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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들과 깨진 유리창 (전종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0:25
조회
201

전종휘/ 한겨레21 기자


 
나는 이른바 캥거루족이다. 마치 어미 캥거루 뱃주머니 속 아기 캥거루마냥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 집에 세들어 살고 있다. 그러던 지난 겨울 함께 살고 있는 어머니와 여러 차례에 걸쳐 다투는 일이 벌어졌다. 아들이자 세입자인 내 입장에서는 결코 유리할 것 없는 다툼이었다.
까닭은 이랬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큰 아들 녀석을 데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골목길 앞 쪽으로 주소지를 옮기겠다고 했다. 그 쪽 주소지라야 인근 ㅁ초등학교로 입학하라는 취학 통지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주소지에서는 다른 ㄱ초등학교로 입학해야 한다. 그런데, ㅁ초등학교는 나와 내 누이가 졸업을 한 유서 깊은(?) 초등학교인지라, 어머니는 유달리 그 학교에 애착을 느끼시는 듯했다. 지금보다 더 가난했던 시절, 누나는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다 전학 왔고, 얼마 뒤 나마저 입학해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공간이라, 누구나 그렇듯, 내게도 ㅁ초등학교에 대한 기억은 애틋하다. 어머니는 주변 이웃들에게 물어봐도 ㄱ초등학교보다 ㅁ초등학교의 평가가 훨씬 더 낫다고까지 주장하셨다. ㅁ초등학교가 ㄱ초등학교보다 더 가깝다는 억지 주장까지 펴는 등 어머니의 파상 공세를 막아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반대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런 식으로, 살지도 않으면서 주소지를 옮기는 건 주민등록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요즘 공직자들 청문회하는 것 보세요. (당시는 물론 최근의 청문회가 열리기 한참 전이다.) 내가 공직에 진출할 일은 없지만, 기사에서 당위를 주장하는 기자가 그런 식으로 위장전입해서 되겠어요?"라고 설득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그래도 못내 아쉬워하셨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들어먹는 게 없다"며 속상해하셨다. 그 뒤로도 설전은 몇 차례 파도를 더 타야 했다. 결국 할미의 입김보다는 애비의 입김이 더 세게 작용한 결과, 큰 녀석은 지금 ㄱ초등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그러다 최근 총리나 장관직 지명자들의 청문회를 보면서 열 달 전 기억이 계속 떠올랐다. 위장전입에 탈세에, 우리 사회에서 돈 좀 있고 힘깨나 쓴다는 자들이 저지를 법한 웬만한 탈법은 다 저지른 그들. "이른바 총리하실 분은 물론이고 장관 하실 분들마저 다 저러는데, 저들과는 달리 이른바 공인의 범주에도 끼지 못하는 내 주제에 그냥 어머니에게 위장전입을 하시라고 할 걸 그랬나?"하는 생각도 들고, "저런 범법자들이 청문회에서 고개 한 번 숙이고는 우리나라의 법과 정책을 집행하는 장관 자리에 앉는 게 이명박 대통령이 걸핏하면 입에 달고 다니는 법치의 실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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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귀남 법무장관 후보자가, 17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영선 민주당 의원(오른쪽 사진)이 부동산 거래 등 재산형성 과정에 대해 따져묻는 동안, 입을 굳게 다문 채 땀에 젖은 손가락(가운데 사진)으로 자료를 짚어가며 살펴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불쌍하게 된 건 법이다. 비로소 법은 그 스스로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주민등록법상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총리와 장관들이 내리는 명령에 법은 순종해야 하는가? 보나마나 저들은 웬만한 집회는 금지한 뒤 그 집회를 연 주동자를 잡는다며 `관계기관대책회의'를 열 것이고, 총리와 법무장관은 엄단 의지를 담은 담화문을 내놓을 것이다. 자신들의 범법 행위보다 처벌규정상으로는 훨씬 가벼운, 집시법상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는 집회 주동자들을 반드시 검거한 뒤 처벌해 우리 사회의 기강을 잡겠다며 기염을 토할 것이다. 그들이 불법 집회 참가자들을 잡아갈 때 애용하는 도로 교통법상 교통방해죄(도로에 서거나 앉거나 누워 교통을 방해한 죄)는 기껏해야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그친다는 것을 저들은 알까?
법무부나 경찰 등이 애용하는 형법 이론에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다. 공중전화 유리가 깨진 걸 그대로 놔두면 거기에 쓰레기가 쌓이고 그러다보면 그 곳에서 더 큰 범죄가 일어나더라, 따라서 작은 범죄가 일어났을 때 강력히 처벌해야 큰 범죄로 이어지는 걸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 동안 참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미신고 집회 시위가 일어날 때마다 이 이론을 들이댔다.
이 정부 들어 총리와 장관직 후보자들이 각종 불법, 탈법을 저지른 사실들이 계속 밝혀지고 청와대는 임명을 강행하는 모습을 보며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스스로에게 적용할 수 있는, 터럭만큼의 양심도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