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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진실을 가르치는 자유인’이어야 - 전국완/ 신목중학교 교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0:13
조회
261

전국완/ 신목중학교 교사



며칠 전 선거법 관련 전교조 교사들의 공판소식을 전해 들었다. 20명 전원에게 징역 6월에서 2년 2월의 실형이 구형되었단다. 피의자들의 절절한 최후진술을 읽어 내려가면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특히 소환당시 암선고를 받고 힘겹게 투병했던 우리 지회장 선생님의 최후진술을 대하면서, 치료하느라 앙상하게 뼈만 남았던 선생님의 야윈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법정에 다녀 온 친구와 긴 통화를 했다. ‘뭐, 이런 놈의 세상이 다 있냐!’ 는 울분을 서로 토해내며…….

업무와 관련될 수밖에 없는 ‘급식업체와 학원장들에게 수십억 원을 지원받고, 교육청 실, 국장과 교장, 교감들을 동원해 선거를 치른’ 서울시교육감에게 징역 6월을 구형한 검찰이 개인의 이익과 상관없이 다만 교육적 충정의 발로로 주후보를 지원했던 이 힘없는 교사들에게는 교육감보다 훨씬 무거운 형을 내린 것이다. ‘교육의 공공성을 해치는 일’이라는 이유로. 이 정권과 검찰의 후안무치에 또 다시 기가 막혀 온다. 이중 잣대라고 지적하기에도 이제 신물이 난다. 차라리 그냥 딱 까놓고 말해라. 그렇지 않아도 위에서 전교조 때려잡으라고 난리였는데, 기회가 좋아서 낚아챈 것뿐이라고 말이다. 하긴 촛불집회 때 안전한 먹거리를 주장하며 거리에 나온 유모차부대의 엄마들에게 ‘아동학대’죄를 들이댄 이 정부의 검찰인데 더 이상 말해 무엇 하겠는가.

다만, 교육의 공공성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따져 봐야 할 것 같다. 기사를 다시 읽어 보았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헌법상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이를 조직적으로 위반함으로써 교육 공공성을 해친 것이 인정되어…’ 라며 검사는 중형 구형의 변을 늘어놓았다. 교육의 공공성이라고 했는가? 검사는 그 뜻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고 있기에 그 말을 갖다 붙인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최소한 ‘교육의 公共性’이라 함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처럼 어떤 이유에서도 침해받지 않을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모든 국민에게 균등하게 보장해야 하며, 나아가 그 방향성에 있어서는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를 보다 정의롭고 건강하게 발전시켜가는 교육이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교육의 최전선에서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과 매일 호흡하며 생활하는 우리 교사들이 보기에 작금의 교육현실이 그런 대원칙에서 심각할 정도로 벗어나고 있다고 판단되기에 그 위기의식에서 우리 교사들이 나선 것 아닌가.

교육의 균등성 면에서, 수월성 교육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특목고, 국제중, 자립형 사립고의 난립, 고교등급제 등 일련의 교육정책들이 결국은 소수의 엘리트학생들에게는 유리한 정책일 수 있다. 하지만 엄존하는 학력위주의 사회현실 속에서 교육열이 남다른 우리나라 모든 학부모에게 자녀들을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게 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또한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누가 더 많은 양질의 사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종착지는 결국 달라지게 돼 있다. 각기 다른 출발선에서 균등하지 못한 릴레이를 펼친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공공성에 대한 침해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성적이 곧 실력은 아니다. 또 성적향상이 교육의 다가 아니다. 또한 모든 아이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도 없다. 진정한 교육은 성적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하고, 옳고 그름을 따질 줄 알며, 각기 다른 다양한 실력과 소질을 키워 나름의 꿈을 키우고, 또 펼치면서 당당히 사회구성원으로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은 진짜 중요한 건 다 생략하고 모든 아이들이 성적향상만을 향해 질주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성적 향상과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해도 되는 분위기다. 언젠가 모 학원에서 어느 특목고의 입시문제를 아이들에게 학원차 안에서 나눠주는 사건이 있었다. 뒤늦게 합격이 취소되고 학원도 문을 닫는 듯 했으나, 결국 학부모들의 소송으로 학생들은 다시 합격 조치되고 학원도 슬그머니 다시 문을 열었으며, 지금 성업 중이다. 학교는 또 어떤가. 특목고준비를 하는 중3학생들의 경우, 학년말엔 아예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다. 학부모들의 강력한 요구에 많은 학교들이 어쩔 수 없이 그들을 교실 밖 어딘가에서 입시준비를 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성적이 모든 가치보다 위에 자리하면서 진정 중요한 가치가 묵살되는 현실, 각종 불법과 편법이 동원되면서 교육이 교육을 배반하게 하는 이 현실이 또한 교육공공성에 대한 심대한 침해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교사는 검사의 말처럼 ‘국민전체의 봉사자’이지, 정권의 봉사자가 아니라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특정 계층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전체, 더욱이 약자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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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3월 10일 오후 1심 선고공판에서 교육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은 뒤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10년 전 복직에 즈음해 김귀식 선생님께서 건네주신 ‘교사는 진실을 가르치는 자유인’이라는 책의 제목이 생각난다. 그 때 이후 지금까지 가슴 속에 새겨두고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진실을 가르치려면 우리 교사들은 어떤 권력기관이나 이해관계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름의 양식과 교육관을 지니고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자유도 있어야 한다.

