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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안내합니다 -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간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5:24
조회
368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간사



“딱딱 딱딱” 시청 앞 아스팔트를 뛰어가는 구두소리가 요란하다. 올 겨울 처음 영하 기온으로 떨어졌던 지난 18일 일요일,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의 버스를 향해 부리나케 뛰어갔다.

결혼식에 갔다 온 후, 한 손에 기타를 들고 추운 날씨에 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마구 뛰었다. 예정시간보다 10분 늦은 12시 40분이 되어서야 버스에 올라탔다.

“와~ 교육 선생님 오셨다!” 일행들이 박수를 쳐준다.

교육 선생님? 지난 일요일,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좀 더 길게 말하자면 난 서울KYC(한국청년연합회 서울지부) 평화길라잡이 3기 현장교육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평화길라잡이라는 말에 생소할 수 있겠다. 이 곳에 짧게 소개해본다.

평화길라잡이는 서울KYC 회원으로서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서대문형무소, 오두산통일전망대, 전쟁기념관에서 시민들에게 평화의 관점으로 안내를 하는 자원활동가를 말한다. 지워지고 왜곡된 역사가 아닌, 올바르게 역사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며, 무뎌진 가슴에 평화감수성을 틔우는 참여와 나눔의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직장인, 학교 교사, 가정 주부, 대학생, NGO 활동가 등의 시민들이 활동하고 있다. 약 8개월 동안 이론 강의, 현장 교육, 현장 실습 등의 과정을 통해 평화길라잡이가 태어난다. 현재 3기 교육 중에 있으며, 2005년부터 교육을 시작하여 1, 2기 길라잡이들이 현장에서 안내 활동을 하고 있다. 난 1기 길라잡이로 활동 중이다.

버스에서 각 자 소개를 했다. 3기 교육생, 교육생 딸, KEY(재일코리언청년연합) 회원, 일본 유학생, 1, 2기 길라잡이 등 20명이 모였다. 교육생 한 분이 추운 날씨임에도 고등학생 딸을 데려왔다. 모두들 기뻐했다. KEY 회원들, 그리고 일본 유학생이 천천히 한국말을 해가며 소개를 했다. 역시 반갑게 큰 박수로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평화길라잡이가 되기 위한 각오를 비장하게(?) 얘기하며 버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자유로에 들어섰다. 비록 날씨는 추웠지만, 우리의 설레임을 실은 버스는 따뜻한 기운을 머금고 쌩쌩 달렸다. 달리는 차 안에서 ‘임진강’, ‘서울에서 평양까지’, ‘경의선’ 노래를 불렀다. 우리들이 처음 찾아간 곳은 파주 금파리 마을이었다. 대인지뢰 피해자이신 이덕준 할아버님을 만나러 갔다. 작년 이 맘 때 흥사단 청소년들과 함께 평화의 종이학을 들고 찾아뵈었는데, 1년 만에 다시 뵈었다. 우리는 거실로 들어섰다.

“할아버님~ 할머님~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추운데 뭘 여기까지 오느라고...”

이덕준 할아버님은 79년도에 민간인 출입통제가 해제된 동네 산에서 서울에 내다 팔 마초를 캐다가 대인지뢰를 밟고 두 다리를 잃으셨다. 수술 후, 의족을 끼운 채 지금까지 살아오셨다. 할머님과 함께 6남매를 키우신 할아버님 얼굴엔 마음의 주름 만큼 주름이 깊이 패여 있었다.

“80이 되어 가는데 이제 걷기도 많이 힘들지. 이 근처에 나 말고도 8명이 더 있었는데, 지금은 죽고 절반도 남지 않았어.”

한 숨을 내쉬며 할아버님은 말씀을 이어 가셨다.

“미군이 지뢰를 곳곳에 묻어놓고, 나갈 때 지뢰매설도를 한국군에게 주지도 않고 갔지. 우리도 우리지만, 우리 군인들이 더 죽었거나 나처럼 됐을거야.”

현재 한국은 미국의 눈치를 보며 국제대인지뢰금지협약 가입을 보류하고 있다.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에 따르면 민간인, 군인을 포함하여 약 6~7000여 명이 대인지뢰에 의해 사망, 다리를 잃거나 실명을 했다고 한다.

“할아버님. 많이 아프셨죠?”

길라잡이 교육생들이 할아버님 얘기에 귀를 떼지 않고 듣다가 질문을 던져본다.

“아파서 밤에 잠을 잘 못 잤지. 다리를 잃었을 때 한 동안은 없는 발가락이 계속 가려워 긁었었지. 나도 모르게 손이 가더라구. 그런데 요즘에도 가끔 그래.”
“정부 보상은 받으셨나요?”
“보상은 무슨... 장애 3등급으로 분류되어 지원을 받을 뿐이야.”
“왜 정부가 보상을 안 해주죠?”
“정부는 대인지뢰피해자가 없다고 얘기하지. 심지어 당시에 우리는 생계를 위해 책임각서를 쓰고 마초를 캐고 다녔어.”

