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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의 ‘UN 지정 인권도시’라는 거짓말 (허창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1:25
조회
235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광주시 민선5기를 집권한 강운태 시장은 ‘행복한 창조도시 광주’를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핵심 추진전략 중 하나로 ‘인권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물론 앞선 집행부에서도 ‘민주인권평화도시’를 표방했었다. 하지만 이는 ‘1등 시민, 1등 광주’를 위한 치장품이었을 뿐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이와 달리 현 강 시장은 공약사항이었던 ‘인권담당관실’을 신설했고 ‘UN 지정 인권도시’ 추진계획을 발표하는 등 나름대로 성의를 보이고 있다.

사실 도시를 운영하는 중요한 가치로 인권을 제시하고 선언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배제되지 않고 ‘평등과 차별의 배제’를 통해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선언일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권의 후퇴가 노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 수장이라는 사람이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는 막말을 내뱉는 상황에서 이러한 선언은 더욱 환영받을 일이다. 또 광주는 ‘5·18민중항쟁’의 도시이니 인권도시 논의는 더더욱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광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인권도시의 내용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UN이 지정하는 인권도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권도시는 그저 1989년에 설립된 국제인권단체인 PDHRE(인권교육민중운동, People's Decade for Human Rights Education)가 1998년 인권도시 운동을 시작했고, 여기에 오스트리아 그라츠, 아르헨티나 로자리오 등 20여개의 도시들이 참여하면서 알려지게 된 개념에 불과하다.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UN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이미 이러한 점은 여러 경로를 통해 지적되었다. 그런데도 광주시는 ‘UN 지정 인권도시’라는 용어를 고집하고 있다. 최근에는 설득력 없는 근거를 들면서 UN이 인권도시를 지정할 가능성이 예견되고 있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는 해괴한 주장을 하고 있다. 한동안 ‘UN 지정 물 부족 국가’라는 말이 유행처럼 얘기된 적이 있다. 그런데 정작 UN이 지정하는 물 부족 국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한 말이 와전되면서 공식적인 용어처럼 굳어져버린 것이다. ‘UN 지정 인권도시’도 마찬가지다. 강 시장이 선거에서 공약사항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해서 고집해서는 안 된다. 사실 자체를 기만하는 용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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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태 광주시장이 후보시절이었던 지난 5월 10일 5.18기념재단과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를
방문하여 "광주가 세계 첫 UN인권도시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또 인권도시는 도시의 내실을 인권 친화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에 목적이 있어야 한다. 시민들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일상생활의 규범에서부터 법과 제도, 관행, 나아가 공동체 문화까지 인권적이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인력과 재정은 기본이다. 인권도시를 추진하려면 이러한 고민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광주시가 내놓고 있는 인권도시 추진계획은 내용에 대한 고민보다는 전시행정만 엿보인다. 안 해도 그만인 이벤트성 대형 행사를 내세우거나, 자문기구 구성에 있어서 극히 관료적인 접근 등 속내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 많다. 화려한 외양이 내용까지 담보할리는 없다.

마지막으로 ‘인권담당관실’도 문제다. 부시장 산하에 1담당관, 3팀 11명, 총12명으로 구성되는 인권담당관실에 민간인 참여는 배제되었다. 그나마 개방형 공모로 선정하겠다던 담당관은 공모를 진행하고도 뽑지 못해 기존 관료가 대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 초기에 대거 개방형 공모를 통해 인권관련 경험자들의 참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인권업무는 무엇보다 ‘인권감수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전담하게 하는 부서에 단 한 명의 인권관련 경험자도 포함하지 않은 것은 중대한 문제다. 담당관 1명만 개방형으로 뽑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담당관실의 구성에 대해 지금이라도 인권활동가와 전문가 등 시민사회가 참여해 전면 재논의 되어야 한다.

광주는 그동안 ‘5·18민중항쟁’이라는 역사적 유산을 먹고 살아왔다. 그 유산을 긍정하고 가치 있게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를 이용해 포장하는 데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 ‘그만 좀 팔라’는 비아냥을 가슴 아프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더더욱 광주의 인권도시 논의는 겉치레보다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 인권도시 광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다만 그것은 ‘인권의 기준’으로 접근했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