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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야만적일 순 없다! (이광열)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3:31
조회
207

- “왕재산 사건” 구속자 가족 인터뷰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검찰은 8월 23일과 25일, 이른바 왕재산 사건으로 구속된 5명의 양심수들을 국가보안법상 ‘반국가 단체 구성 및 가입’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여러 정황을 보면 레임덕에 빠진 이명박 정권이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터뜨린 ‘공안 탄압’ 사건이라는 게 분명해지고 있다.

대개의 국가보안법 사건이 그렇듯, 국정원과 검찰이 입증되지 않은 피의 사실을 마구 퍼뜨리면서 여론을 호도하기 때문에, 사건 당사자와 가족들은 재판도 받기 전에 이미 ‘간첩’이라는 낙인이 찍혀 ‘사회적 매장’을 강요받는다.

지난 9월 20일 이른바 왕재산 사건 수사로 고통 받고 있는 네 분의 가족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는 최근 다른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가족 분도 있었다. 남편이 한미연합사령부에 근무하고 있는 조수진(가명)씨는 얼마 전 황망한 일을 겪었다. 8월 19일 기무사 요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남편을 연행하더니 집안을 압수, 수색했다. 나흘 동안 기무사를 오가며 조사를 받던 남편은 결국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가 조사를 받게 된 이유는 성공회대 노동대학원에 다니면서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고, 남북 평화협정 체결을 지지하는 서명에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앙과 양심에 따라 참여한 것뿐인데 기무사는 ‘직업 군인이 이런 거 하면 되냐’며 국가보안법으로 엮어 넣으려 하고 있다.

국정원은 구속자 가족과 지인들을 지금도 내사하고 있다. 국정원이 계좌 추적을 하면 일주일 안에 은행에서 보내는 ‘수사 목적으로 계좌 정보를 제공했다’는 내용의 통지서가 본인 앞으로 날아온다. 가족들은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항의 전화를 받는다. 강유미(가명)씨는 시어머님이 병환으로 입원해서 살던 집을 세놓았는데, 얼마 전 국정원이 세입자의 계좌까지 뒤졌다고 한다.

“월세가 입금된 게 분명한데도 이렇게 하는 건 주변 사람들한테 우리를 알리겠다는 것밖에 더 돼요? 만일 우리가 세입자라면, 집 주인이 (임대)계약을 하겠어요?”

지난 3개월 동안 남편이 구속되고 한밤중에 압수 수색을 당하는 등 여태껏 겪어 보지 못했던 온갖 폭력적인 인권 침해를 받은 가족들의 정신적 외상은 심각했다. 대부분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룰 정도라고 한다.

“지나가다 ‘정원 갈비’라고 쓴 간판을 봐도, ‘어 국정원!’ 요즘 ‘왕새우’ 라고 쓴 간판도 많은 데, ‘어 왕재산!’ 하고 깜짝깜짝 놀라요. 아무래도 머리가 어떻게 된 거 같아요.”

“머릿속에 온통 국정원, 국가보안법, 이 생각밖에 없어요. 누구를 의심하며 살아오지 않았는데, (요즈음) 보는 사람들마다 의심을 하게 돼요. 양복 입은 사람을 보면 저 사람도 국정원 사람이 아닐까? 지하철에서 쳐다보는 사람이 있으면 저 사람 왜 날 쳐다보지? 저 사람도 국정원 사람인가? 심지어 국정원에서 우리 아이들을 납치해 가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시어머니 시아버지한테 아이들 데리고 나갈 때 혼자 놔두지 말고, 꼭 손 붙잡고 다니시라고 말씀드려요!”

우리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는 여전히 건재하다.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 언론이 쏟아 내는 왜곡 보도가 이를 더 부추긴다. 국가보안법으로 낙인찍힌 가족들은 자의반 타의반 주변에서부터 고립돼 갈 수밖에 없다.

“진짜 상처받는 건 ‘옆에서 그걸 몰랐어?’ 하고 물어볼 때에요. 20년 이상 같이 살았는데도 몰랐으면 그건 아닌 거고 결백한 건데, 언론(조·중·동)에선 ‘와이프도 모를 정도로 치밀하게 (활동)했다’고 우겨요. 국정원에서 면회를 안 시켜 줘서 (우리가) 1인 시위 한 적 있는데 그것 가지고도 ‘간첩인 주제에 찾아 먹을 거 다 찾아 먹으려 한다’고 비아냥거리죠 ”

“주변에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겁이 나요. 혹시나 ‘저 사람이 신문에 나온 걸 다 믿으면, 분명히 나를 의심할 텐데’라는 생각이 드니까, 점점 사람들을 안 만나게 돼요.”

