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정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에 나서라! (이현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1:24
조회
211

이현정/ 흥사단민족통일운동본부 차장


 

지난 8월 중순경에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를 다녀왔다. 당시 압록강이 흐르는 중국 단동시를 답사하는데 계속해서 폭우가 내렸고, 결국 압록강 범람으로 예정돼 있던 단동의 일정이 취소되었다. 거기에 압록강 바로 위쪽에 있는 집안시의 고구려 유적지는 길이 끊겨 아예 가보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압록강 건너편에 있는 북한 신의주 지역이 7, 8월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엄청난 수해를 겪었다. 1950년 이래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는데, 세계식량계획, 유엔아동기금 현지 요원들과 북한 관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농경지 92%가 수해로 인해 훼손되었고, 30만 신의주 시민들에게 채소를 제공했던 위화도의 채소밭이 물에 잠겨 전혀 수확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더불어 주택, 도로, 상단수원지와 변전소 파괴로 인해 북한 주민들은 생존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신의주뿐만 아니라, 북한의 타 지역 또한 마찬가지인데 이번 수해로 인해 북한 주민의 수백만 명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으며 100만 톤 이상의 식량이 긴급히 필요한 실정이라고 한다.

이후 국내와 해외에서 북한 수해 지원에 대한 움직임이 있었다. 몇몇의 시민사회단체에서 북한에 쌀과 물품들을 보내고 있다.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흥사단민족통일운동본부도 한 달 여 간의 모금운동을 통해 지난 달 27일, 육로를 통해 개성과 황해남도 배천군 수해주민들에게 밀가루 100톤과 쌀 10톤을 전달하고 돌아왔다.

국내뿐만이 아니다. 유엔 반기문 사무총장은 최근 인도적 지원이 정치, 안보적 우려로 제한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제는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 일행이 평양을 찾았다. 또 미국 정부는 대북 수해 구호품을 지원하였고, 민간단체들도 대북 수해 지원에 직접 나섰다. 중국 정부도 내년 1월 말까지 북한에 쌀 50만 톤을 지원 약속을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더불어 호주 정부는 최근 몇 년 동안 대북지원에 나섰고, 내년에도 83억원의 대북지원금을 편성하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 입장은 위 상황과 다르다. 지난 5.24 조치 원칙이 여전히 유효하다며 천안함 사태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있어야 대규모 식량 지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유엔 등 국제 사회가 천안함 사태를 북한의 책임이라고 규정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결국 현 정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IE001246969_STD.JPG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경남본부와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이 지난 10월 21일
오전 경남 창녕군 도천면에서 '통일쌀 추수행사'를 열기 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또한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인도적 지원마저도 막고 있다. 경상남도와 민간단체에서 모은 615톤의 쌀을 계속해서 반출 승인 보류를 내고 있다. 경남에서는 지자체의 남북협력기금의 사용여부를 중앙정부에서 미승인을 낼 사항이 아니라고 하지만, 정부는 계속해서 반대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한 지역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인사의 방북을 불허하기도 하였다.

우리 정부가 똑똑히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이번 수해 지원은 북한 수해 돕기만의 차원이 아니다. 쌀 재고량이 너무 많아 쌀 가격의 엄청난 폭락에 따른 우리 농민들의 시름을 덜어주는 역할도 한다. 지난 정부에서 매년 북한에 40만 톤의 쌀을 지원해 쌀 가격이 적절하게 유지됐었는데, 현재 3년째 지원을 끊어 현재 150만 톤의 쌀이 창고에 보관돼 있다. 쌀창고 관리비만 4,500여억 원이 드는 현실이다. 결국 올해 15년 만에 최고의 재고량을 기록하고 있고, 이로 인해 15년 전의 가격으로 폭락한 상황이다. 이렇듯이 대북 쌀 지원은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지만, 우리 농민들을 살릴 수 있는 매우 절실한 문제이다.

더불어 최근 몇 년 동안 경색되어 있는 남북관계를 조금이마나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남북관계 교류·대화 단절, 개성공단 운영의 파행, 금강산·개성관광 중단의 피해 당사자는 미국, 중국, 일본이 아니라 고스란히 남북이 껴안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로 인해 미국은 한반도와 일본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중국은 남북 경색의 틈을 타 북중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남북관계가 멀어진다면, 한반도에서의 우리의 운명 결정권을 주변 나라에게 쥐어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 정부는 이제 대북 식량지원에 나서야 한다. 지난달 열린 적십자회담이 식량지원 문제로 결렬되었는데, 이번 11월 말경에 개최될 적십자회담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의사표시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향후 지원 규모 및 방식, 그리고 배분 모니터링과 관련해서 계속적으로 북한과 협의해가면 된다. 이럼으로써 그동안 경색된 남북관계로 잃어버린 것들을 조금씩 되찾아가고, 한반도의 역학 구조 속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역할을 찾아가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계속해서 6자회담 재개와 주도권을 가져가려 할 때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한미동맹 만의 일방적 외교가 아니라,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다양한 돌파구를 열어가는 것이 현명한 외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과거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가 좋지 못할 때에도 여러 차례 50만 톤의 식량을 지원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지금처럼 북한-중국 동맹이 더 강화되는 한반도 정세에서 미국의 고위 인사가 계속해서 평양을 방문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정부가 스스로 정치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틀을 버려야 한다. 정치적 식량지원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실용적 대북정책임을 명심하고, 대북 식량지원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