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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윤씨에 대한 안동교도소의 석연치 않은 징벌 결정 - 이광열/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1 17:43
조회
398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지난 주 정창윤씨를 면회하기 위해 안동교도소에 전화를 걸었다. 이 사람 저 사람 돌려서 전화를 받더니 하는 말이 징벌 중이라 3월 13일까지는 면회가 안 된다는 거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금치(규율 위반을 이유로 재소자를 0.75평 정도의 좁은 징벌방에 가두고 외부와의 소통을 금지시키는 가혹한 징벌)10일이면 상당히 과중한 징벌인데 도대체 무엇 때문이냐”며 따져 물었다. “다른 수형자에게 불법 서신을 보냈습니다. 더 이상은 말해 드릴 수 없습니다.”

문득 며칠 전 정창윤씨가 편지와 전화로 다급하게 면회를 와달라며 했던 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면서 온 몸에 소름이 느껴졌다.

현재 안동교도소장인 한 모 씨는 부산교도소에 있을 때 교도관들에게 조사를 받는 모든 재소자들에게 사슬, 수갑 등 ‘계구’ 사용을 적극 독려하는 방침을 내렸고 이로 인해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권고까지 받았지만 “직원 사기 및 근무의욕을 위축시키는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오히려 “인권위 진정 등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은 직원은 위로·격려”한다며 포상까지 내린 문제의 인물이라고 했다.(<한겨레신문> 1월 25일자 참조)

정창윤 씨는 전국철거민연합 회원으로 2005년 6월 ‘오산 수청동 철거반대투쟁’ 때문에 구속 돼 지금까지 옥살이를 하고 있고 앞으로 1년은 더 있어야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그는 안동교도소에 2년 가까이 수감되어 있으면서 열악한 재소자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차례 단식투쟁을 했고 2006년에는 그 때문에 한 달 동안 징벌을 먹기까지 했다.

지난 해 8월 정창윤씨는 같은 사동에 수감되어 있던 포항건설노조 심진보씨와 함께 쥐가 들락날락거리는 ‘푸세식’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꾸고, 법정 공휴일 재소자 운동시간 보장, 생방송 뉴스 시청을 보장할 것 등을 요구하며 보름 넘게 단식투쟁을 벌였다. 두 사람의 요구는 너무나 정당했지만, 교도소 측은 예산 핑계를 대며 버티다가 여러 노동, 인권 단체들이 합세해서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자, 화장실 개선 등 몇 가지 처우개선 요구를 수용하였다.

그 일이 있고나서 안동교도소는 점차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해가 바뀌자마자 정창윤씨로부터 편지가 온 것이다. 서신 검열을 의식해서인지 교도소 상황에 대해 에둘러 말하고 있었지만 다른 경로를 통해 어렴풋이 그간의 사정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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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사슬이 채워진 부산교도소 수용자 홍아무개씨의 발목에 깊은 상처가 패여 있다. 아래는 한아무개 전 부산교도소장이 재임 때 적극적인 계구 사용을 지시한 문건.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사진 출처 - 한겨레


지난 1월경, 안동교도소에서는 교도관에 의한 재소자 폭행사건이 벌어졌다고 했다. 맞은 재소자는 스스로 ‘민주노동당 당원’이라고 밝힌 원 모씨였다.

인권을 억압하는 잘못된 법과 제도 탓에 억울하게 구속된 양심수들에게 감옥은 또 하나의 투쟁현장이다. 자신의 요구뿐만 아니라 직접적 연관이 없는 다른 재소자들의 개인적 불만이나 인권침해 사례까지 떠안고 교도소 측과 투쟁을 벌이면서 일종의 ‘해결사’ 역할을 떠맡아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정창윤 씨처럼 불의를 보면 용납하지 않고 단호하게 투쟁해서 안 될 것 같은 요구들도 쟁취해 내는 ‘투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정창윤씨는 원 씨로부터 구타사건의 전말을 전해 듣고 같은 사동에 있는 심진보씨와 함께 ‘투쟁계획’을 짰다. 원 씨에게 우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부터 하라고 했고, 적절한 날을 잡아서 소내에서 함께 단식 등의 방식으로 강력하게 항의를 해보자고 권유했다. 구속노동자후원회에도 서신을 보내 시급히 연대해 줄 것을 호소했다. (다른 일정 때문에 개입할 시기를 놓쳐 한탄스럽다.)

세 사람이 D-DAY를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교도소 측이 낌새를 챘다. 그들은 원 씨에게 먼저 접근해서 모종의 압력을 넣은 것으로 추측된다. 3월 들어 먼저 싸워보자며 문제를 제기했던 원 씨가 갑작스레 국가인권위원회에 냈던 진정을 취하해 버렸다.

2월말 경 투쟁의 동지였던 포항건설노조 심진보 씨를 갑작스레 포항교도소로 이감시켰다. 예전에 심 씨가 가족들이 있는 포항으로 보내달라고 한 적은 있었으나 그동안은 콧방귀도 뀌지 않다가 왜 하필 이맘 때 이감을 보낸 것인지 석연치가 않았다. 그리고 나서 3월 4일, 정창윤씨에게 “불법서신 수수”라는 올가미를 씌워 징벌을 내렸다.