교사는 죽은 지식을 가르치는 지식소매상이 아니다. 그런 건 다른 곳에서 훨씬 더 효율적으로 하고 있다. 교사는 ‘가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문학작품을 읽고 작가의 메시지를 찾아 내가며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삶이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지나간 역사의 편린들을 단순히 암기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지난 역사의 공과 과를 꼼꼼히 분석하고 앞으로는 어떤 역사를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반성하고 토론하는 사람인 것이다. 교사들의 이런 교육활동이 가능할 때에 진정 우리의 교육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정권의 정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파면, 해임, 고소, 고발로 난도질당한 교단엔 어느새 울분과 투쟁의 기류 대신 무기력과 자조 섞인 침묵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내쳐진 동료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그래도 교단에 남아 버텨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자위 사이에서 괴로워하다가 이내 표정을 잃어가는 교사들. 보았으되 보지 않은 듯, 들었으되 듣지 않은 듯, 할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더라도 꾹 참으면서 쏟아지는 업무에 함몰돼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너무 우울하다. 학원에서 새벽까지 시달리고 학교에서는 잠을 자는 아이들, 성적을 비관하여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는 아이들을 보아도 교육자로서 어떤 의견이나 주장을 펼 수 없는 우리들이 진정 교육의 주체라 할 수 있는가.

힘들었던 해직기간을 마치고 복직하게 되었을 때의 그 벅찬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도 행복했다. 이제 더 이상 교단이 행복하지 않다. 지난해 동료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학교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행복하지 않다’며 사직서를 던지고 표표히 교단을 떠난 후배가 생각난다. 아마도 내가 지금에야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이 질식할 듯 한 분위기를 그는 조금 일찍 감지하고 떠났지 싶다. 교사가 행복하지 않은 데 건강한 교육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까. 공교육이 바로 설 수 있을까.

교육당국이 툭하면 내세우는 ‘국가경쟁력’ 진정한 실력과 경쟁력은 이 정부가 자행하고 있는 폭압과 획일적인 교육으로는 결코 이루어낼 수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하는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 열려있는 사고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개성과 소질을 지닌 아이들을 조화시켜 내는 교육적 시스템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이미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의 교육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들의 생각에 반하는 다른 어떤 주장이나 견해도 용납하지 않고 마치 점령군인양 국민들을 폭력으로 통치하려는 정부, ‘잃어버린 10년’을 부르짖으며 지난 정부의 모든 것을 부정해 버리는 패륜적인 정부, 그나마 살아 있던 원칙과 상식마저 일시에 엎어버린 정부당국에 마지막으로 바란다.

당신들의 이런 행태가 지금까지 누려온 기득권을 눈곱만큼도 양보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나아가 백성들이야 어찌됐든 이를 더욱 부풀려 자손만대 누리려는 탐욕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다만 무식과 어리석음의 소치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 나라의 앞날이 조금이라도 걱정된다면, 그리고 ‘국가경쟁력’이 제고되길 바라는 게 진정이라면 ‘전교조 교사들에게 우리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는 그야말로 선정적이고 원한에 사무친 듯 한 구호들은 이제 그만 집어치우고 교육현장의 목소리에 제발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