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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과 ‘폭력’의 차이 -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7:51
조회
241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봄비가 내려 땅바닥에 파헤쳐진 웅덩이를 자연스레 메워 버리듯 이명박 정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매질과 눈가림으로 용산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태를 뒤덮으려 한다. 지난 3월11일 용산 상가 재개발 5구역에 일단의 용역직원들과 포크레인이 다시 나타났다. 참사가 일어난 지 두 달여가 지났지만 아무 것도 해결된 게 없어 장례조차 치루지 못한 유족과 철거민들은 분노하며 서럽게 울부짖었지만 무정한 철거 굉음에 묻혀 버렸다.

국가폭력에 의한 명백한 살인사건은 서서히 잊혀져가고 지금은 ‘대한민국의 법을 우습게 아는 전문 시위꾼들’의 폭력이 더 큰 문제인양 도마에 오르고 있다.

경찰은 지난 9일 ‘용산 참사 추모집회’ 때 ‘경찰관 10여명을 폭행하고 무전기를 탈취했다’며 연행한 8명의 시민 가운데 2명을 구속시켰다. 조선일보는 “경제적으로 선진국 문턱을 밟고 있다는 대한민국의 법질서가 한줌밖에 안 되는 시위 전문가들에게 농락당하는 후진적 상황”을 개탄하며 확인되지 않은 사실(경찰 지갑 탈취 등)을 가지고 마구 소설을 써댄다.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은 “상습 시위꾼들은 200여명 정도로 그간의 채증 자료 등을 바탕으로 전원 검거 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이 분석하고 있는 “도심 상습 시위대” 200여명은 어떤 사람들인가? 140여명은 학원 강사, 자영업, 종교인, 화가 등 직업을 가진 사람, 나머지 60여명은 무직자나 자퇴생이라고 한다. 이들은 지난 해 촛불 시위가 잠잠해진 이후에도 다음 ‘아고라’나 인터넷 카페를 통해 활동해 왔고 대부분 집시법 위반 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경찰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이 가운데 무직자나 자퇴 학생들이 “폭력 시위의 주동자‘들일 거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구속된 사람들 모두 무직이거나 일용직 노동자다.

그동안 경찰은 파업 또는 시위 과정에서 연행, 구속된 민주노총 조합원, 사회단체 회원 들을 이런 식으로 불러왔다. 그런데 이제는 ‘아고라’를 통해 활동하는 “상습 시위꾼”이라니......‘아고라’가 뭐 ‘불법폭력시위 단체’라도 된단 말인가? 머지않아 ‘아고라’를 “불법폭력시위의 온상”으로 규정하고 회원들을 대량 검거하는 사태를 예상해야 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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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벌어진 서울 용산재개발 4구역에서 재개발조합 측이 지난 3월 11일 중장비를 동원, 철거작업을 재개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먼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의 잘못을 규탄하는 국민의 정당한 목소리를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전문 시위꾼”의 돌출 행동으로 폄하하면서 인권을 유린한 것 자체가 문제다. 국민의 60% 이상이 검찰의 용산참사 관련 수사결과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고 답변하고 있고 부자들만을 위한 재개발 정책이 잘못됐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용산참사를 추모하기 위해 거리에 나온 시위대의 규모가 기백명 정도로 작다 해도 그들의 목소리는 아직 행동하지 않고 있지만 같은 생각을 가진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소수의 주장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최소한 주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그들의 손에는 촛불과 손 피켓 외에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다. 그런데 시위대의 1.5배나 되는 경찰병력을 배치해서 거리 곳곳을 틀어막아 놓고는 “교통흐름을 방해 한다”며 시위와 행진을 ‘불허’하는 현실 때문에 고성과 폭력이 오가는 “무법천지”가 재현되는 것 아닌가?

이명박 정권으로선 그동안 “법과 원칙”을 외치며 더 많은 인력과 첨단 장비를 투입해서 탄압을 지속했건만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습 시위꾼”들의 숫자에 신경이 곤두설 만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누구인가? 돈도 권력도 없고 조직되지도 않았기에 우리 사회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던 사람들, 있는 듯 없는 듯 묻혀 지내면서 나날이 생계를 걱정하며 살아왔던 사람들이다. 바로 이명박 정권이 상정했던 “국민 성공시대”의 주역들이고 우리 사회의 다수다. 그런데 지금 세계 경제위기와 잘못된 정부 정책에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리고 있다. 이들이 촛불을 내려놓지 못한 채 “명박 퇴진”을 외치며 집회 현장을 찾아다니게 된 가장 큰 배경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투쟁이 거듭될수록 이들은 국가폭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습 시위꾼’으로 변모해갔다. 이명박 정권이 과연 이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가? 국민과의 약속을 밥 먹듯이 어기고 민의를 표출할 수 있는 정당한 통로마저 막아버린 주제에...

조선일보와 이명박 정권의 말대로 ‘공권력’은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 국민을 죽인 경찰은 물론이고 사회적 신분이나 정치적 풍향계에 따라 제멋대로 형벌을 남발하는 검찰과 법원 또한 마찬가지다. 저들이 자주 쓰는 표현처럼 ‘공권력’ 자체의 정당성을 의심받는 “신뢰의 위기”가 온 것이다.

계몽주의자들에 따르면 근대국가는 ‘외부의 적과 내부의 질서교란자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 한다’는 약속아래 폭력을 독점했고 국민은 그 약속을 믿고 국가에 복종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국가가 폭력을 독점한다는 말은 무기를 독점하고 국민의 신체를 독점함으로써 군대나 경찰을 창설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엇이 정당한 폭력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권한까지 독점하는 것을 의미한다. 똑 같이 ‘타인의 신체를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쓴다 해도 군대나 경찰이 사용하면 폭력이 아니라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정당화 된다. 마치 내가 하면 로맨스요,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인 것처럼...

하지만 국가의 폭력독점은 근대이래 끊임없이 도전받아 왔다. 생산수단과 부를 독점한 소수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장악하다 보니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에게 국가는 특정 계급의 사익을 정당화해주는 ‘억압기구’에 불과한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진전되었다고는 하지만 현대에 와서도 국가기구의 계급 편향성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야바위꾼 같은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대표랍시고 의사당에 앉아 졸속으로 만들어 낸 “MB악법” 같은 것들을 ‘지엄한 국법’이니 지키라고 말한다면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끓어오르는 건 당연할 것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그런 엉터리 법을 지키지 않는다며 경찰을 동원해 군화 발과 몽둥이로 짓밟아 버린다면, 당하는 국민들은 살기 위해서 국가의 폭력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다수의 사람들이 이렇게 느끼고 있는데도 권력자들이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을 통해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해결책은 혁명을 통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