“국가보안법 수사를 받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주변에서 기피 대상이 돼 버렸어요. 차라리 남편이 사기를 치고 구속 되었어도 이보단 나을 거예요.”

“저희 애 아빠가 수사 받다 쓰러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잖아요. 그런데 시댁에서 병문안을 안 오는 거예요. (형제들이) 수술 다 끝나고 실밥 풀 때 쯤 와 가지고는 ‘우리 애들 직장 가고 대학 가야 하고 공무원 시험도 봐야 하는데 불똥 안 튀게 해라’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가 버렸어요. 수사 받은 지 3일밖에 안됐고,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았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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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4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진행된 '왕재산 사건 공정재판 촉구 기자회견' 모습
사진 출처 - 뉴시스


검찰총장 한상대가 이 사건을 언급하며 “종북 좌익 세력을 척결”하겠다고 외친 뒤 우익 단체들의 망동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첫 재판 때 ‘어버이 연합’이 참가한다는 소식을 들은 일부 가족들은 혹시나 불상사라도 생길까 봐 재판 방청마저 포기해야 했다.

“나이 든 할아버지들 보면 솔직히 무서워요. 내가 ‘간첩 마누라’로 낙인찍힌 걸 알면 머리채를 잡아 뜯으려 할 텐데……. 화가 나는 건 누가 내 머리채를 잡아 뜯으면 같이 잡아 뜯고 싶어도……. 그러면 언론에 어떻게 나겠어요. 재판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잖아요. 우리는 모욕을 당해도 참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남편들이 재판만 잘 받을 수 있다면.”

구속된 양심수 가운데 세 분은 ‘차량 번호 자동 인식 시스템’을 생산하는 벤처기업을 만들어 함께 운영해 오던 학교 선·후배들이다. 구속 이후 회사는 당연히 풍비박산이 났다.

“중국이랑 사업을 하는 회사거든요. 여태까지 고생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제품화되고 나서, 2년 동안 발품 팔아 영업 다 해 놓고 올해 말이면 열매를 딸 수 있었는데……. 언론에서 회사 실명까지 거론해 가며 기정사실인 양 공론화시켜 버리는 바람에 거래처 다 끊어지고, 받을 돈마저 안 들어오고……. 이 회사는 그냥 ‘왕재산 회사’가 돼 버린 거죠. 벌어먹지 말라는 거 아니겠어요.”

“벌어먹지 말라가 아니라 굶어 죽으라는 거지. 나라에선 우리가 죽어 주기를 바라는 거야. (남편들) 면회도 오지 말고…….”

가족들은 “이 사건 이전과 이후의 인생이 확실히 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신문 같은 데서 누가 구속됐다고 하면 전에는 ‘고생 하겠구나’ 속으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구속자 가족이 돼보니까 구속자 가족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알겠더라구요.” 그러면서 일말의 아쉬움도 토로한다. 촛불항쟁이나 희망버스를 보면 우리 사회의 인권 의식이 많이 올라갔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여전히 ‘간첩’이라는 딱지가 붙는 국가보안법 사건에는 둔감한 듯하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안됐다’고만 하지 말고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지지 않도록 어깨 걸고 함께 싸워 나가는 노력들이 모아져야 한다.

인터뷰 하는 내내 가족들은 농담을 섞어 가며 쾌활한 분위기를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다 설움이 복받쳐 오르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빨리 나와서 집도 좀 치워 주고, 못도 박아 주고, 컴퓨터도 고쳐 줬으면 좋겠어요!” 아마도 가족들이 원하는 가장 소박하면서도 절실할 소망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법정 투쟁하고 있는 남편들에겐 한 말씀 하시라고 했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싸워!”,
“어쨌거나 평생 같이 있을 거니까, 마누라 걱정은 하지 마”
“힘든 일은 겪을 만큼 겪었으니까, 무슨 일이라도 다 이겨낼 수 있어. 당신만 잘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