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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이광열)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0:57
조회
264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옛말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 상황을 보면 죄보다 사람을 더 미워하게 만드는 것 같다.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해 사건’ 같은 흉악 범죄 사건이 벌어지면 정부와 언론은 범인의 잔혹성을 최대한 부각시킴으로써 재판도 받기 전에 ‘그놈은 죽일 놈’이라는 여론 판결을 이끌어 낸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회가 전보다 안전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잃는 게 더 많다. 정부는 ‘범죄 예방’을 핑계로 감시와 통제를 확대하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누려야 할 자유들을 하나 둘 빼앗아 가고 있다. 곳곳에 CCTV가 설치되고 불심검문이 강화된다. 인터넷에 마음대로 글을 올릴 수도 없고 거리에서 조금이라도 어수룩해 보이는 사람은 ‘예비 범죄자’로 간주돼 잡혀가는 일도 벌어진다.

더 중요한 건 우리 스스로가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어간다는 것일 게다. 연쇄살인범, 성추행범이 어디서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세상이라며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고, 이웃에게 호의를 베푸는 건 미덕이 아니라 범죄 예비 행위 내지는 범죄에 노출당하는 ‘바보짓’으로 폄하된다. 이러니 감옥에 갇힌 재소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위정자들은 ‘국민 정서’를 핑계로 가뜩이나 열악한 감옥 환경이나 재소자 인권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않은 채 관련 예산을 줄여 버렸고, 교정 관료들은 ‘사고만 안 터지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법에 규정된 재소자들의 인권마저 무시한 채 감시와 통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3월 22일 구노회가 전국 교도소(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구속노동자들에게 보낸 편지가 일제히 ‘수신 불허’ 되었다. 지난 15년 동안 책과 영치금을 보낼 때마다 편지를 동봉해 왔는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저지당한 적이 없었다. 비록 광범위한 단서 조항이 달려 있긴 하지만 ‘형집행법’에도 ‘서신 무검열 원칙’이 규정되어 있지 않은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서울구치소에 전화를 했다. 담당 직원은 ‘교정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으면 예방 차원에서 편지를 교부하지 않을 수 있다’ ‘일부 편지 내용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며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저들이 문제 삼은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재소자들은 ‘죄인’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법에 보장된 권리조차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른 말하는 사람들은 당국에 찍혀 징벌과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억압과 착취로 유지되는 사회다 보니 어디를 가나 투쟁해야 할 문제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당히 맞서 투쟁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인간 대우조차 받을 수 없다는 점은 감옥 안이나 밖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소 내에서 부당한 처우나 인권침해 문제가 있을 때는 혼자서 해결하려 마시고 외부로 꼭 알려 주십시오!”

교도관들의 시각에서 보면 불편하고 거슬리는 편지다. 하지만 그동안 구속노동자들과 편지와 면회로 소통하면서 들었던 이야기들이고, 혹시나 부당하게 인권을 유린당하는 일이 없도록 외부에 알려 달라고 한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저들은 이 편지가 ‘교정 질서를 심각하게 해칠만한 우려’가 있다는 걸 입증조차 하지 못하면서 검열과 불허 조치를 정당화했다. 명백한 근거를 대라며 계속 추궁하자, 더 엄청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번 편지는 다른 데(법무부 교정본부로 추정)서 인지해서 지시를 내렸다’ ‘밖에서는 양심수라고 부르지만 어쨌든 사회질서를 해치는 활동을 한 사람들이다. (구노회에서) 일괄적으로 지령을 내리면 (소 내에서) 단체 행동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큰 집’에서 ‘조인트 깐다’는 이야기가 이런 경우에도 적용되는가보다. 정권이 얼마나 위기감을 느꼈으면, 가당치도 않은 ‘소설’을 써대며 편지 한 장에 호들갑을 떤단 말인가?

