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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교칙을 읽어 보셨습니까? (이상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3:29
조회
250

이상재/ 대전시민아카데미 운영위원



대전에 위치한 모 대학교 재학생 김아무개씨가 지난 10월 13일 오전부터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15일 오후까지 3일에 걸쳐 무려 7천800배의 절을 하고 대전으로 갔다고 한다. 불상도 아닌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김 씨는 왜 8천배에 가까운 절을 했던 것일까?

오마이뉴스의 기사에 따르면 김 씨가 당초 1만 배를 목표로 절을 한 이유는 대학 당국에 등록금 인하 서명운동을 허가 해 달라는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등록금 인하요구가 아니라 ‘등록금인하 서명운동 허가’를 위한 1만 배라니........ 처음부터 찬찬히 기사를 다시 읽어봐도 김 씨가 대학 당국에 요구한 주장은 ‘등록금 인하 서명운동 허가’였다. 게다가 김 씨는 1만 배 후에도 자신의 요구사항을 대학당국에서 들어주지 않을 경우 분신자살하겠다는 “서명운동 허가를 위한 1만배 후 분신자살”이라는 자극적인 내용의 현수막을 동상 근처에 내걸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전도 아닌 20여 년 전에 내가 대학을 다녔던 때에는 국가보안법철폐, 구속노동자석방과 같은 정치적 요구사항은 물론 대학당국이 접하면 민감한 사항인 비리재단퇴진과 총장퇴진과 같은 것들도 너무나 당연하게 서명운동을 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서명운동은 많은 투쟁방법 중에 가장 약한 방법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별로 선호하지 않은 방법이었다. 집회하고 시위하면 될 일을 굳이 표도 안 나는 서명운동을 할 이유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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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목원대생 김아무개씨가
'등록금 인하 서명운동을 허가해달라'며 1만 배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런데 2011년 10월 대학생 김 씨는 대학 내 서명운동 허가를 얻기 위해 1만 배와 분신자살이라는 방법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김 씨가 서명운동을 허가해 달라며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학교 당국이 3개월여 동안 지속적으로 김 씨의 서명운동이 학칙에 위반되어 징계를 받는다고 방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대체 대학생의 서명운동까지 막는 대학교의 학칙이 궁금해서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해당 대학의 학생준칙을 살펴보았다.

7조 - 학생은 교내외를 막론하고 항상 학생증을 휴대하고 본교 교직원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이를 제시하여야 한다.

12조 - 학생회 조직 외는 학생단체는 인정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학칙 제 60조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3조 - 학생은 종교(기독교), 봉사, 학술, 예술, 체육, 친교, 기타 학생회 임무 수행의 목적 이외의 단체를 조직할 수 없다.

19조 - 총장은 학생단체가 설립목적이 위배될 때, 학내 질서를 문란케 할 때, 단체 활동이 부진할 때, 기타 단체 존속을 인정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임원개선이나 해산을 명할 수 있다.

20조 - 학생 또는 학생단체가 교내·외 10인 이상의 집회를 할 때는 학생처장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며 허가 신청서는 행사 10일전, 등록된 학생단체의 정기집회는 2일전까지 제출하여 허가를 받아야 한다. 모든 단체의 활동은 학기말 시험개시 1주일 전부터 시험 종료일 까지 금지한다. 집회 종료 후 즉시 학생처에 집회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

23조 - 학생 또는 학생단체가 발간하는 정기, 비정기의 간행물은 총장의 사전 승인 없이는 발행할 수 없다.

48조 - 학생회 선거 실시 절차에는 학생처 직원이 참관할 수 있다.

놀라지 마시라. 위에서 열거한 조항은 중·고등학교 교칙도 아니고(중·고등학교 교칙이 그러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7,80년대의 군사정부시절의 대학교칙도 아닌 김 씨가 다니는 대학의 2010년 4월 26일자 개정 학생 준칙이다.

혹시나 해서 지역의 또 다른 사립대학인 B대학과 서울의 Y대학의 학칙을 살펴보았다. 일부 조항이 시대 상황에 맞지 않거나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었지만 이 대학과 같이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제약하고 있지는 않았다.

학교 밖의 일반 사회에서도 집회는 신고제인데 학생들이 집회를 하려면 열흘 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과 모든 학내 간행물의 총장 사전승인 조항은 출판과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21조를 명백히 위반하고 있다. 학생단체의 결성에 관한 조항은 학내 정치성향의 단체 결성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고 단체 해산을 명시한 규정의 모호함은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를 연상시킬 정도로 규정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해 놓았다. 학생증 소지와 학생회선거의 학생처 직원 참관조항에는 흘러간 흑백영화의 어색한 연기를 보는 듯 한 헛웃음만 나온다.

1990년대 중반이후 학생운동의 퇴조와 연이어 닥친 IMF경제위기로 인해 한국의 대학가는 급속한 탈정치화의 행로를 밟아왔다. 해마다 치솟는 등록금과 좁아지는 취업문은 다수의 대학생들을 아르바이트와 토익시험장으로 내몰았으며 총학생회 역시 비운동권이 잡는 경우가 점차 늘어났다.

그러한 환경에서 대학생들의 비판정신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까지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 같아 보였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나름대로의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예전 같은 강도는 아니지만 다양한 사회문제와 특히 최근의 반값등록금 문제에 대해서 나름의 발언과 행동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은 신자유주의화의 특징을 그대로 닮아 가면서 기업화의 논리(기업이 대학을 인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속에 대학재정의 90%이상을 등록금으로 충당하면서 대학생을 대학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등록금을 내는 소비자의 수준으로 밀어 내고 있는 것이 2011년의 대학가 풍경인 것이다. 87년 이후 국가는 형식적이나마 민주화를 진행해 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학은 비민주화와 반인권의 반대방향으로 걸어 온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새삼 사회 속에서 대학의 기능이 어떻다느니 하는 말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최소한 자기가 다니고 있는 대학의 학칙이 부끄럽지 않은 대학에서 학생들이 대학을 다니게 해 주어야 할 것이다.

김 씨가 다닌 대학에도 법학을 가르치고 사회학을 가르치고 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교칙을 놔두고 대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오마이뉴스의 후속기사에도 나왔지만 대학생 김 씨는 다행히 학교 측에서 서명운동을 허가해 주기로 약속하면서 1만배를 채우기 전에 대전의 대학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서명운동을 하지 말라는 학교 측의 경고 때문에 김 씨가 서명운동 과정에서 느꼈을 분노와 외로움에 대해 깊은 위로를 전하며 이후 김 씨가 계획하는 서명운동이 많은 학우들의 관심 속에 진행되길 바란다. 또한 이번기회에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학칙 개정운동도 함께 해보기를 권한다.