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정한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2-11-09 10:16
조회
584

정한별 / 사회복지사


둘째가 첫째의 발을 밟았다.


", 미안해 해야지! 미안해 해!!"


"미안......"


 

이번엔 첫째가 둘째의 그림을 망가뜨렸다.


"....언니.....으앙... 언니가 망가뜨렸어"


첫째는 변명을 늘어놓고는 엄마의 핀잔에 결국 사과를 한다.


 

이번엔 셋째가 둘째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 미안해 해... 미안해 해!!"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는 셋째는 웃으며 도망가 버린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


첫째는 둘째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자신이 사과를 요구하는 경우, 둘째는 사과를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이에 반해, 둘째는 자신이 사과를 받아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첫째에게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사과를 요구할 수 없다. 둘째는 부모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행동을 한다. 첫째에게 사과를 요구하지 않던 둘째는 셋째에게는 사과를 요구한다. 사과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둘째는 셋째를 붙잡고 사과를 요구한다.


묘하다.


‘미안해’라는 사과의 말을 듣고 싶어 사과를 요구하는 아이, 누군가에겐 사과를 요구할 수조차 없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다가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사과를 요구하는 아이.


도대체 '미안해'라는 고작 세글자가 갖는 힘이 무엇일까? 세치 혀 끝에서 나오는 이 세글자가 뭐길래. 누군가는 사과를 요구하고, 어떤 이는 사과를 거부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과를 받고자 다른 사람의 힘까지 빌리려고 하는 것일까?


사과를 하는 일에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인정이다.


자신이 어떤 일을 했고, 자신이 한 일로 인해 발생한 일이 어떤 것인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둘째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반성의 마음이다. 자신이 한 일이 가져온 결과에 대한 부끄러움에서 비롯된 반성. 반성 끝에 다시는 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마음. 이 두가지가 사과를 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이다.


사과의 진정성은 사과를 하는 사람의 태도에 묻어난다.



<출처 : 씨원뉴스>


“10.29 참사”가 일어난 직후 정부는 "참사"라는 표현, "희생자"라는 표현 대신, "사고"와 "사망자" 라는 표현을 쓰게 했다. 애도의 의미로 검은색 리본을 사용하되, "근조"라는 글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국가적으로 애도기간을 정해 추모를 하되, 참사의 이유는 따지지 말라며 침묵을 강요했다. 국민에게 참사의 이유를 찾지 말라는 동안, 정부는 참사의 이유를 꼬리에서 찾았다. 참사가 일어나기 4시간 전부터 112 신고전화에 참사 우려 신고가 접수되었다는 내용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침묵을 깨고, 지난 11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10.29 참사에 대해 사과를 했다. 서울 조계사에서 진행된 '이태원 참사 희생영가 추모 위령법회'에서 대통령은 "슬픔과 아픔이 깊은 만큼 책임 있게 사고를 수습하고, 무엇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큰 책임이 저와 정부에 있음을 잘 안다"라고 말했다. 그는 11월 4일까지 5일 연속으로 합동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책임 있게 사고를 수습하고, 책임이 대통령과 정부에 있다”며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 대통령은 지난 11월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무려 30분간 경찰을 질타했다. 그는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책임)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 이라며 분노했다. 용산경찰서장,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정보계장, 서울경창청 상황관리관, 용산구청장, 용산소방서장은 "10.29 참사"의 피의자로 입건됐다.


서울시의 책임자, 행정안전부의 책임자,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자는 대통령이 말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과는 실제로 힘이 크다.


법적으로 사과는 피고인에게 처해 질 형량을 줄이기도 한다.
어떤 판결문의 양형 이유에는,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있는 점을 참작해 형을 정하였다는 표현이 나오곤 한다. 형사 처벌이 필요한 죄를 저질렀지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고 있다는 것이 형사 처벌의 정도를 정하는 데 고려가 되는 것이다.


사과에는 사과를 기다리는 이의 인생이 걸려 있기도 하다. 어떤 이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상대방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평생을 기다리기도 한다.


10.29 참사의 희생자들은 책임 있는 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사과를 요구할 힘조차 없는 희생자를 위해 깨어있는 시민들이 연대해야 할 때이다. 사과의 부재를 연대의 존재로 메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