얘기를 마친 후, 할아버님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대문 밖까지 나와 우리를 배웅해주셨다.

“할아버님~ 안녕히 계세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잘 가요.”

버스에 올라탔다. 우리는 대인지뢰가 매우 끔찍하고, 이 지역 뿐만 아니라 저기 부산까지 한반도 곳곳에 묻혀있는 현실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리고 이 대인지뢰 피해자들이 개인 피해자로서만이 아닌 분단과 대립이라는 아픈 현실이 낳은 사회적 피해자인 것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이 고통에 평화길라잡이들이 말하는 평화도 함께 하자고 다짐해 봤다.

다시 자유로를 달렸다. 이번에는 오른쪽에 임진강을 끼고 오두산통일전망대를 향해 달렸다. 수 많은 철새들이 자유롭게 임진강과 남북을 오가고 있다.

‘어쩜 이 자유로는 인간보다는 철새들에게 만남과 행복을 주는 길인지도 모르겠구나.’

오두산통일전망대에 도착했다. 어느덧 3시다. 망배단과 조만식선생 동상이 있는 광장에서부터 현장 교육을 했다. 그리고 전망대 내부로 들어가 1층의 북한 미술 전시실, 2층 영상실을 지나 3층 내부 전망대로 들어섰다.

“와~ 이쁘다.”

오두산전망대에 처음 와본 3기 교육생, KEY 회원들이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한강하구를 보고 외쳐댔다. 난 안내를 이어갔다.

"3.2km 전방에 보이는 것이 북녘 땅 황해도 개풍이며, 일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난 얘기를 계속 이어갔다. 함경남도에서부터 흘러오는 임진강은 오두산전망대 앞에서 한강과 만나 서해로 흘러간다. 이 한강하구는 서울로 들어오는 물줄기여서 한국전쟁 이전에는 많은 배들이 오고갔던 곳이다. 그러나 정전협정 이후 이 곳에는 사람과 배는 보이지 않고, 은빛 물결만 흐르고 있는 정치적 호수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실제로 군사분계선은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파주 장단까지 이어지는 육지에만 그어졌을 뿐, 한강하구와 서해에는 그어지지 않았다. 정전협정 제1조 5항에 따르면 ‘한강하구수역은 쌍방 민간선박의 항해에 이를 개방한다’고 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곳은 닫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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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길라잡이 촬영
사진 출처 - 필자



우리는 4층 외부 전망대에 올라섰다. 강바람은 더욱 매섭게 몰아쳤다. 하지만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갔다. 통일, 그리고 평화의 과정에서 눈 앞에 펼쳐져있는 한강하구에 사람과 배들이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원했다. 평화길라잡이 안내는 관광 가이드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참가자들에게 평화감수성을 심어줄 수 있는 활동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서로서로 주고 받았다. 그리고 한 마디씩 외쳤다.

“일산 신도시 아파트보다 북녘 아파트가 훨씬 가깝게 보이네요.”
“강이 너무 아름다워요.”
“이제 곧 여기에 배들이 다니겠죠?”

참가자들이 찬 바람을 맞아가며 어렵게 입을 떼 본다.

“선생님~ 추워요.”

그래도 추운 것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우리는 실내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통일, 북한과 관련된 여러 전시물을 안내하고, 우리는 임진강이 보이는 밖으로 나왔다. 임진강을 바라보며 서로 손을 잡고, 버스에서 배웠던 ‘임진강’ 노래를 불렀다. 비록 추운 날씨였지만, 한강하구의 평화와 남북의 통일을 생각하며 불렀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흘러 내리고
물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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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길라잡이 촬영
사진 출처 - 필자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참가자들과 오늘 느낌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할아버님의 모습이 계속 떠오르네요.”
“제가 평화길라잡이 안내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생기네요.”
“서울과 가까운 곳에서 분단의 현실이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일본에서 오두산전망대로 수학여행 왔을 때는 그냥 무심코 봤는데, 오늘 와서 새롭게 볼 수 있었습니다.”
“너무 추웠어요.”
“하하하”

평화길라잡이 3기 교육생들의 소감은 당당하고 아름다웠다. 이분들이 교육을 마친 후에는 1, 2기 분들과 함께 평화의 안내를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두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 물론 나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최근 남북총리회담 때 한강하구 공동이용에 대해 합의를 하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미소와 함께 떠올랐다.

‘앞으로 평화길라잡이 안내 내용이 바뀌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