아직까지도 감옥에서는 다른 사람과 서신을 교환할 때 “소장의 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는데(행형법 제18조) 정창윤씨가 피해자인 원 모씨에게 허가받지 않은 쪽지 편지-감옥 은어로 “비둘기”-를 보냈다는 게 징벌 사유다. 원 씨는 소 측의 압력에 굴복해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포기했을 뿐 아니라 정창윤씨가 전달한 “비둘기”를 교도관들에게 넘겨주었다.

교도소에서 재소자들끼리 쪽지 편지를 주고받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다. 사실 같은 교도소내 재소자들끼리 편지를 교환하지 못하게 막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교도관들은 그동안 알아도 모른 체하며 지나칠 때가 많이 있었다. 그런데 유독 정창윤씨는 이번에 ‘금치 10일’이라는 중한 징벌을 받게 된 것이다.

그간의 과정을 통해 징벌을 내린 교도소 측의 속내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우선 소 측은 문제가 된 ‘재소자 구타 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외부로 알려지는 게 두려웠을 것이다. 또한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고 하니, 이번 기회에 인권문제라면 물불 안 가리고 저항하는 정창윤씨 같은 “골치 아픈” 사람들에게 본 떼를 보여주고 싶었을 게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와 유사한 일들이 전국 각지의 교도소에서 일어나고 있다. 민주적 통제가 불가능한 감옥이란 폐쇄 시설에서 ‘교정’ 관료들은 재소자들을 그야말로 지배하고 있다. 지배를 받아야 하는 재소자들의 인권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그릇’과도 같다. 그나마 마련되어 있는 공식적인 통제장치들이 제 구실을 못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지난 해 8월 28일, 구속노동자후원회는 안동교도소 문제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당시 문제가 되고 있던 독거사동의 화장실을 비롯해서 정창윤, 심진보 씨가 제기했던 8가지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 시정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무려 7개월만인 지난 2월 15일, ‘사건처리 결과’를 통지해 왔다. 하나같이 “인권침해에 해당하지 않”고 “구제조치가 필요하지 않”다는 둥의 무성의한 내용뿐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침해구제 제2위원회가 통보한 사항 중 몇 가지만 훑어봐도 이들이 정말 안동교도소를 갔다 왔는지 의심스럽고, 설사 갔다 왔다 해도 소 측의 일방적인 이야기만 듣고 반영한 듯하다.

안동교도소는 겨울에 난방시설이라고는 사동 복도에 설치된 라지에이터가 전부고 재소자들은 온기 하나 없는 마룻바닥에서 온수를 담은 페트병을 끌어안고 새우잠을 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에 대해 “라지에이터를 통하여 난방을 하고 수용 거실 내 온도를 측정하여 난방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조사결과 인권침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며 기각결정을 내렸다.

거실과 복도는 두터운 벽으로 막혀있는데, 라지에이터를 틀어준다고 해서 실내 온도를 얼마나 끌어 올릴 수 있을까? 몇 몇 교도소에서는 온돌을 설치하거나 전기 매트를 깔아주는 방식으로 난방을 하고 있는데, 이런 곳과 비교하면 안동교도소 재소자들은 분명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UN 피구금자 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제60조)이 규정한 “유사성의 원칙”(수형생활과 자유생활 사이의 차이를 극소화 할 것)에 비춰보면 어림없는 수준이다.

행형법상 매일 1시간 이내 운동시간을 보장하도록 돼 있는데도 안동교도소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주 5일 근무 시행이후 일요일과 공휴일에 재소자들에게 운동을 시키고 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근무자 인력의 운영상 불가피”하므로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 재소자 권리 보장을 위해 당장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다. 그렇다면 재소자들이 일요일과 공휴일에 1시간 정도 운동할 권리를 영원히 박탈당할지도 모르는데 태연하게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소수자 종교의 자유 보장과 관련한 진정, 구체적으로는 무슬림들의 종교생활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였는데 국가인권위원회는 동문서답 하듯이 “매월 종교 집회를 실시하고 있으므로 사실이 아니”라며 기각했다. 기독교, 불교, 천주교 종교집회는 물론 매월 이루어진다. 종교집회는 사회에서는 보통 매주 1회인데 감옥이라고 해서 매월 1회만 보장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긴 어렵다. 무엇보다 우리의 요구는 이슬람교를 비롯한 상대적 소수 종교인 경우에도 어떤 식으로든 종교집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가 감옥인권 개선에 기여한 측면도 있지만 갈수록 현실에 안주해서 정부 관료들과 똑 같이 ‘상황의 불가피성’만을 되된다면 인권 진전에 도움이 안 되거나 걸림돌 밖에 될 게 없다.

만일 국가인권위원회가 현재 안동교도소장이 부산교도소에 재직하면서 저지른 “계구”착용 남발 등 명백한 재소자 인권유린과 위원회의 권고마저 이행하지 않는 안하무인식 태도에 분명하게 경종을 울렸다면 안동교도소에서 이와 같은 구타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정창윤씨에게 부당하게 징벌을 가하는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안동교도소의 최근 상황은 일시적으로 감옥인권 상황이 나아졌다고 해서 안심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더 커다란 투쟁으로 나아가야 함을 일깨워 준다.

안동교도소장은 지금 당장 정창윤씨에 대한 부당한 징벌을 철회하고, 재소자 구타사건에 대해 진상을 밝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