2007년 ‘석궁 사건’으로 구속된 김명호 교수는 지난 3월 25일 원주에서 춘천교도소로 이송돼 오자마자, 위압적인 분위기에서 ‘알몸 검신’을 당했다. 공포에 질린 김 교수가 경찰의 신변 보호를 요청하며 입방을 거부하자, ‘금치 10일’이라는 첫 징벌이 떨어졌다. 또한 면회 온 가족과 지인들을 통해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제가 되자 이번에는 ‘허위 사실 유포’라는 이유로 더 가혹한 ‘금치 21일’의 징벌을 부과했다. ‘금치’는 규율 위반을 이유로 재소자를 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0.75평 크기의 징벌방에 가둬 놓고 면회는 물론 서신 수발, 텔레비전 시청, 운동마저 제한하는 무시무시한 행정 처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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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궁사건'으로 구속된 김명호 교수가 춘천교도소로 이감되는 과정에서
교도소 측으로부터 알몸 신체검사 등 인권유린을 당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알몸 검신’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투쟁한 덕분에 이제는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들어 곳곳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춘천교도소는 지난해 3월에도 서울구치소에서 이감 온 촛불양심수 권 아무개 씨의 옷을 벗긴 뒤 항문 검사까지 해서 문제가 됐다. 교도소 측은 ‘알몸 검신’을 한 적이 없다고 발뺌한다. 하지만 형집행법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불가피하게 신체검사를 하게 되더라도 재소자가 “불필요한 고통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아니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특히나 “신체를 면밀하게 검사할 필요가 있을 때는 차단된 장소”에서 하도록 되어 있다. 춘천교도소가 어떠한 방식으로 신체검사를 했는지는 지금으로선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김 교수가 수치심을 느낀 건 분명하다. 통상 면밀한 신체검사는 마약, 담배, 흉기 등 반입금지물품 소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게 목적인데 과연 김 교수에게 이런 방식의 신체검사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춘천교도소에서 ‘알몸 검신'으로 인권침해를 당했던 권 씨에 따르면 모든 재소자가 이 같은 ‘알몸 검신’을 받는 건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양심수나 일부 껄끄러운 재소자들을 ‘군기 잡기’ 위해 이런 식의 인권침해를 자행한 것이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원주교도소에 있을 때부터 법부부의 자의적인 경비 등급 책정, 교도소의 서신 검열과 통제에 항의하며 소송을 진행하다 갑자기 춘천교도소로 이송되었다.

지금까지 예로 든 단적인 사례들을 통해서도 이명박 정권 이후 구금 시설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 인권적이고 자의적인 ‘법 집행’의 실상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통계를 보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2008년 3월부터 2010년 3월까지 구금시설에서 접수된 인권침해 진정 건수가 해마다 15% 이상씩 늘어났다. 하지만 수사 의뢰나 권고 등 인권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치한 사건은 1.6%에 지나지 않는다. 인권침해를 하소연하는 재소자들의 진정은 빗발치고 있지만 국가인권원회가 이런 문제를 제대로 파헤쳐 구제해 줄 능력도, 의지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걸 증명한다. 그런데도 교도관들은 재소자들의 인권 의식도 신장돼 있고, 인권침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절차가 완비되어 있는데 ‘너희 인권 단체가 무엇 때문에 나서냐?’며 볼멘소리를 해 댄다.

민주주의와 담쌓은 독재 정권일수록 범죄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면서, 사회 구성원들을 철저하게 분열시킨다. 입버릇처럼 ‘범죄와의 전쟁’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이 심화되면서 흉악한 범죄는 더욱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안은 무엇인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금언을 되새기며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

그 길에서 툭하면 사람을 잡아 가둔 채 ‘교정’은커녕 ‘죄 값’ 이상으로 불필요한 고통을 강요하면서 ‘범죄 양성소’로 전락한 감옥을 반드시 혁파해야 한다. 당연히 범죄와는 무관한데도 정치적 탄압에 의해 부당하게 옥살이를 강요당하고 있는 구속노동자, 양심수들은 하루 빨리 전원 석방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