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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은 이런 곳이었지(이동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12-14 10:00
조회
330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내심 팔레스타인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2005년 팔레스타인에 처음 방문한 이후 짧게는 2주, 길게는 몇 달간 체류한 경험도 있고, 아디라는 단체를 하면서 팔레스타인 사업을 추진하였기에 나름 현지의 경험과 인프라가 적지 않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최근 팔레스타인 친구 K의 소식을 듣고 이 모든 것이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친구 K와의 인연의 시작은 팔레스타인을 처음 방문했던 2005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K는 대학 졸업 후 해외 대학의 장학생으로 선발될 정도로 유능했지만, 이스라엘의 신원 조회에 걸려 유학을 포기해야 했던 지역 인재였다. 그해 팔레스타인 옆 나라인 요르단에서 아랍어를 공부했던 나와 한국의 활동가, 다큐멘터리 감독은 2달간 팔레스타인 소식을 기록하는 촬영을 기획했는데 이때 도움을 주었던 이가 K였다. 국내 지인의 소개로 연결된 K는 일면식도 없는 3인의 한국인들이 팔레스타인 소식을 알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집도 내어주며 2달간의 일정들을 마련해 주었다. 덕분에 현지 일정은 순조로웠고, 지금은 들어갈 수도 없는 가자 지구도 방문할 수 있었다. 그 이후 K와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2014년 여름 2달간 팔레스타인 나블루스에서 체류할 때에도 K는 힘들 때 도움을 주는 해결사였고, 이후 2016년부터 아디에서 팔레스타인 관련 다양한 조사 활동, 평화여행, 여성지원 사업을 할 때도 K는 내가 가장 먼저 연락하고 조언을 구하는 친구였다.


반면 K와의 소통이 원활하지만은 않았다. 이는 K뿐만 아니라 다른 팔레스타인 친구들과 소통할 때도 생기는 일인데, 약속했던 일정이 취소되거나 연락이 끊기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연락이 닿을 때까지 집요하게 연락도 했지만, 활동 경험이 쌓이면서 현지의 활동 문화가 한국과 많이 다르고 현지 통신시설이 열악하기에 나중에는 그러려니 했다. 올해 2022년 10월 현지 방문 때도 그러했다. 방문 첫날 라말라에서 K와 반가운 재회를 했고, K에게 아디의 여성 지원센터 졸업식 참석을 요청했다. K가 거주하는 라말라와 여성 지원센터가 위치한 나블루스는 차로 약 1시간의 거리였기에 K는 흔쾌히 졸업식 참석에 응했고, 그때 K와 K 가족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주기로 했다. 이후 나블루스에서 여성지원센터의 사업을 모니터링하는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 이스라엘은 나블루스를 봉쇄했고 졸업식은 연기됐다.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K에게 연락을 했는데, 닿지 않았고 문자를 남겨도 답신이 없었다. 그러려니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국으로의 귀국 시간이 다가오면서 조급한 마음에 계속 연락을 해봐도 응답은 없었다. 결국 K와 K 가족에게 줄 선물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또 나름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K의 소식은 잊혔다.



사진 1. 2022년 10월 14일, 팔레스타인 나블루스 외곽 베이트다잔 이스라엘 검문소, 나블루스 봉쇄로 검문소 통과가 강화되자 길게 늘어선 팔레스타인 차량들_사진 출처 김양균 ZDNet 기자


한국으로 돌아온 지 2달이 조금 안된 12월 9일, 나는 K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친구여, 잘 지내지? 나는 2달간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됐고, 어제 풀려났어” 그의 황당한 문자에 바로 연락을 취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내 다급한 질문에 그는 “너와 만난 후 그다음 날, 나는 예루살렘에 업무차 방문했고 돌아오는 길에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체포됐어. 그리고 정확히 2달 후인 어젯밤 12시에 풀려났어. 체포될 때 어떤 혐의인지 알려주지 않았고, 수감 기간 동안에도 어떤 심문이나 조사를 받지 않았어. 재판도 없었어.” 그의 황당한 답변에 궁금증은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불현듯 ‘아. 행정구금이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스라엘에는 영장이나 형사소송 절차 없이 임의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짧게는 2주 길게는 수년 동안 구금하는 ‘행정구금’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K가 이 경우에 해당됐다. 이스라엘 인권단체인 하모케드(HaMoked)의 지난 10월 2일 발표에 따르면 올해에만 이스라엘은 행정구금으로 팔레스타인 주민 1500명을 체포했고, 현재도 800명이 재판 없이 구금되었으며, 이는 2008년 이후 최대 숫자라고 하였다.


K는 “그래도 다행인 게 (구금됐을 때)고문을 받지는 않았어. 감사할 일이지. 그리고 저번에 연락 못 하고 졸업식에 못 가서 미안해.”라고 했다. 나 역시 “그때 가져갔던 너와 너의 가족 선물은 (너의 허락 없이) 주변에 나눠줬어. 다음에 갈 때 선물 두 배로 줄게. 아내분과 아이들에게 꼭 전해줘. 나도 미안해”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내심 연락이 닿지 않아 원망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점령 상태인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깨달으며 ‘팔레스타인이 이런 곳이지. 상식과 이성이 통하지 않는 것이 점령이었지’하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의 자만을 반성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