 맞이할 것이다.

어쩌면 농촌은 도시를 향해 짝사랑만하고 있는 것 같다. 농촌의 부모들이 도시에 사는 자녀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렇고, 도시민들의 소비패턴에 농민들의 생계가 달려 있으니 그렇고... 누가 그랬던가?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있다고. 굳이 도.농만을 비교해 놓고 보면 세상은 도시를 중심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어두운 곳을 밝히는 복지문제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우리 동네 아이들을 위해 시작한 방과 후 공부방이 3년 만에 자리를 잡아 간다. 두 명의 전담교사와 3명의 강사를 두고 동네 마을회관을 임대해 공간도 확보했다. 일 벌리기 좋아하는 동네 청년들이 조금 더 욕심을 내자고 한다. 그 이름도 거창한 ‘고탄지역 농촌복지센타’!!! 5개리 마을 노인 분들을 위한 복지서비스와 외국인주부 한글교실, 여성농업인을 위한 강좌(평등부부 교육..)사업 등 종합적인 농촌복지사업. 일이 커져 버렸다. 밀면 밀리는 우유부단한 나로서는 다음날부터 여기저기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일단 ‘청년 자원봉사단’을 조직해 정기적으로 시내병원을 다니시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 분들을 차로 모셔드리는 교통봉사를 시작했다. 중학교 선생님인 동네 형수님이 외국인주부 한글교실을 시작했고, 10월에는 우리 동네 초등학교에서 춘천시내 5개 단체와 연합 축제(작은 마을 큰잔치)도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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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필자



일손이 부족하다. 노인복지를 담당할 일꾼은 동네 주민 중에 한 분을 내정해 두었다. 그런데 이게 만만치가 않다. 65세 이상 노인 분들의 가정방문을 통한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각각의 맞춤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인데 인건비 마련이 문제다. 시내의 여러 복지단체를 알아보았더니 그 중 한군데에서 그 쪽으로 취직하는 것으로 해서 인건비를 지급할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그 단체 노인복지 팀장과의 면담에서 우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시에 ‘기초생활 수급자’로 등록되어 있는 노인 분들만 가능하며, 매일매일 업무일지를 써야 하는데 방문해서 해야 할 일이 12가지로 정해져 있단다. 일 안하고 놀 수 있으니 불시에 감시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다른 건 그렇다 하더라도, 농촌 노인들이 여러 가지 서류를 준비해 시에 등록한 분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 정해진 12가지 외에 다른 일은 쳐주지도 않는다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 관장님 말씀이 오랜 기간 동안 다듬어진 나름대로의 규칙이라 시나 정부의 지적사항이 나오면 단체도 힘들어진다고 한다.

가만히 살펴보니 도시 중심의 복지정책이었다.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져 ‘농촌복지’에 대한 자료를 뒤져보니 여러 논문들에서 그런 얘기가 나온다. ‘도시 중심의 복지정책...’ 한 시간을 걸어서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가고, 또 한 시간을 버스타고 병원에 가고, 또 한 시간을 기다려 진료를 받고, 되풀이해서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농촌 노인들의 심정을 정책입안자들은 알기나 할까?

올해 날씨 무지하게도 속 썩였다. 올해 같으면 농사지도를 새로 써야 할 판이라고들 한다. 고추는 안 말라 물러 썩어가고, 과수는 잦은 비에 맛도 없는데 거기다 낙과까지 생기고 벼도 잎마름병에 낟알도 굵지 않다. 그래도 양옆의 너른 뜰은 황금빛 손을 흔들며 추석 귀향 객들을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황금빛 논이 잡초로만 무성한 농촌이 되지 않도록 농촌의 짝사랑을 이제는 받아줄 때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